▲ Stay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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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와 직결되는 단어는 번아웃과 우울증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들은 몸소 일 중독을 실천하여 피로사회의 일원이 되고, 번아웃의 친구가 되어 우울증에 빠져들고 있다. 전형적인 워커홀릭으로 나름 사회적 성취를 이뤘던 지인 50대 K가 그렇다. 몇 달 전 건강검진에도 이상이 없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운 생각이 끊임없이 파고들어 별다른 걱정거리가 없음에도 새벽에 여러 번 깨어나곤 했다고. 유명한 전문의는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병명은 번아웃입니다."
그는 만성 수면부족 증상과 공황장애 전 단계라는 구체적인 진단까지 받았다. 의사는 쿨하게 웃으며 그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런 증상을 간과하시면 안 됩니다. 이미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걸려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거든요. 적절한 때 느끼는 게 오히려 더 다행입니다. 이걸 모르거나 무시하다가 급사하시는 40~50대가 은근히 계시거든요. 단순한 갱년기 증상이 아니라 그냥 일하다 지쳐서 생활이 힘든 겁니다. 좀 더 적극적인 휴식을 취하시고 일하는 걸 멈추셔야 합니다."
K의 사례는 수많은 워커홀릭들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다. 스마트폰 일정표의 빽빽한 스케줄 속에 가족들과의 시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퇴근 후나 여행지에서도 늘 일과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병적인 집착을 성과 지향적 캐릭터로 포장하고 있다면, 일을 멈추라는 처방이 곧 내려질 수 있다.
자본주의적 성과가 주는 만족에 매료된 수많은 일개미들은 칭찬받는 극소의 일류 일개미가 되기를 희망한다. K처럼 의사로부터 위험한 처방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나는 왜 죽도록 일하고 있는 걸까?"
질문의 답을 떠올리면서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볼 것이다. 신입사원부터 대리-과장-차장-부장, 혹은 임원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업무에 대해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재깍 답하겠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 한다. 그 대신 일개미로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도 생각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벌이를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수많은 새벽 출근과 달밤 퇴근 속에서 가족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건강 상태는 나빠졌더라도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비장하게 외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생존투쟁이다!"
출퇴근시간이 되면,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밥벌이를 위해 오간다. 열정과 의지, 고통과 고민은 제각각이겠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한 목적은 같을 터이다. 모두가 K처럼 생존 투쟁을 하지는 않겠지만 대동소이한 과정을 지날 것임은 분명하다.
신입사원과 사회 초년생들은 그들 나름대로, 과장과 부장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이유와 그 과정상 역경을 말할 것이다. 커피에서 시작돼 커피로 끝나는 하루, 회의에서 시작돼 회의로 끝나는 하루, 민원에서 시작돼 민원으로 끝맺는 하루는 월급쟁이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숙명 아니었던가! 불가피하게도 이러한 숙명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해 '왜'를 분명히 질문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현자다. 질문하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보다 '어떻게'에 치중하거나 '왜'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한 이들은 현자가 될 수 없다. 그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그럴듯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어쩌다 유명세를 얻었다고 해서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냥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난 자들에 불과하다.
K가 번아웃 상황에 빠진 것은 늘 '어떻게'만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상황과 일이 힘들어도 자신을 전진하게 하는 동기, 즉 '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가능했다면 피로하고 지칠지언정 번아웃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번아웃은 쉽지 않다. 결국 어떤 이유든 간에 끌려가는 삶을 살게 되면 오는 게 번아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동기, 밥벌이에 대한 숭고함에 잘 알 것 같지만. 언감생심이다. 미안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그냥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야기가 들어맞는 판단 정도만 하면서 살아간다.
'왜'라는 근본적이고 성찰이 필요한 질문은 늘 소외되고 방치된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꺼내면 개똥철학이나 배부른 소리나 헛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한여름 밤 불나방 같은 상황에 처했음에도 자신은 목적과 동기에 따라 행동한다고 정신승리를 위한 멘트를 내뱉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
세상과 삶은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 차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증명과 완벽한 논리구조를 갖추지 못한다. 벤자민 프랭클린 또한 세상에 죽음과 세금 이외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쪼록 수많은 K의 건강한 일상과 회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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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구별을 여행하는 행복 탐험가. 부모의 삶과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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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운 생각, 번아웃을 막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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