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유세 나선 이준석 후보 전날 대선후보 TV 토론 중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적 표현을 언급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남소연
어제(27일) 열린 대통령 선거 후보 3차 TV 토론회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한 발언으로 토론회의 본질은 흐려지고,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깊은 혐오의 균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후보가 여성 신체와 관련한 특정 표현을 직접 언급하며 다른 후보들에게 해당 표현이 여성 혐오에 해당하는지 물은 것이다. 이 발언은 즉각 정치권과 시민 사회의 거센 비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혐오 표현'과 '공론의 장'이라는 근본 질문을 다시금 우리 앞에 던졌다.
논란의 발언
이준석 후보는 토론 중 이재명·권영국 후보를 향해 2017년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의 '돼지발정제' 발언을 언급하며 "특정 여성의 신체 일부를 비하하는 단어가 여성 혐오인지 아닌지 명확히 답해달라"고 요구했다. 두 후보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거나, 시간을 충분히 주고 질문해 달라고 요청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발언은 토론회가 끝난 후 사람들 사이에서 공분을 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토론을 빙자한 끔찍한 언어 폭력"으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사과와 대선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권영국 후보 역시 이준석 후보의 발언이 "부도덕한 행위"라며 대선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준석 후보는 자신의 발언이 특정 진영의 '위선'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과거 특정 정치인의 언행에는 침묵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만 과도하게 비판하는 이중 잣대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는 주장이다. 그는 불편하더라도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시민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여성단체와 수많은 시민은 이 발언이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적인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공론의 장을 훼손한 혐오 표현
먼저 어제의 발언은 대선 후보 토론회 생방송 중에 빚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대선 후보 토론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공론의 장(Public Sphere) 중 하나다. 이곳에서 후보들은 국정 운영 철학, 정책 공약, 미래 비전 등을 제시하며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주제를 논한다. 유권자들은 이 토론을 보고 후보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들의 역량과 자질을 평가하여 주권자로서 올바른 선택을 내린다. 공론의 장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개방성과 참여자들 간의 지위나 배경에 따른 차별 없이 동등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평등성이 있어야 한다. 또 이성적인 토론으로 설득과 합의 도출 노력이 곁들어진 합리성이 있어야 하며 기존 권위나 잘못된 관행을 비판으로 검토하는 비판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러한 공론의 장의 의미를 고려할 때, 이준석 후보의 '젓가락' 발언이 과연 공론의 장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는지 몇 가지 비판이 제기된다.
첫째, 해당 발언은 여성 신체에 대한 비하적 의미를 담고 있는 혐오 표현으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크다. 공론의 장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하는 곳이지만,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은 공론장의 기본적인 원칙인 '평등성'과 '포용성'을 훼손한다. 혐오 표현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특정 집단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 갈등을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선 후보 토론은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매우 엄중한 자리다. 그런데도 논점과 무관한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토론의 본질을 흐리고, 특정 후보를 흠집 내거나 감정적인 대립을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합리성'에 기반한 이성적인 토론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혐오 표현을 활용하는 것은 정책 토론 대신 감정적인 대립을 유발하여 유권자들에게 토론에 대한 무력감을 줄 수 있다.
셋째, 이준석 후보는 '위선 지적'을 의도로 내세웠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혐오 표현을 이용하여 다른 혐오를 비판하는 방식은 오히려 또 다른 혐오를 생산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다. 이는 '혐오 대 혐오'의 구도로 이어져 더 큰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진정한 공론의 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그 방식과 표현은 공론의 장의 품격과 참여자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재활성화와 2차 가해의 고통
이번 논란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어야 할 부분은 혐오 표현이 피해자들에게 미치는 실제적인 고통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빨갱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조작 간첩 피해자나 인권 침해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그들에게 이 단어는 단순한 비난을 넘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던 폭력과 박해의 상징이다. 이러한 표현이 공공연하게 사용될 때, 그들은 다시 한번 과거의 고통을 겪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거나 비난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을 유발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안정감을 느끼기 어렵게 한다.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특정 성기를 비하하는 발언은 자신들이 겪었던 성폭력의 경험과 직결된다. 이러한 발언은 피해자들에게 사건 당시의 두려움, 수치심, 무력감 등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이는 트라우마를 재활성화시킬 수 있다. 즉, 현재의 특정 자극으로 인해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이 생생하게 재현되는 일이 발생한다. 또, 이러한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것을 보며 사회가 자신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더욱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사용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로 작용한다. 이는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부정하거나, 그들의 피해 사실을 희화화·축소·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게 되며, 특정 혐오 표현은 피해자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고, 그들을 특정 집단으로 묶어 비난하거나 소외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는 피해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기능하고 회복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 궁극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혐오 표현이 자유롭게 사용되는 것을 보며 피해자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며, 이는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 그리고 젊은 정치인의 책임
이번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 차별, 폭력적인 발언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전부터 그의 발언 방식이 혐오 표현을 정당화하거나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하거나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은 정치의 수준을 떨어뜨린다.. 이것은 젊은 정치, 개혁정치, 새로운 미래를 주장하는 이준석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방송과 언론은 가장 강력한 공론의 장 중 하나다. 이러한 매체에서 정치인 등의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다뤄지거나, 심지어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회의 혐오를 조장하는 일이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의 언행은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재정립하고, 공론의 장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차별과 혐오가 아닌 대화와 이해를 통해 발전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이번 이준석 후보의 발언이 우리 사회에 숨어들어있는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빌며, 더 이상 이 땅에 혐오와 차별에 기대는 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