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공사 바닥을 콘크리트로 채워 물이 빨리 빠져나가게 한다
한무영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말 앞에 누구도 반대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안전한가? 공학적으로 보면 이 구조물은 여기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물은 빠르게 하류로 흘러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증가한 물은 토양을 침식시키고, 더 많은 토사를 실어 날라서 하류에 있는 사방댐을 채우게 된다. 계곡의 건조한 바닥은 기온을 올려 도심을 더욱 뜨겁게 만든다. 결국 산불의 위험도 높아진다.
이런 공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산지 곳곳에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산불 이후엔 더하다. 정부에서는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중장비가 산속 깊숙이 들어가 형질을 변경하고 생태계를 밀어낸다. 더 놀라운 건, 작은 두꺼비 한 마리에도 민감하던 환경단체조차 이런 대규모 정비공사에는 관대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정말 알 수 없다.
생각을 바꿔보자
왜 토사가 내려왔을까? 수천 년 동안 멀쩡하던 계곡이 왜 갑자기 토사에 뒤덮이게 되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그런 것이니 어쩔수 없다고 체념하고 그대로 받아 들인다. 공학자의 생각은 다르다.
해답은 상류에 있다.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고, 주차장이 만들어졌다. 빗물이 땅에 스며들 틈 없이 모두 흘러내리게 된 것이다. 같은 비라도 훨씬 많은 물이 계곡으로 쏟아진다. 공학적으로 설명하면, 지표면의 형질이 바뀌어 유출계수(runoff coefficient, C)가 증가한 탓이다.
이전엔 비가 10 내리면 3~4만 내려갔는데(C=0.3~0.4), 지금은 8~9가량이 쏟아져 내려간다(C=0.8~0.9). 예전과 같은 비가 오더라도 예전보다 두세 배 넘는 물이 하류로 몰리게 되는 셈이다. 기후변화가 유량에 미치는 영향보다 형질 변경으로 인한 유출량 증가가 훨씬 크다.
즉, 원인을 알고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막을 수 있었고, 지금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위적 형질변경의 결과, 즉 '인재(人災)'다.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되는 이른바 '기후위기 대응 사업'이 결국 기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더 큰 사업비를 들여 더 큰 파괴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진정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면, 더 큰 돈을 들이더라도 진짜 원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학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검증하며, 정확한 진단과 책임 있는 처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예산만 내려오면 "착실히 쓰면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피해는 반복되고, 생태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공사들이 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묻고 그에 대한 공학적으로 합리적인 답을 구해야 한다. 예산이 올바르게 편성되고 쓰이도록 시민 스스로 감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장비가 들어간 계곡엔 더 이상 추억도, 생명도, 미래도 흐르지 않는다.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풍경을 물려주지 않도록, 그 비용마저 떠넘기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막아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