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는 내 손으로 처음 튼 대선 토론 방송이었다. 12.3 계엄 이후 촛불집회도 나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친구들과 인증도 했던 나였다. 그 연장선인 토론회에 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1차 토론회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와 함께 봤다. 입장이 다르니 나눌 이야기가 오히려 더 풍성했다. 반도체 엔지니어인 그는 관련 공약에 귀를 기울였고, 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물었다. 우리는 뉴딜 정책이나 원전 이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TV 속 후보들만큼 바쁜 토론이었다. 마치 내가 정책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정치'도 흥미로운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고 자연스레 이후 토론회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하지만 27일 있었던 3차 토론회는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피곤함' 그 자체였다. 같은 사람들의 토론을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 토론이기 때문인지 후보자들의 발언 수위와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고, 그 방향이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진영 간 감정싸움에 가까웠다. 겉으로는 '정치 개혁과 개헌'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주어졌지만, 실제 내용은 이 주제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정치적 비전보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법 리스크, 과거 언행, 측근의 문제를 부풀리는 데 몰두했다. 토론이 시작되고 1시간 4분쯤 지났을 무렵,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대선 후보 토론장에 나와 있는 것 같지 않고 마치 법정에 있는 느낌"이라며 본질에서 멀어진 토론 분위기에 뼈 있는 말을 던졌다.
토론은 대선 후보의 공약과 철학, 비전을 비교할 기회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는 도덕성 공방과 과거 문제에만 집중했다. 김문수 후보는 재판과 사망 의혹을 반복했다. 이준석 후보는 민주당 내부 비판과 법인카드 의혹을 계속 언급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를 간단하게 받아넘기며 김문수 후보에게는 '내란공범, 동조' 의혹을, 이준석 후보에게는 계엄 당일 국회에 진입 안 하고 밖에 있었던 회피적 태도를 짚었다.
논리가 아니라 프레임만 남는 말들
이렇게 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정작 정치 개혁과 개헌이라는 큰 주제는 뒷전이 되었다. 유권자들이 듣고 싶은 건 '누가 더 고발당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나은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가'다. 개헌은 권력 구조나 기본권 확대 같은 국가의 틀을 바꾸는 논의다. 이런 중요한 화두를 놓고, 누가 더 고발당했는지를 따지는 데 시간을 소비한 것은 명백한 낭비였다.
수많은 청년 공약을 외치기 전에, 그들이 정말 청년을 위한다면 '정치 양극화'를 유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했다. 이것은 젊은 유입층에게 피곤함만 유발할 뿐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후보들, 특히 김문수 이준석 후보의 토론에 임하는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정치 혐오증을 유발할 정도로 무책임해 보였다.
이 와중에 가장 아쉬웠던 점은 토론의 형식이었다. 발언 시간이 지나치게 짧아 후보들이 충분히 말을 펼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상대가 '예', '아니오'로 대답하고 나면 이유를 듣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보는 입장에서는 '여러분, 잘 들으셨죠? 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네요, 기자님들도 잘 써주세요'라는 암묵적 신호처럼 느껴졌다.
논리가 아니라 프레임만 남는 말들이었다. 마치 빨간 깃발만 보면 달려드는 투우 경기의 소처럼 서로의 약점만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그 모습은 흥미롭지도, 유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지치고 불쾌했다.
더욱 당혹스러웠던 건, 청년을 대변하겠다며 등장한 40대 이준석 후보다. 그는 기성 정치인의 네거티브 전략을 그대로 모방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앞장서 조장하고 이슈를 만들기 바빴다. 대체 정치 개혁 및 개헌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성과 관련된 부적절한 표현을 하는 것이 어떤 맥락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대선후보 토론 시스템을 보완해야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생방송이 끝난 뒤 '왜 아직도 토론 방송을 하는가'를 생각해 봤다. 누군가는 시청률도 떨어지고 재미도 없다며 대선 토론을 구식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에 토론 방송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것만이 주는 매력이 있다. 시각과 청각 모두를 활용할 수 있고 평소 접하지 않았던 후보들의 의견을 골고루 들을 수 있다.
특히 마이크로 미디어 시대인 요즘, 균형 잡힌 토론의 장이야말로 무엇보다 정치 양극화를 보완할 좋은 기회다. 단편적인 유튜브 쇼츠나 언론 기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짧고 강한 구호가 넘치는 시대에 긴 호흡의 논리를 펼칠 수 있다.
상대 진영 지지자도, 아직 지지 대상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도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국민은 가공되지 않은 후보자의 '날 것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후보는 그런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은 아직도 중요한 매체이자 귀중한 기회다.
그 때문에 토론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네거티브 전략'만 선택하는 데는 제도의 한계도 분명 작용한다. 한 질문당 답변 1분 30초, 한 주제당 6분 30초라는 시간제한도 그중 하나다.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약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더 쉽다. 결국 후보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또한 네거티브 전략을 피하고 자신의 논리를 펼치려는 후보들에게 이 시간은 너무나 짧다. 나 같은 일반 회사원만 해도 상사가 '20초 안에 답변하라'고 하면 횡설수설할 듯하다. 이것은 예능이나 스피드 퀴즈가 아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자리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토론을 3~4시간 정도로 늘리고 답변 시간을 좀 더 길게 허용하거나 제한을 두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후보들에게 토론의 장을 보장하는 것이다. 유권자에게 질문권을 일부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으로서 내 상황과 직결되는 공약이나 종사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해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볼 기회가 거의 없다. 대학생, 소상공인, 워킹맘 등 다양한 청중을 대표할 시민 패널이 직접 질문하는 방식은 어떨까.
시청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대선 토론회에서 국민을 참여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흥미를 끌기에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들이 늘어난 만큼 TV토론도 좀 더 유연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더 똑똑한 유권자가 되어야
12.3 계엄이 없었다면 2027년에나 보았을 대선 토론 방송을 2년 앞당겨 보게 된 연유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 때문에 이번 대선 토론회는 단순한 대화의 장이 아니라, 대선 후보들이 지금의 상황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의 시국을 어떻게 수습해 갈 것인지 판단하는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나 비전은커녕 버젓이 본질을 흐리며 생방송 토론이라는 형식을 악용해 자극적인 발언만 일삼은 몇몇 후보들의 태도가 실망스러웠다. 허나 이 또한 나와 같은 청년들에게 좋은 선거 교육 자료가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득권층이 어떤 식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중심 주제에서 빠져나갔는지 등을 가감 없이 '날 것'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씁쓸한 토론을 교훈 삼아 더 똑똑한 유권자, 더 날카로운 시민이 되어야 한다. 네거티브 전략을 카리스마로 착각하지 않고, 예의 바른 것을 심심한 태도로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6월은 장미가 만개하는 달이다.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꽃이 실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환절기를 버텨냈는지 이제는 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장미 대선이 어쩌다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것은 1표를 던지는 손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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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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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했던 3차 토론회, 청년 대변한다던 이준석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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