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이희훈
선거철 고등학교의 '공기'는 교문 밖과 확연히 다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 때 이준석 후보의 이른바 '젓가락' 발언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는데도, 아이들은 뭐가 문제냐는 식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 일색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 정도의 발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혐오와 갈라치기. 이준석 후보의 선거 운동 전략이자 그의 오랜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단어다. 상대 후보가 그의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면 "증거를 말해보라"고 되레 역정을 내며 상황을 모면했지만, 그도 잘 알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처럼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쭙잖은 '논리'를 들이대는 궤변론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특히 남자 고등학생들의 '이준석 사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아직 선거권이 없는 그들 사이에선 그가 대통령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금은 '꼰대들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맥을 못 추고 있지만, 청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될 10년쯤 뒤엔 '이준석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대선 후보가 아닌, '인간 이준석'에 대한 한 줄 평을 부탁했더니, 교실은 순식간에 '종교 집회'를 방불케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질문만 건넸을 뿐 그들의 평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삼갔다. 되레 고개를 끄덕이는 등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고, 부러 생각하지도 못한 내용이라며 맞장구치는 시늉까지 했다.
"지금껏 저렇듯 똑 부러지게 말 잘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그의 '논리적 언변'에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상대방이 어떤 내용을 질문하든 순발력 있게 명쾌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또 있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논리적인 반박이 안 되니, 토론하다 말고 나이를 내세워 그를 훈계하려는 듯한 상대방의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고 꼬집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훈장질'이다.
무엇보다 그가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대선 후보자 토론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은 그의 진면목과 거리가 멀다고 짐짓 두둔했다. 일단 서로를 비방하고 보는 '네거티브'가 기본인 후보자 토론에선 어쩔 수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TV든, 유튜브든 평소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고 그의 역량을 판단해 보라고 권했다.
이준석을 '반페미니즘 전사'라고 부르는 아이들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이라는 하버드대를 졸업했잖아요.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죠?"
그의 출중한 토론 실력과 광범위한 지적 역량은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됐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를 시샘하는 사람들 태반은 '학력 콤플렉스'에 기인한 거라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탁월한 학업 성취를 이룬 그를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말꼬리를 잡고 험담하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지질해 보인다고도 했다.
아이들에게 그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선망의 대상'이자 '롤 모델'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그의 말을 마치 한 점 오류도 없는 '신의 계시'처럼 여기는 듯했다. '지잡대'에서 '인 서울', 'SKY', 의치대로 이어지는 학벌 구조의 최정점이 하버드대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청년 세대를 위한 저리 대출과 연금 구조 개혁. 청년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공약이 있나요?"
아이들은 그야말로 미래가 불안한 청년 세대의 '가려운 데를 정확히 긁어줄 줄 아는' 후보라고 말했다. 50~60년대에 태어난 구세대 정치인들은 입으로만 청년들을 위한다고 떠들어댈 뿐 정작 그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단정했다. 이는 자연스레 이준석 후보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정치권력의 세대교체 주장으로 이어졌다.
다만, 그들의 관심은 공동체적 가치나 실현 가능성에까진 미치지 못한다.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주식이나 코인 투자라도 하려면 종잣돈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부박한 현실 인식과 기성세대가 누리는 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들에겐 취업 시장이 왜 좁아지는지, 과거 정부마다 왜 연금 개혁이 실패했는지 따져 볼 여유가 없다.
"정부 부처를 통폐합해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공약도 마음에 들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의 바람인 여성가족부도 당연히 폐지되겠죠."
공무원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은 기성세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기관이든 승진에 목매단 이들만 땀 흘려 일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눈치껏 시간만 허비한다는 거다. 아이들조차 공무원이라는 단어 앞에 대번 '철밥통', '무사안일' 등의 수식어부터 떠올린다. 이는 관료 집단에 대한 맹목적 불신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그가 공약집에서 대놓고 내세우진 않지만, 아이들이 '이준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바로 '여성가족부 폐지'다. 공약집의 정부 부처 통폐합은 그것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라는 거다. 아이들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내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도 그의 아이디어일 거라고 믿는다. 그를 두고 '반페미니즘 전사'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준석 키즈'로 불리는 걸 꺼리지 않는다

▲ 지난 5월 15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민
"저희에게 선거권이 있다면,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준석'이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열 명 중 예닐곱은 될 겁니다."
이들에게 이준석은 '미래의 대통령'이다. '떼 놓은 당상'이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사용할 정도다. 이준석이야말로 숱한 '꼰대'들에 맞서 청년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여야와 좌우, 진보와 보수 따위의 잣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나'와 '남', '신세대'와 '구세대'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그들의 주장과 대화를 '사심 없이' 들었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이준석' 하면 혐오와 갈라치기라는 용어부터 떠올리는 나를 그들도 쉬이 이해하진 못할 성싶었다. 만약 그를 두고 '40살 윤석열'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건넸다면, 큰 소란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의 이름 앞에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섣부르지만, 남자 고등학생들의 각별한 '이준석 사랑'은 최근 몇 년 동안 급속히 진행된 '교실의 극우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에서조차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당연시하는 그들에게 이준석은 부와 권력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 '최후의 승자'다. 승자독식마저 '합리적 차별'로 여기는 아이들에게 지금 이준석만큼 맞춤한 리더는 없다.
요즘 아이들은 '이준석 키즈'로 불리는 걸 딱히 꺼리지 않는다. 대다수가 그를 '롤 모델'로 삼아서인지, 그를 닮고 싶어 하는 바람의 표현 정도로 여길 따름이다. 지금 교실엔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그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미칠 파장이 만만찮다는 뜻이다. 과연 그는 아이들의 예견대로 '미래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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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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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고등학생들의 남다른 '이준석 사랑', 교실이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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