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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기 쓰고 낭독 녹음하기, 꾸준히 하면 벌어지는 일

팟캐스트 <그래 글에서> 초대손님 성우 서혜정씨와 함께 한 재미있는 낭독 이야기

등록 2025.05.29 14:00수정 2025.05.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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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주인공 아이유는 내레이션 연습만 2개월 넘게 했다고 한다(관련기사 : '폭싹' 내레이션 낭독만 2개월 연습한 아이유, 특별한 이유 있었다). 내레이션이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라 연습을 거듭했다는 아이유 인터뷰를 읽으면서, 내가 배우고 있는 낭독이 생각났다. 호흡과 발성만으로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내레이션이 얼마나 힘든지 낭독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은 눈으로 읽을 때와 또 다른 깨달음과 감동을 줄 때가 많다. 최근 본격적으로 낭독을 공부하는 이나, 출판사 북토크, 독립서점 등에서 열리는 낭독회, 낭독 모임도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진행자로 참여하는 팟캐스트 <그래 글에서> 11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우 서혜정씨를 초대한 적 있다. 그가 편저한 책 <낭독 어린 왕자>를 통해, 낭독의 좋은 점에 대해 듣고, 자연스럽게 읽기와 발성을 잘하는 방법 등을 이야기했다. 비록 방송이 나간 날짜는 한 달 전이었지만, 낭독에 쉽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그날의 기록을 싣는다.

낭독 어린왕자 <낭독 어린왕자> 책표지
▲낭독 어린왕자 <낭독 어린왕자> 책표지 낭독서재
유초(유월의 초록, 나) : 오늘은 아주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책 <낭독 어린 왕자>를 편저한 서혜정 성우입니다.

서혜정 : 반갑습니다.

유초 : 지금 목소리만 듣고도 '아, 그분~' 하실 것 같은데요. 산꽃이 서혜정 성우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산꽃 : 서혜정 성우는 1982년 KBS 성우 극회 17기로 입사했고요. 애니메이션, 외화, 드라마, 광고, 내레이션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성우죠. 워낙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X 파일>에서 데이나 스컬리, 예능 <롤러코스터> 중 '남녀 탐구생활' 내레이션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낭독 교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유초 : 네, 오늘 함께 할 책은 서혜정 성우가 편저한 <낭독 어린 왕자>입니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 작가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작품이죠. 바간에게 간략한 줄거리를 부탁합니다.

바간 : 네, 조종사인 나는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하게 되고 한 이상한 소년을 만납니다. 소년은 자신이 사는 작은 별에 사랑하는 장미를 남겨두고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온 어린 왕자였어요. 어린 왕자는 몇 군데의 별을 돌아다닌 후 지구로 왔는데요. 여우를 만난 어린 왕자는 서로를 길들여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죠. 그리고 어린 왕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존재인 장미를 떠올리며, 떠나온 별로 다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유초 : <낭독 어린 왕자>는 새로운 독서를 위한 낭독 에디션 첫 번째 작품인데요. 많은 문학 작품 중에 '어린 왕자'를 특별히 첫 작품으로 꼽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서혜정 : 저는 어릴 때 어린 왕자를 한번 읽었는데, 그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어요. 청년기 때도 다시 읽었지만, 중년이 되어서 읽으니까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1장부터 27장까지 장마다 남기는 심오한 메시지가 있어요. 이 책이 나온 지 80년이 넘었잖아요? 그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읽히는 이유가 있었구나,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철학책이구나 깨달았어요.

유초 : 맞아요. <어린 왕자>를 생일 선물로도 참 많이 주고받았는데요. 저도 이번에 다시 읽으니까 주인공 어린 왕자보다, 각각의 별에 사는 다양한 어른들의 군상에서 제 모습이 보여서 깜짝 놀라 반성도 했습니다.

산꽃 : 성우님께서 <낭독 어린 왕자>를 '끊어 읽기 단위' 로 재구성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혜정 : 책은 사각 프레임 안에 글자가 꽉꽉 채워져 있죠. 단어가 끊어져 줄이 바뀔 때도 있어요. 그러면 되돌아가서 다시 읽기도 하고요. 제가 성우여서 그런지, 끊어 읽기 기준으로 써 놓으면 글이 턱턱 눈에 들어오니까 의미도 빨리 파악될 텐데 싶었어요.

산꽃 : 제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할 때 보면, 한 반에 5% 정도가 느린 학습, 난독증 등으로 책을 잘 못 읽어요. 그 아이들이 특히 끊어 읽기를 어려워하거든요. 끊어 읽기를 하게 되면 그 자체가 의미 덩어리이기 때문에, 책을 이해하기가 쉬워져요. 아이들이 문해력이 증진된다는 건 집중력도 향상된다는 거잖아요. 이런 책이 지금이라도 나와서 너무 반갑고요. 학교 교재로도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간 : 저는 책을 보고 제일 먼저 시각적 효과가 눈에 들어왔어요. 시처럼 보였어요.

서혜정 : 행이 바뀌면 호흡을 끊어가게 되잖아요. 그래서 운율이 생겨요.

바간 : 글이 빽빽하면 단어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글이 띄엄띄엄 있으니까, 단어가 훨씬 눈에 잘 들어왔어요. <어린 왕자>의 유명한 말 '길들이다' 만해도요. 사실 저는 이 말을 별로 안 좋아했었거든요. 예를 들어 '말을 길들이다' 하면 야생마의 원석 같은 면을 깎아내고, 사람이 키우기 쉽게 이렇게 무난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한 줄에 '제발…길들여줘' 라고만 쓰여 있는데, 의미가 다르게 읽히는 거예요. '길들이다'가 '관계를 맺는다' 그러니까 너와 나 사이에 '길을 내다' 라는 의미로 들어와서 아름다운 말이었네 싶었어요. 단어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또, 서문에 '낭독은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넘어 영혼을 울리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낭독할 때 텍스트의 내용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글이 호흡을 통해서 생명을 갖게 된다… 같은 표현도 있었는데요. 낭독이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정도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행위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처럼 새롭게 관심을 두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낭독의 좋은 점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혜정 : 낭독은 나와 내가 만나는 시간이죠. 어린 왕자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목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들리죠. 들으면서 내가 내 영혼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루 중에 내가 나를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이 있을까 싶어요.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좋지만 저는 자기가 자기 일기를 쓴 다음에 그 일기를 낭독하는 순간 그때 정말 진하게 나를 만나는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강의할 때마다 저는 모든 분한테 권해요. 매일 일기를 쓰고, 일기를 낭독하면서 녹음해라. 그래서 한 달 된 다음에 제일 첫날 녹음한 것과 제일 마지막 날 녹음한 것 딱 2개만 들어보면 내 목소리가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일기도 길게 쓰지 말고 짧게 쓰고 낭독 녹음해서 들으면 10분 안에 해결된단 말이에요. 그렇게 꾸준히 하루에 10분씩 나를 만나가다 보면,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죠.

누구나 처음에는 자기 목소리가 이상해서 잘 못 들어요. 분명히 나인데 내가 아니야. 그런데 꾸준히 낭독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내가 내 목소리가 좋아져요. 1년 정도 계속 하잖아요? 이 세상에서 내 목소리가 제일 좋아져요. '성우 시험 한번 봐 볼까?' 하고요(웃음). 왜냐하면 1년 동안 나랑 내가 친밀해진 거예요.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러면 자존감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기고 저도 어릴 때 그 과정을 겪었어요.

유초 : 요즘 필사 유행이잖아요.

서혜정 : 필사를 소리 내어서 더 하면 좋죠. 소리 내어서 낭독하면 일단 언어가 좋아져요. 꾸준히 낭독하면 자연스럽게 발음이 좋아지고 발성이 좋아져요.

(지면상 팟캐스트 내용은 이하 생략)

나 역시 낭독을 할수록 '나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외모나 말투 때문에 대개 나를 무척 차분한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 급하고 몰아치는 면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안다. 낭독할 때 여지없이 드러난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받침도 챙기지 않고 후루룩 읽게 된다. 숨길 수가 없다. 그러면서 그런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쳤던 일도 떠오르고, 앞으로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자고 생각한다. '아, 낭독이 진짜 나를 만나는 것이 맞구나!' 싶다.

단순히 소리 내어 읽거나 다른 사람에게 읽어주기가 아닌 나를 만나는 낭독이 궁금하다면 책 <낭독 어린 왕자>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어린 왕자가 지구라는 별에 온 지 벌써 82년째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어로 쓰인 작품 중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 받는 <어린 왕자>를 낭독으로 다시 만나보기를 권한다.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 플래폼 '팟빵'과 '유튜브'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229/episodes/25117312?ucode=L-HsigXFdB)

낭독, 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은이), 서혜정낭독연구소 (엮은이),
낭독서재, 2024


#어린왕자 #낭독 #팟캐스트 #생텍쥐페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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