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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는 김애란의 '입동'

단편집 <바깥은 여름>...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등록 2025.06.10 16:18수정 2025.06.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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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바티칸의 '피에타상' 앞에 섰을 때 보았던 마리아의 왼손이 생각난다. 둘 곳 몰라 헤매는 어머니의 왼손. 아들을 감싸안지 못한 어머니의 그 손은 뼈저린 탄식 같았다. 망연자실 넋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이 어찌할 바 모르는 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드러내지 못하여 내면으로 돌진하는 어머니의 뜨거운 오열이 떠돌던그곳. 아들의 주검을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고통에 '어찌 하오리까? 되돌릴 수 없나요?'란 비탄이 가득 찬 듯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그것은 짐짓 평온한 것처럼 보이나 참척의 절정이었다.


 바티칸 여행 당시 참척의 절정을 담은 '피에타상' 앞에서.
바티칸 여행 당시 참척의 절정을 담은 '피에타상' 앞에서. 오순미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반역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다고 해 단장(斷腸)이라고도 한다. 참척의 고통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이면서 가장 큰 불행이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7편이 실린 <바깥은 여름> 중 '입동'은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아픔을 다룬 이야기다.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로 52개월 된 아들을 잃은 부부.

부부에겐 구석구석 슬픔이 고였지만 퍼내기가 힘들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생전의 아이를 떠올리고 울부짖다 체념하기를 반복하는 것. 그들만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기를 지속하는 것뿐이었다.

 김애란 단편집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김애란 단편집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오순미

꼭 다문 입술에 내면의 고통을 숨긴 마리아처럼 소설 '입동'의 부부 역시 슬픔의 극치를 침묵과 바꿨다. 상실과 애도를 노출하지 못하는 절제의 방식이 마치 현대판 피에타 같았다. 드러내지도 도려내지도 못한 슬픔 안에서 부부는 참척 이후의 삶을 붙잡느라 애썼다.

차가운 시간 속으로 따뜻한 생명이 사라진 후 부부의 마음은 차디찬 대리석처럼 식어갔다. 일상이 비통이었던 것처럼 거기에 잠겨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닥친 고통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삶은 표현 불능일 수도 있겠지만 이웃이 자신의 슬픔을 관찰한다는 느낌 탓도 컸다.


한번은 아내가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십 분 만에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길 본다고, 나는 안 그러냐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 - 김애란 단편집 <바깥은 여름>에 실린 '입동' 중 28쪽, 큰글자책

자식 잃은 부모는 '밝은 색 옷을 입어서도, 웃어서도 안 되지'처럼 암묵적인 기준 사이에서 자기만의 애도를 꺼내지 못해 고립을 겪는다.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데 자꾸 타인의 시선이 끼어들어 참견한다. 아내가 상실 이후의 삶에서 온전한 애도를 누리지 못한 데는 슬픔의 형식을 요구한 타인의 간섭을 배제할 수 없다.

대형 참사 발생 시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 일어나는 걸 우린 보았다. 슬픔의 끝을 사회가 관여하고 권유하여 일찌감치 종결하려 드는 것도 지켜봤다. 사회적 억압에 눌린 수많은 부모들이 애도의 자유를 뺏긴 채 슬픔을 삭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충격으로 넋이 빠져 있던 한동안이 지나자 참사 자체를 일상에서 떼어 내서 원격지로 몰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슬픔이라는 정서는 전망 없고 폐쇄적인 심리 현상이고 한恨에 침잠해 있으면 개인의 삶은 퇴행하고 국가 경제가 오그라져 먹고살기 어려워진다고 말 힘 좋은 논객들이 말했다.(김훈 산문 <허송세월>에 실린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중 115쪽)

그들도 처음엔 함께 탄식하고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관찰자로 입장을 바꿨다.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그만 울라며 다그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울부짖음이, 우울이 내 것이 될까 두려우니 끝을 내라고 압박하면서.

끝을 정했으니 이후의 울부짖음은 칭얼거림으로 간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식으로 슬픔을 차단하려 들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에서 말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알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왜 학교에서는 '슬픔학學'을 가르치지 않는가. 혼자 공부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런 벽에 부딪힌다. 예컨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뿐이다,라는 벽. 내가 지금 아는 것은 지금 알 수 있는 것들뿐이어서, 내가 아는 슬픔은 내가 느낀 슬픔뿐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부딪힌 그 불가능의 자리에서 진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다.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영원히 공부해야 한다.(신형철의 시화詩話 <인생의 역사>에 실린 '언제나 진실한 것은 오직 고통뿐' 중 48~49쪽)

우리에겐 직접 경험한 슬픔만 내 것이 되는 한계가 있으므로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이해하려면 공부해야 한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해석하지 않으려면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시선을 배워야 한다. 타인의 슬픔은 언젠가 내 것이 되기도 하므로 타인의 슬픔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모르니까 더는 못해'에서 끝나면 타인의 슬픔은 고립되고 억압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해될 때까지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참척이란 회복되는 게 아니라 사는 내내 따라다니는 슬픔이다. '하나 더 낳으면 되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란 위로는 오히려 무지한 폭력일 수 있다. 회복해야 한다고 서두르기보다는 충분히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주변과 사회가 취할 자세라는 걸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에 실린 또 다른 단편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풍경의 쓸모',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7편의 소설들이 가진 상처나 상실 중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허다하다. 우리의 것으로 이해하려면 알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그래야 참척의 아픔과 이별의 상처, 청년 실업의 고뇌가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하려고 우리에게 기회를 준 소설이 <바깥은 여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바깥은 여름 (여름 한정판 리커버)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2017


#바깥은여름 #김애란 #입동 #단편소설 #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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