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흥하고 도서관에서 망한 나라

[인터뷰]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저자 백창민 작가

등록 2025.05.30 11:36수정 2025.05.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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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창민 작가 (사진 : 정민구 기자)
백창민 작가 (사진 : 정민구 기자) 은평시민신문

백창민 씨는 소위 '도서관 덕후'다. 말하자면 도서관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전국 1,296개(2024년 현재) 공공도서관중 5백여 개의 도서관을 다녔다. 최근 이를 바탕으로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이란 책을 출간했다.

처음부터 도서관에 대한 책을 내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직장 생활이 끝나면 무얼 하고 살까? 나이 들면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시기. 주변에 물어도 뾰족한 답은 없고, 도서관을 드나들며 답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면 즐거운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는 나만의 콘텐츠로 도서관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까 하며 도서관을 다녔다. 그러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도서관의 역사,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도서관 이야기에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백창민 작가와 나눈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도서관입구에 있는 이범승 상. 업적뿐 아니라 친일행적에 대한 사실 적시도 함께 이뤄져야한다는 지적이다. (사진 : 구혜경)
도서관입구에 있는 이범승 상. 업적뿐 아니라 친일행적에 대한 사실 적시도 함께 이뤄져야한다는 지적이다. (사진 : 구혜경) 은평시민신문

서울 시내 주요 도서관들은 한국 근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중구 소공동에 있던 남대문도서관은 1964년 남산으로 밀려나 남산도서관이 됐다. 현재 남산도서관 지척에 있는 용산도서관은 박정희시대 공화당 중앙당사로 사용되다 1981년 도서관으로 개관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에 있는 '민족의 지도자상'이라는 부조가 건물의 과거를 증명한다. 지금도 교통이 불편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남산에 큰 도서관 두 개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도서관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얼마나 도서관을 가볍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어린이 도서관 중 가장 오래된 종로구 사직동의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사례다. 1978년 시립 아동 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이듬해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문을 연다. 도서관 내 한 건물을 '사직동팀'으로 알려진 비밀경찰 조직이 사용했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시민을 사찰하고 고문하는 불법 조직이 어린이도서관 내에서 18년 동안이나 '안가'로 존재했다.

의아하게도 정작 도서관 관계자들은 도서관의 흑역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순회 근무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도서관에 이런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고 하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란다. 사직공원과 인왕산이 근처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종로도서관.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이범승 선생의 상'이 있다. 이범승은 조선총독부로부터 부지와 건물을 무상으로 받아 종로도서관을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서관 선구자'로서의 업적과 함께 '친일 행적'에 대한 객관적 사실도 언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은평시민신문

백 작가는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고 그것을 후대에 전달하는 곳인데, 정작 도서관 자체의 역사나 기록에는 너무도 무심한 것은 아닌지 반문했다.

그동안 다녀본 많은 도서관 중 인상 깊었던 곳을 묻자 '덕수궁 중명전'을 꼽았다.


"역사적으로 가장 가슴 아픈 장소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처럼 없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한 나라가 도서관에서 망한 사례는 흔치 않거든요. 조선은 정조 시대 때 규장각이라는 왕실도서관 겸 국정 자문 기구, 개혁 정치의 산실을 통해 흥했던 나라인데,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장소가 도서관이었죠."

중명전은 1901년 고종의 도서관이었던 '수옥헌'이다. 이후 '중명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2010년 일반에게 공개했다. 중명전은 4만여 권의 책을 소장했던 황실도서관이기도 했지만, 을사늑약을 체결한 '망국의 현장'이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 망국을 막으려 했던 '구국의 장소'이기도 했다. 도서관으로 흥했던 나라가 도서관에서 망국을 맞은 드라마 같은 역사의 현장이다.

백창민 작가는 우리나라 도서관이 일제강점기와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우리 도서관이 일본에 의해 근대 도서관 제도를 이식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식 도서관을 따라갔어요. 그 과정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도서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부족했고요."

특히 여전한 '칸막이 열람실'을 가장 반독서적이고 반학습적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공간구성 자체가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자리를 빌려주는 기능에만 도서관의 역할을 한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제는 일본은 물론 해외 도서관들이 독서, 학습, 음악 감상 등 모든 활동을 한자리에서 가능하게 하지만, 우리 도서관은 여전히 열람실, 자료실, 디지털 자료실 등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관성'에 머물러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디지털 및 영상 시대에 발맞춰 도서관이 변화를 수용하고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칸막이를 넘어 미래로,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길

 백창민 작가 (사진 : 정민구 기자)
백창민 작가 (사진 : 정민구 기자) 은평시민신문

그렇다면 도서관 덕후로서 앞으로 우리 도서관은 어떠해야 할지 의견을 들어봤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모든 도서관이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비슷한 모습을 갖추려고 하지 말고, 지역마다 특색을 살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춘천의 담작은 도서관, 의정부 미술도서관처럼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도서관들이 더 늘어나야 하고, 어떤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 꼭 가봐야 하는 장소로 도서관이 손꼽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특정 주제에 집중한 도서관은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야구가 인기 스포츠가 되었는데도 야구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지역에 야구도서관 하나 없다는 것이 아쉽고, 특히 은평구립도서관처럼 높은 곳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져 일반인들이 가기 힘들다면 등산 관련 도서관으로 바꾸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더불어 도서관에 대한 투자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해 우리 정부의 전체 예산이 약 600조. 은평구의 한 해 예산이 약 1조 정도인데 출판문화 진흥원의 한해 예산이 500억 정도밖에 안 됩니다. 전국 1,296개 도서관의 장서 구입 예산이 천억 원 정도면 1개 도서관의 연평균 장서 구입 예산이 1억 원 정도인 셈이죠."

그는 예산만 봐도 정부와 우리 사회가 도서관과 출판에 얼마나 무심한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백창민 작가는 도서관이 다른 문화공간보다 사람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초고령사회가 된 우리나라에서 실버세대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터전이자 독서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창업을 준비하는 기지가 될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지식을 얻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른바 K-문화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의 위치에 있다. 기후 위기와 양극화, 초고령화 등 우리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문제는 다른 사회를 베낄 수도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 기반 시설이 바로 도서관이다. 그래서 더욱 도서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모든 변화는 내부의 힘만으론 어렵기 마련이다. 도서관 관계자들뿐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 도서관을 바꿔야 한다. 시민들이 더 좋은 도서관을 원하고 또 같이 힘을 모을 때 더 나은 도서관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백창민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도서관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저서 제목처럼 도서관은 '이토록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이토록 미래지향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지은이),
한겨레출판, 2025


#이토록역사적인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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