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담자는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와 상담 후 관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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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내담자는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갔다고 한다. 입사 초기부터 대표는 단 둘이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고, 다른 선임들도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듣고 당연한 절차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만남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대화는 전혀 없었고, 대표는 술자리를 만들며 성희롱을 시작했다. 이후 사내에서는 내담자에게 "데이트", "안주인"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성희롱이 더욱 심화되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근무 기간이었지만, 대표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담자는 극심한 두려움을 호소하였다.
성인지감수성 없는 근로감독관, 2차 피해로 이어져
내담자는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와 상담 후 관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사이 대표는 내담자를 퇴사처리 해 버렸다. 내담자는 노동청 조사 시 근로감독관이 "경찰서에 가지 왜 여기로 왔냐", "성희롱으로 인정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내담자는 오히려 노동청 조사 후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는 심리상담을 연계하고 법률자문을 받아 근로감독관 교체를 요구하여 재진정하였고 올해 초 성희롱으로 인정이 되었다.
누가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막았는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데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간의 직장생활보다 노동청 조사과정에서 피해자는 '2차 피해'로 더 힘들어했다. 2024년 고용노동부가 발행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대응 매뉴얼'에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나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위자는 이를 부인하거나 축소 진술하는 경우가 많다"(55쪽)라고 작성되어 있다. 또한 피해자 조사 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하지만 내담자들은 오히려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조사과정에서 2차피해를 호소한다.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의 상담사례를 보면 근로감독관이 "증거가 없다"고 하거나 "합의가 우선이다, 성희롱이 아니다" 며 조사보다 합의를 먼저 요구하기도 하고, "진정 접수를 해봤자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며 용기 내 진정한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무력하게 했다.
백이면 백 다 성희롱으로 인정 안 된다는 말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는 한 근로감독관과의 통화 중 "백이면 백, 다 성희롱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대한 조사 없이, 사건이 접수되기도 전에 성희롱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인식은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이는 고용노동부에 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좌절하게 되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발언이다. 성희롱 피해자는 이미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에 있으며, 극도로 예민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근로감독관의 태도는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무엇보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걸 포기하고 직장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성희롱 사건의 결과가 어떤 근로감독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복불복'처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성희롱 피해자가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접근 가능성을 높이고, 피해로 취약해진 여성노동자에게 적극적인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는 물론, 사건의 조속한 종결보다 피해자 지원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 아래 밀착 상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스스로 답해야 한다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며 고용노동부는 폐지에 대한 우려에 '상담에서 권리구제까지 원스톱 지원'을 통해 신속한 피해 구제 및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했다(고용노동부, 23.9.26). 독립된 상담공간과 출장지원까지 하며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한 고용노동부는 답해야 한다. 독립된 상담공간이 확보가 되었는지? 적정 상담인력이 배치되었는지? 편의에 맞춰 출장지원까지 하고 있는지? 피해자 조사과정 중 성인지감수성으로 사건처리가 되고 있는지? 여성노동자의 마지막 보루를 폐지한 고용노동부는 스스로 답해야 한다.
집계되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는 1995년부터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그렇게 모인 수많은 목소리가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법이 생겼다고 해서 권리 찾기가 곧장 가능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성희롱 피해자들은 통계로조차 집계되지 못한 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일상을 잃고 있다. 이들이 다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실효성 있는 법과 행정력을 갖춰야 하며, 성평등한 조직문화와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 평등의전화: 여성노동전문상담실
여성노동자회 산하 전국 11개 평등의전화에서는 근로조건, 직장 내 성차별, 성희롱, 모성권 침해, 직장 내 괴롭힘 등 여성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번호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서 전화를 해도 가장 가까운 지역 상담실로 연결되어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 대표번호 167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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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가지 왜 여기로 왔냐" 성인지 감수성 없는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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