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

등록 2025.05.31 17:56수정 2025.05.3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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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목요일 아침 휴대폰 벨이 울려 잠결에 받았는데 아무개 언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들뜬 목소리로 "오늘 사전투표 날이잖아. 지금 투표하고 왔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아"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30분. 나 보고도 투표하라고 독려한다. 아무개 언니와는 작년 12.3 내란으로 부쩍 가까워졌는데 한 달 전부터 사전투표 일이 언젠지 체크했었다. 빨리 투표하고 싶다고.

작년 12.3 내란이 아니었다면 조기대선은 없었고 나의 성향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투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귀찮아서 나 한 표쯤이야 하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투표한다고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성향을 따지자면 무지한 보수였다.


그러나 작년 12.3 비상계엄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3년 전 우려했던 검사 출신 대통령은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비상계엄이라는 무리수로 탄핵되었다. 파면된 후의 행보를 보더라도 굉장히 이기적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무거움은 애당초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왕관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비상식적 행동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국격은 떨어졌다.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잘할 것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까지 무책임하고 파탄 낼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 한 표쯤이야 하며 우습게 봤던 대가다.

내 나이 오십 중반을 넘었다. 이제야 세상이 조금씩 보인다. 그동안 투표를 한 적도 안 한 적도 있지만 이번처럼 진지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투표 여부를 물었더니 한다는 사람도 있고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사전투표를 보관하는 3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본투표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밀투표 라며 말해주지 않는다.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기 대선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면 '나는 바보가 아니다' 라는 말로 대신한다.

성향이 달라 한동안 통화하지 않았던 극우 OO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투표할 것인지 물었더니 "투표해야지"라고 한다. 누구한테 할 건지 물었더니 " 뻔한 걸 묻냐"고 반문한다. 뻔한 게 뭐냐고 다시 물었더니 바쁘다며 전화를 끊는다. 뻔하다는 게 이제라도 상식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극우 지지를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어 문자를 남겼더니 답이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내가 한 표 찍는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그러나 나는 그 한 표의 중요성을 이번 계엄을 통해 알았다. 권력을 남용한 통치자의 독선과 오만에 맞서 이긴 것은 다름 아닌 개개인의 연대가 보여주었던 국민들의 거대한 힘이었다는 것을. 그 어떤 권력도 주권자인 국민을 이길 수는 없고 중요한 순간마다 국가를 구한 것은 국민이었다고. 국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민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우리의 권한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귀찮아서 일수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투표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주어진 이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대의원 제도가 있어 성인들이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했다. 투표권을 얻기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면 소중한 투표권을 함부로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표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던 사람들에게 과거 대의원 제도로 투표하지 못했던 일화를 설명해 주면 숙연해진다.


또한 투표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그 권리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본질이 약화될 수 있다. 각자가 선택에 참여함으로써 국가의 운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모두가 공정하게 의견을 나누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조기 대선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투표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책임이다. 이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한 표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내가 가진 소중한 한 표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투표는 단 한 번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쌓여 만들어가는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새벽 일찍 투표를 마쳤던 아무개 언니말을 떠올리며 사전 투표 둘째날 게으른 마음을 뒤로 하고 걸어서 이십여 분 거리에 있는 투표 장소로 향했다. 내가 간 한낮에는 한산했다. 투표용지를 받아 누가 볼까 커튼을 잘 치고 조심스럽게 도장을 꾹 눌렀다. 도장이 반만 찍혔다. 오싹했다. 무효표가 될까 그 위에 다시 눌렀다. 선이 살짝 겹쳐졌지만 여전히 다 안 찍혔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난감했다. 도장 한쪽이 마모된 듯했다. 투표용지를 다시 달라고 할 수도 없어 한참 동안 그냥 서있다가 나왔다. 평상시라면 무시했겠지만 이번엔 한마디 했다. "인주가 반만 찍힙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칸 안에만 찍히면 무효가 아니니 괜찮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진지한 한 표가 있을까 싶다. 아직 본투표가 있다. 사전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본투표에 참석해 소중한 권리 행사를 하기 바란다.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조기대선 #사전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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