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0.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사회 21대 대선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오른쪽에서 두 번째 봉투를 들고 있는 사람이 희생자 이재현 군의 어머니 송해진 님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2025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참사의 목격자가 되는 일이다. 참사와 참사 사이,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게 목숨을 잃고, 우리는 그 사실을 마치 일상처럼 지나쳐 간다. 그 무감각이 때로는 죄책감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참사는 계속되지만,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또 다른 참사가 기다린다.
청소년 세대는 이미 수많은 참사를 목격하며 자랐다. 반복되는 참사와 그에 대한 무대응,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우리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안전한 나라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대한민국은 안전하다"는 구호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반복되는 참사와 정부의 무대응 속에서, 국가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게,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국가는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참사 이후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은커녕,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제대로 된 배보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슬픔과 고통에 찬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이 사회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 사회의 잘못된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정부와 권력자들, 책임을 회피하고 사실을 은폐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모른다.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 왜 구할 수 있던 생명들을 잃어야 했는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는 또 한 번 '참사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파가 그렇게 몰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인력이 투입되지 않았는지, 왜 신고가 빗발칠 동안 신속한 대응이 없었는지, 참사 발생 후에도 국가의 존재는 없었다.
정부는 유가족들의 애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희생자들을 '마약 사범'이라며 모욕까지 했다. 진상 규명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대응과 2차 가해 속에서 고통을 겪었다.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책임을 회피하고 사실을 은폐하는 모습은, 국가와 정부가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참사를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끝나지 않은 참사는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기억하고 말하고 연대하기

▲2025.05.20.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사회 21대 대선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모두가 안전한 참사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피켓을 든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김여영 님.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참여연대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던 지난 5월 20일, 대선을 앞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태원 참사 기억 공간인 별들의 집을 방문해 고등학생 희생자 이재현군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께 드렸던 질문은 참사의 기억과 연대에 관한 것이었다. '참사를 기억하고 연대하려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참사를 마치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처럼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나누며 참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어머니는 '이야기'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말을 이었다. 참사를 일상에서 이야기하는 것, 그것도 단순히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로만 대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참사를 잊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이야기로 이어져 계속해서 세상에 남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잊히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화의 핵심은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참사를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하셨다.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으로도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을 마주한 어머니의 말씀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공공기관과 정부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민을 우선시하기는커녕, 책임 회피와 꼬리 자르기만 반복하고 있다고 하셨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이 먼저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고, 시민 재해에 대한 법적 대응을 강화하는 현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이 깊이 와 닿았다.
사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참사를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사회가 변화하려면, 제대로 된 법이 제정되고,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참사 피해자를 위한 법, 그리고 참사를 책임지는 정부와 사회를 위한 법 제정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참사는 잊지 말고 외쳐야 한다. 기억이 가진 힘은 강하고, 우리가 잊지 않음으로써 그 참사는 세상에서 잊히지 않게 할 수 있다. 유가족과 피해자의 목소리가 허공에만 맴도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듣고, 답하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참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것이 바로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 연대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 2024.11. 10.29. 이태원 참사 기억 소통 공간 ‘별들의 집’ 소개문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 2024.11. 10.29. 이태원 참사 기억 소통 공간 ‘별들의 집’ 소개문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시민의 힘으로 만든 21대 대선이 끝났다. 대선을 앞두고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외치며, 사회적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히 촉구했다. 이제 그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게 넘어갔다.
시민들은 윤석열 정권 하에서 정부가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일관했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분노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은 향후 차기 정부에 생명 존중과 안전 사회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이자 청소년으로서, 나는 새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안전 사회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그날'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이 더 이상 참사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없는, 진정으로 안전한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외침이 단지 바람에 흩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는 더 이상 무대응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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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전한 경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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