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진 히어스피치 대표 시각장애인 행사를 진행 중인 김 대표
김여진
김여진 히어 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일어나면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책부터 펼친다. 엄마이자 회사 대표, 교수로 살아가는 그는 남들보다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인다.
YTN 아나운서로 20년간 일했던 그는 4년 전 회사를 떠나 사회공헌 플랫폼 '히어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다. "나 혼자 잘 사는 삶"을 내려놓고 "내 주변과 사회에 이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히어 커뮤니케이션즈의 말 공부 플랫폼인 히어스피치는 '목소리로 세상을 밝히는 말 훈련소'를 표방한다. 단순한 스피치 교육을 넘어, 참여자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돕는 커뮤니케이션 교육기관이다. 주요 수강층은 20~70대 여성으로 낭독부터 화면해설, 현장해설까지 실전 중심의 훈련을 진행한다.
"기초과정을 마친 수강생은 바로 시각장애인 뉴스 방송에 도전합니다.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면서 나눔의 기쁨을 느끼는 거에요. 한 번 나눔을 경험한 사람은 절대 한 번만 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히어인'입니다."
김 대표는 인스타그램에서 실시간 낭독 방송인 '자기 전 낭독회'를 4년째 진행하고 있다. 방송을 시청하며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을 그는 '자기회 식구들'이라 부른다. 방송 1000회를 기념해 이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모아 영어 점자라벨 도서 70여 권을 성북시각장애인점자도서관에 기증했다. 목소리로 시작한 작은 실천이 사회공헌으로 확장된 셈이다.
"완벽하게 준비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나눔으로 이어진 많은 일들을 다 계획하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15일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흰 지팡이의 날은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 이동권 보장을 상징하는 국제 기념일로, 유엔이 지정했다. 시각장애인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김 대표의 수상은 그가 꾸준히 이어온 사회공헌 활동이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결과였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모처에서 김여진 대표를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 스스로를 '삶의 앵커'라고 소개하십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30대 후반, YTN에서 앵커로 일하던 시절에 문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란 고민이 들었어요. 부모님 건강이 악화하면서 가족에 대한 걱정이 커졌고, 사회와 일에 대해 고민했죠. 뉴스는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그 길을 계속 가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았어요. 아침마다 책을 읽으며 삶을 돌아보고 제 안에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혼자 화면에 나와 뉴스를 전할 때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 그 사람을 빛나게 할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죠. '삶의 앵커'는 그런 제 정체성과 다짐을 담은 표현입니다."
- 20년 넘게 '말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말'이란 뭐라고 보나요?
"평생 공부하고 다듬어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를 '말 공부 생활자'라고 부릅니다. 평소에 인터뷰나 강의가 끝나면 복기 노트를 써요. 부족한 점이 보여도 그렇게 해야 조금씩 나아질 수 있으니까요."
목소리도 갈고 닦으면 나눌 수 있어

▲장애 청소년들과 김여진 대표, 서경덕 교수 김 대표는 14년 째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김여진
- 사회복지 활동에 뛰어든 계기는 뭔가요?
"2012년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님이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홍보대사를 제안하신 것이 계기였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은 인력이 부족해 전문가를 초빙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무료로 장애인 행사 사회를 보거나 사회복지사들에게 홍보 업무를 교육하는 등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졌죠."
- '히어스피치'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요?
"장애인과 여성, 이 두 집단에 주목했습니다. 스피치 학원은 많지만 말하기와 사회공헌을 연결한 교육기관은 없었어요. 또 프리랜서 여성 앵커들이 출산 후 일을 잃는 현실을 보며 경력보유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들을 '퇴물'처럼 취급하는 면이 있어요. 계속 빛나왔고, 여전히 빛날 수 있는 여성들인데 그 기회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 왜 하필 여성입니까?
"여성의 말은 파급력이 강합니다.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교육현장에서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감정과 공감의 언어를 통해 공동체에 따뜻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거든요. 각자 삶은 달라도 여성들이 '목소리'라는 공통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이걸 갈고 닦으면 자신감도 높아지고,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훈련된 히어인들은 장애인·청소년 교육 현장에 강사로 투입되기도 해요."
- 외부에서는 그런 실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처음엔 '저 아줌마들이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어요. 저는 YTN 출신이란 이유로 전문가 대접을 받지만 사실 회사를 나왔기 때문에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히어인들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됐는지 알리려 노력합니다. 그저 예쁜 목소리가 아니라 준비된 목소리와 마음가짐을 갖춘 사람들이거든요."
- '나눔'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목소리든, 마음이든, 물건이든 누구나 무언가를 나눌 수 있어요. 저도 나눌 게 있으면 바로 나서요. 한 번 나누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거든요."

▲김 대표와 히어인들 흰 지팡이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눴다.
김여진
- 지난해 '흰 지팡이의 날'에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울컥했어요. 히어인들과 함께 축하하면서 지난 3년의 여정이 떠올랐죠. 전문 성우나 아나운서가 아닌 일반 여성들이 훈련을 통해 사회공헌 현장에서 목소리를 나누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거든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함께 닦아온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 목소리로 하는 사회공헌,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장애인을 넘어 청소년, 노인 복지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청소년 대상 낭독 교육, 노인 대상 1대 1 목소리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고 믿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을 비추는 ‘가로등 같은 기자’가 되겠습니다.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 세상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 자리에도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세심하고 다정하게 전하겠습니다.
공유하기
"비전문가 여성 집단이 목소리로 사회에 공헌한 최초의 사례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