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a.
i_m_noble on Unsplash
하루는 어르신이 복지관에 나가려고 하자, 남편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투정이라고 생각해 넘겼지만, 차츰 횟수가 잦아지자 이 어르신은 바깥 활동을 줄이기 시작했단다.
"내가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서워졌어요. (남편이) 너무 오래 밥을 안 먹으면 저혈당 온다는 거 알면서도, 자꾸 그러네."
우리는 그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데이케어 센터에 함께 다녀보시라 권해보기도 했다. 말이 나오자마자 어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하신다.
"나도 말해봤지. 절대 안 간다 하더라고요."
그러자 다른 어르신들 모두 자기 발로 데이케어 센터 가는 사람 없다고, 같이 사는 사람도 살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셨다. 다들 그분의 활동적인 면을 알아서 하는 말이다.
타인의 손을 빌리는 일, 낯선 공간에 자신을 맡기는 일을 모욕처럼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 감정은 고집이라기보다 '버티기'에 가까웠다. 가까운 누군가를 통제하면서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방식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건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갉아먹으면서 나를 지키는 일이다.
그날 빠진 문장은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 감정을 대신 짊어진 사람의 이야기였다. 거기엔 고요한 외로움, 사랑보다 무거운 책임이 묻어 있었다.
복지관 수업을 하면서 나이 든 남편이 아내의 외출을 막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일견 고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과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결국 아내까지 고립시키며 두 사람 모두를 점점 움츠러들게 만든다.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남성일수록 의존과 통제가 뒤섞인 방식으로 애정을 드러내곤 한다.
아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과 남편 스스로 살아내는 힘을 기르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노년에도 혼자 설 수 있는 연습이 결국 둘 모두를 자유롭게 만든다. 불행히도 지금의 70~80세 남자 어르신에게는 어려운 과제인 거 같다.
그 어르신과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는 다른 어르신이 말했다.
"이 언니 진짜 명랑했는데, 요새 쫌 덜 명랑해서 내가 다 속상해. 양희은도 그런 말 하더만. '명랑한 할머니는 대부분 과부'라고 말이야."

▲양희은 님이 하셨던 말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영상이 있었다
성시경 유튜브
한 사람의 침묵이 두 사람을 고립시킨다
어르신은 괜히 글로 남겨놨다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그 문단을 지웠다고 하셨다. 나는 글보다 마음 편한 게 먼저라고 했다.
어르신은 내게 말만 그리 하고, 문단 지운 거 바로 알아보지 않냐며 곱게 눈을 흘기셨다. 나는 이마 위로 합장하며 '앞으론 모른 척 하겠습니다' 했다. 나도, 다른 수강생 어르신도 모두 같이 애들처럼 킥킥 웃었다. 나는 몇 번 머리를 조아린 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수업이 내 인생 '쓰면' 아니고 '풀면'이잖아요. 쓰지 못한 이야기는 이렇게 와서 풀어주시면 됩니다. 마음에 쌓아두면 병 되잖아요."

▲시니어 글쓰기 수업 시작 직전 결석 없이 와주시는 어르신께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최은영
나는 언젠가 어르신의 남편도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기를. 혼자 먹는 밥이 외로움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방식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어르신과 오래오래 글쓰기를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은 그렇게 다시 쓰여야 한다. 빠진 문장은 돌아와야 하고, 사라진 하루는 회복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밥 거부하고 아내 외출 막는 80대 남편의 속마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