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작가의 남원 혼불문학관을 다녀와서

등록 2025.05.30 10:26수정 2025.05.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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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바람이 삭연(索然)하여 길을 찾아 나선다. 지난 3일(토요일), 남원 요천(蓼川)을 거처 한국 현대문학의 걸작 장편소설 <혼불>를 쓴 최명희(1947~1998) 작가의 혼불문학관으로 향한다.

소설 <혼불> 첫머리 표현처럼 그날따라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남원 사매면 노봉마을 서도역이 한눈에 보인다. 서도역은 고풍스럽지는 않지만 1932년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간이역답게 혼불 소설의 시간 속으로 떠나는 시골 역사 냄새가 처연(凄然)하게 풍긴다.


서도역은 소설 속 매안마을로 효원이 신행을 다녀와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자 남자 주인공 강모가 학교 다니거나 전주를 거쳐 만주 봉천으로 떠날 때 이용하던 소설 속 공간이자 현실의 공간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남원 최명희 작가 혼불문학관.
남원 최명희 작가 혼불문학관. 김병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널찍한 문학관 뜰을 둘러친 공간에 안개비가 자욱하다. 봄비마저 추적추적 내려 걸음걸이가 더디다. 우산에 의지한 채 문학관 뜰 잔디 사이로 깔아놓은 박석(薄石) 돌을 밟으며 문학관으로 들어간다.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작가 최명희가 모 방송국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솜씨에 빠져들고 있다.

장편소설 <혼불>은 17년 동안 만년필로 만이천 페이지 원고지에 담은 소설이란다. 전시된 자료에 따르면 <혼불>은 당시 시대상이나 노봉마을 풍속사 그리고 남원골과 전주 그리고 저 멀리 만주 봉천 일대 역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소설 <혼불>은 남원 양반 가문의 몰락을 중심으로 잡초 같은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대하소설이다. <혼불>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매안마을 사람들의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결국 처연(凄然)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혼불> 속 매안마을은 1930년대 이씨 집안 종부 1대 청암부인과 2대 율촌댁, 3대 효원 아씨를 중심으로 종부 3대가 전개되는 배경으로 현재 남원골 노봉마을이다. 대나무가 매듭을 거듭하며 대를 잇듯 그들도 조상과 부모 자식으로 매듭을 거듭하며 대를 이어간다.

최명희 작가는 상서로운 생각이 깃털처럼 나부끼는 길광편우(吉光片羽) 취재 수첩을 옆에 끼고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새기는 심정으로 <혼불>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혼불>을 통해 시대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가 가득한 토속적인 남도 방언의 씨앗을 심고자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에서 모든 사물을 묘사하는 단어는 하나라고 한다. 1물(物)1어(語)설을 설파한 것이다.


작가 최명희 역시 <혼불>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하얗게 온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누가 과히 <혼불> 작품처럼 조선 여인의 한을 섬찟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옆 건물이 궁금해 지그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분의 해설사가 손님 기다리듯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해설사들은 시장통에서 마수걸이로 첫 손님 대하듯 반갑게 맞이한다. 한 중년 해설사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리는가 싶더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설사의 <혼불> 해설이 더 할수록 일행의 눈빛이 더욱 초롱초롱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문학관을 나오는데 청호저수지가 한눈에 보인다. 청호저수지는 <혼불> 소설 속 1대 종부 청암부인이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여 만든 저수지란다. 푸르스름한 호수 위에 청둥오리 떼가 빗방울 사이로 무리 지어 물질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해설사에 따르면 청호저수지가 완성될 무렵,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마을 사람들이 비통해하자, 청암부인은 콩깍지가 아무리 말라 비틀어 저도 콩이 새로운 싹을 틔우듯 언어가 있고 백성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누가 감히 나라 망했다고 말하냐고 외쳤다고 한다. 작가 최명희는 1대 종부 청암부인을 통해 나라와 백성의 관계를 콩깍지와 콩으로 비유한 것이다.

청암부인이 떠난 자리에 청둥오리 떼가 봄비를 맞으면서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달빛이 바람꽃같이 자욱한 어느 날, <혼불>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학의 향기가 깃든 남원골 혼불문학관을 다시 찾고 싶다.
#혼불문학관 #남원 #최명희 #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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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오마이뉴스, 대전일보 등 언론사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로 교육과 역사 문화, 여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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