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해양풍력단지 예정 추자도 바다에 상괭이들이 살고 있어요

[인터뷰] 망망대해 바다에서 '상괭이의 편'이 된 그린 디자이너 김보은씨

등록 2025.06.08 11:50수정 2025.06.08 15:2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에서 한 달에 한 번 제주에 와 며칠씩 머물며 제주 곳곳을 탐사하는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디자인에 지속가능성을 입힌 그린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인 김보은 님을 지난 5월 21일 제주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났는데요.

얼마 전엔 아예 서귀포에 집을 구해 육지와 제주에서 반반살이를 한다네요. 동생과 함께 '어라우드랩'이라는 그린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제주 바다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김보은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만들면 버리고, 만들면 버리고

 상괭이 조사를 위해 배를 탄 김보은 님
상괭이 조사를 위해 배를 탄 김보은 님 김보은

- 보은 님에게 '바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두 장면이 떠오릅니다. 내가 바다를 진짜 사랑하나 보다 생각했던 시점이 딱 있거든요. 2015년에 필리핀 보홀에서 프리다이빙 교육을 받았는데 10m 수심에서 중성 부력을 딱 맞추고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그 순간이 되게 좋았어요.

그 무렵 디자인 스튜디오 회사를 새로 만든 상황에서 머릿속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수심 10미터에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그 순간,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는데 바다엔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냥 흰색의 부유물 같은 것들만 점점이 떠다녔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대략 1분 정도 멈추어 서 있었어요. 그 시간이 너무 평화롭더라고요. 바다가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로그북에 "나, 바다를 정말 사랑하게 된 것 같다"라고 썼어요.

다른 하나는 최근의 일이에요. 제가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상괭이 편' 활동을 하는데요. 하루에 여덟 시간이나 아홉 시간 동안 배를 탄 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괭이를 기다리며 그냥 계속 바다만 보고 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는데 망망대해 그 바다가 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두 장면이 생각나네요."


- 프리다이빙은 언제부터 시작한 건지, 또 어떻게 하게 된 건지 궁금한데요?

"바다에서 내가 자유롭게 놀려면 뭘 해야 하나,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게 프리다이빙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프리다이빙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어요. 기록에 도전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냥 물 위에 떠 있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수영처럼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계속 움직여야 하는 것보다는 그냥 물속에서 편안하게 부유하며 있는 것을 좋아해요."


 프리다이빙하는 김보은 님
프리다이빙하는 김보은 님 김보은

- 부유하고 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에요?

"되게 편안해요. 물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꼬르륵꼬르륵 같은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물이 움직이면서 내 피부를 감싼다는 느낌, 스쳐간다는 느낌 그게 좋아요. 저는 아래쪽에 누워서 수면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햇빛과 수면의 파도가 만들어내는 잔상 같은 걸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 가만히 있을 때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 느낌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저도 몇 년 전에 수영 못하는 상황에서 구명조끼 입고 삼달리 바다에 뛰어든 적 있거든요. 무서워 허우적거리는 저를 보고 함께 간 분이 "힘을 빼고 스스로를 믿으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했더니 진짜 편안하게 바다에 떠 있게 되었어요. 때마침 비까지 내렸는데 얼굴로 쏟아지는 비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안온하고 편안하고 심지어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맞아요. 다들 그렇게 바다에 빠져든답니다.(함께 웃음)"

- 활동의 여러 현장에서 자주 뵙게 되는데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저는 그래픽디자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디자인 작업에서 어떻게 환경적 영향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예전에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는데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제작 넘기는 것까지가 저의 일이었어요.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가족들 다 함께 갔죠.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 제 이름이 뜨는 것 보고 나왔는데 쓰레기통에 팝콘과 온갖 일회용 컵과 함께 제가 만든 영화 리플릿이 엄청나게 버려져 있는 거예요.

요즘은 많지 않은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관에 리플릿이 엄청 깔렸었거든요. 내가 만든 게 저렇게 다 버려지는구나, 직접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에 광고 회사를 다녔는데 거기도 대기업 광고물품을 엄청 많이 만들거든요. 만들고 또 버려지고 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보며 회의감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해서 좀 더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저기 찾다가 윤호섭 교수님이 있는 '그린디자인' 학과를 알게 되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녹색연합과 핫핑크돌핀스 같은 단체도 알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제주 강정마을에 필요한 디자인 작업도 하고 가리왕산 관련해 오륜기 포스터도 직접 만들었어요.

2014년의 일인데요. 당시 가리왕산의 상황을 접하면서 어떻게 500년 넘게 있던 숲을 올림픽 경기의 며칠을 위해 다 베어낼 수 있는가 분노했어요. 제가 SNS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아니고 누구에게 잘 떠들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해서 그냥 제 나름의 방법으로 그래픽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오륜기 작업이에요. 엽서 크기로 출력해서 가리왕산 벌목 위기에 처한 나무들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 모습을 녹색연합 활동가가 보더니 캠페인에 사용해도 되는지 묻더라고요. 그러라고 했죠."

 2주간의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500년 된 나무들을 베어내고 숲을 파괴하는 현장을 알린 오륜기 포스터
2주간의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500년 된 나무들을 베어내고 숲을 파괴하는 현장을 알린 오륜기 포스터 김보은

모니터 앞에서 현장으로 한 걸음

- 올해 초 녹색연합 총회에서 '아름다운 지구인상'을 받으셨던데, 녹색엽합과 오래전부터 그런 인연이 있으시군요. 그런데 디자인이 직업인 분이 어떻게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탐사대 활동까지 하게 된 걸까요?

"녹색연합과 인연을 맺고 이후 여러 단체와 기관의 환경 관련 캠페인이나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십여 년을 하다 보니 회의감이 밀려오더라고요. 저는 계속 그 활동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저는 현장의 사람이 아닌 거예요. 이제 컴퓨터 앞을 벗어나서 현장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때마침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 생겼고 현장 활동인 탐사대 활동에 지원한 거죠. 제가 바다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바다에 관심이 많았어요. 파란에서 '해양보호구역탐사대' 모집 안내가 떴는데 서울에서 매달 내려온다는 게 쉽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2025년 3월 녹색연합 총회에서 '아름다운 지구인상'을 수상한 김보은 님(왼쪽에서 다섯 번째)
2025년 3월 녹색연합 총회에서 '아름다운 지구인상'을 수상한 김보은 님(왼쪽에서 다섯 번째) 녹색연합

- '해양보호구역탐사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주도를 네 개 권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해양보호구역들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직접 보고 기록하는 활동이에요. 한 구역에서 2박 3일씩 머물며 돌아보았는데 뭐랄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제주가 아름답다 또는 망가지는 게 안타깝다 그런 생각이었는데 이번에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같은 물음표가 더 많아지더라고요. 한 공간을 배에서 보기도 하고 육지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또 물속에서 보기도 하고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보는 기회도 특별했던 것 같아요.

함께 조사하고 기록한 결과를 파란에서 <해양보호구역탐사대>라는 책으로도 냈어요. 제가 글을 쓴 부분은 추자도 편이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해상풍력단지 건이에요. 추자도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가 계획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주민들 간에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나누어져 있어요. 저희가 양쪽 입장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양쪽 입장의 주민들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저는 이렇게 찬성과 반대 입장의 주민들을 직접 만나본 건 처음이에요. 만나고 보니 새로운 걸 알게 되었어요. 찬성하는 분들과 반대하는 분들의 생각은 서로 끝에서 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고 보니 그 양쪽이 그리 멀지 않다고 느꼈어요. 서로 우려하는 바를 알고 계셨고 나름대로 추자도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찬반으로 나뉘어 서로에 대해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서로가 우려하는 바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해결 방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겠네요. 보은 님은 현재 '상괭이 편' 활동 중이시던데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요?

"추자도 해상풍력발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괭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해양풍력단지가 예정된 추자도 바다에 상괭이들이 살거든요. 한 번도 조사된 적이 없는 추자도 상괭이의 존재를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정준 감독님의 영상에서 상괭이를 봤는데 그 상괭이가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배영 하듯이 상괭이가 배를 하늘로 향해 수영을 하는데 꼭 저 같아서 마음이 많이 갔어요. 상괭이는 고래의 일종인데 등지느러미가 없어서 어디에 어느 만큼 존재하는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상괭이의 존재를 알고 우리가 상괭이의 편이 되어주자는 의지를 담아 팀의 이름을 '상괭이 편'으로 정했습니다. 작년 11월부터 배를 타고 답사하며 준비했고 본격적으로는 올해 1월부터 시작했어요. 2박 3일 동안 배를 타고 추자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목시조사를 통해 상괭이가 바다 위로 나오는 것을 관찰 중입니다."

재생에너지 좋지만 바다 생물들도 고려해야

 망망대해 바다에서 배를 타고 상괭이의 존재를 조사하는 김보은 님
망망대해 바다에서 배를 타고 상괭이의 존재를 조사하는 김보은 님 상괭이편

-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상괭이를 기록하느라 망망대해를 보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어떤 마음으로 그 활동을 하시는지요?

"아무것도 없는 바다를 그냥 무한히, 무념무상으로 계속 보거든요. 되게 평화롭기도 한데 또 되게 힘든 시간이기도 합니다. 3월 4월은 좀 괜찮았는데 1월 2월은 너무 추웠어요. 배 앞머리에 나가 바람을 온전히 맞으며 하루 종일 지켜보는 게 일단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너무 춥고요. 한 사람은 망루에 있고 한 사람은 좌측에, 다른 한 사람은 우측에 이렇게 자리 잡고 있다가 한 시간에 한 번씩 자리를 바꿉니다. 후미 쪽에 있는 사람은 그 시간에 쉬게 하는데 그때 잠깐이라도 잠을 자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 그렇게 고생하다 드디어 상괭이를 발견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어서 처음엔 파도의 물결과 구별이 좀 어려워요. 한참을 보고 나니 상괭이가 물결과 확실히 다르긴 하더라고요. 물에 젖은 상괭이의 매끈한 회색 등이 물 위로 나와 햇빛에 반짝거릴 때 너무도 예쁘죠. 1월부터 계속 보였어요. 한두 마리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스무 마리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도 봤어요. 자유롭게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데 진짜 아름답더라고요."

 바다 위로 매끈하고 반짝이는 회색 등을 드러낸 상괭이
바다 위로 매끈하고 반짝이는 회색 등을 드러낸 상괭이 상괭이편

-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상괭이의 입장, 상괭이 편에 선다는 뜻의 '상괭이 편'이란 이름이 굉장히 재밌네요. 이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의 화력이나 원자력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환경적, 사회적 영향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텐데요. 당연히 그 바다에 살고 있던 생명들을 우선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상괭이 편'이 하는 활동은 그 생명들 중 하나인 상괭이가 이 바다에 살고 있음을 조사하고, 알리는 것이에요. 더 나아간다면, 해상풍력개발이 상괭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데이터로 만들어 활용되어지길 바라고요, 그것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 말씀을 듣고 보니 제주 바다와 바닷속 생명체들을 향한 보은 님의 다정한 마음과 활동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게 되네요. 감사드리고 응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제주바다 #기후위기 #상괭이 #해양시민과학센터파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 섬과 뭍을 오가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홍시'라는 별칭을 쓰고 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나 빼고 다 잤다"는 고2 딸의 하소연, "수업 들어줘서 고맙다"는 교사 "나 빼고 다 잤다"는 고2 딸의 하소연, "수업 들어줘서 고맙다"는 교사
  2. 2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영화계 실망... "모욕감 느낀다"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영화계 실망... "모욕감 느낀다"
  3. 3 2년간 싸운 군의원 "김건희 특검, 양평군 도시건설국장 주목해야" 2년간 싸운 군의원 "김건희 특검, 양평군 도시건설국장 주목해야"
  4. 4 '국힘 지지' 엄마에게 쏘아붙인 한마디... 후회한 뒤 내가 한 일 '국힘 지지' 엄마에게 쏘아붙인 한마디... 후회한 뒤 내가 한 일
  5. 5 유기 농사꾼이 제초제 없이 풀 매는 법 유기 농사꾼이 제초제 없이 풀 매는 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