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서(夢中棲) 꿈속에 깃들어 산다.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 詩로 피어나 천년이 흐르는 혼이 되다.
이명수
사랑을 위해 시 쓰는 재능을 가슴에 묻은 옥봉은 10년이 넘도록 시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는데,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 목사에게 편지 한 장을 써 주면 풀려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전들의 토색질이 분명했다. 아낙을 불쌍히 여긴 옥봉은 남편 대신 '위인송원(爲人訟寃)'이라는 시를 지어주었다.
洗面盆爲鏡 (세면분위경)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 (소두수작유) 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네
妾身非織女 (첩신비직녀) 첩의 몸이 직녀가 아닌데
郞豈是牽牛 (낭기시견우) 낭군이 어찌 견우이리오
이 사건이 벌어진 날은 칠월칠석이었다. 칠월칠석에 이 시를 지어, 견우가 아닌 자신이 어찌 소를 끌고 가겠냐는 재치 있는 비유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에 담긴 재치에 탄복한 파주 목사는 산지기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조원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크게 꾸짖고 내쳤다. 옥봉은 눈물로 용서를 빌었지만, 조원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소박을 당한 옥봉은 한양 뚝섬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내며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조원은 냉정하고 야박한 성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40대에는 그런 냉혈한을 그토록 오매불망 사랑했던 옥봉의 심리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면 조원은 내가 알지 못하는 대단한 매력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솔직히 알 수 없는 그 매력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고희를 바라보는 지금, 나는 조원이라는 인물보다 사랑의 아픔에 더 집중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데이트 폭력이 심심찮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회자한다. 심리학 책에서,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성모 마리아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여자들은 자신의 사랑으로 남자의 거친 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는다는 내용인데,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니 조원의 차가운 본성을 조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옥봉의 집착도,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여인이 있었다. 차가운 사랑에 묶여 평생 마음고생했던 여인. 그녀의 삶을 생각해 보니 옥봉의 절절함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옥봉의 시는 애절하기 그지없다. 꿈속에서도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을 가슴 절절하게 풀어놓았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진왜란 전쟁 통에 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후일담은 더욱 기이하다.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한 원로 대신이 다가와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이옥봉 시집>이라 쓰인 책이었다.
약 40년 전, 중국 해안가에 소복 입은 여인의 시신이 떠내려왔다. 그 몰골이 너무나 흉측하여 아무도 감히 건지려 하지 않았고, 시신은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를 떠다녔다고 한다. 담력이 센 사람을 시켜 그 시신을 건져내니 놀랍게도 온몸에 시가 적힌 한지를 친친 감고 있었다고 한다.
그 시가 너무도 절창이라, 해동 조선국 이옥봉이라 적힌 이름을 따라 시신을 정중히 묻고, 시는 책으로 엮었다고 했다. 그녀가 정말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그녀의 사랑과 시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웅변하듯 보여 준다.
아픈 사랑, 그리고 삶의 본질

▲샤스타데이지와 우미인화(꽃양귀비) 낮곁에 산책하다가 본 샤스타데이지와 우미인화(꽃양귀비). 샤스타데이지는 구절초와 많이 닮았지만 봄에 꽃이 피고, 구절초는 가을에 핍니다. 관화미심(觀花美心)-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내란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 공동체 모두가 상처를 받았고,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꽃도 보고 시도 읽으면서 마음을 차분히 정화할 시간입니다.
이명수
자신이 쓴 시를 온몸에 감고 바다에 뛰어든 옥봉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떠올랐다.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한 두 영혼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겹쳐 보였다. 한 여인을 향한 사랑으로 생을 던진 베르테르처럼, 옥봉 또한 그렇게 사랑했으리라.
40대에는 그저 '아픈 사랑'에 마음 아파했다면, 고희를 바라보는 지금은 그 아픔의 의미를 되묻는다. 오래전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김광석의 노래에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가사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 노랫말을 이해하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옥봉의 삶과 시는 진정한 사랑이 깊은 기쁨과 환희뿐 아니라 때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아픔까지 동반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는 비단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다'라고 했다. 옥봉은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랑의 아픔, 그리고 그 사랑이 좌절되었을 때 찾아온 죽음을 통해 삶의 가장 깊은 본질을 마주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시는 단순한 비극적 사랑을 넘어, 아픔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를 오늘날 우리에게도 묻는다.
시는 시간을 건너 마음을 꿰뚫는다. 이옥봉의 시처럼, 어떤 시는 당신의 가장 깊은 그리움과 마주하게 만든다. 이옥봉의 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삶을 더 깊이 통과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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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4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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