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작업장 온도 측정 2024년 7월 4일 오후 조선하청지회가 한화오션 현장 곳곳에서 측정한 온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또 있다. 어느날 여성 조합원에게 제보 전화가 왔다. 자기와 같이 일하는 동료 여성 노동자가 말해줬는데, 아들이 다니는 하청업체에서 이십대 젊은 노동자가 온열질환 때문에 며칠 안 나와서 집에 찾아가보니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확인해 보니 그 말을 한 아들이 집에 찾아가 가장 먼저 사망 노동자를 발견한 회사 동료였다. 한 다리 건너 들은 것이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의 진술이라는 점에서, 굳이 없는 말을 보태거나 꾸밀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꽤 신빙성이 있는 제보였다.
정규직노동조합에 연락해서 사실 확인을 요청하고, 그 회사에서 일하는 탈퇴한 조합원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마침 그는 장례식장에 있었다. 내가 제보받은 내용을 말하고, 혹시 아는 사실이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노동자는 제보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망한 노동자는 '자연사' 했다고 말했다.
자연사. 자연사라니. 이십대 젊은 노동자가 어떻게 죽어야 자연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예상치 못한 전화를 갑작스레 받고, 급하게 말하다보니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선택한 것이리라 짐작됐다. '자연사'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오히려 의구심은 더 커졌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은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제보했던 여성 조합원에게 노동자 사망 사실을 전했던 동료 여성 노동자가 말을 바꿔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정규직노동조합이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사망 노동자가 온열질환이 있었다는 제보는 사실이 아니며, 다음부터는 부정확한 내용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막막했다. 고향은 멀었고, 이십대 노동자는 혼자 거제에 와 조선소에서 일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고향에도 아버지만 있을 뿐 다른 가족은 없었다. 장례 후 얼마간 지나서 조심스레 사망 노동자의 아버지께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협조를 해 주셔서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사망 직전에 병원이나 약국을 이용한 기록을 조회할 수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결국, 노동자 사망과 온열질환의 관련성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제보한 여성 조합원의 동료는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가끔씩 그 의문이 다시 떠오르곤 한다. 진짜로 노동자 사망과 온열질환이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도, 이십대 젊은 노동자가 먼 객지 조선소에 와서 혼자 생활하다 어느날 갑자기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 일상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한화오션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쓸쓸해 꼭 기억하고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래도 조선소의 여름은 견디기 힘들만큼 무더운데, 기후재난으로 조선소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선박 갑판 위와 선체 내부 탱크 안은 기상청이 측정하는 최고기온보다도 더 뜨겁다. 조선하청지회가 노동자 사망 한달 전쯤인 2024년 7월 4일 현장안전점검을 했을 때, 선박 위 온도는 36~37℃가 넘었고, 야외 화장실 내부 온도는 무려 38.6℃를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조선소는 다른 사업장과 달리 단체협약으로 낮 12시 현재 28℃를 넘으면 점심시간 30분 연장, 31.5℃를 넘으면 1시간 연장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인 오후 2시~4시 사이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이는 제도적 미비함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에도 노동부는 33℃ 이상은 매시간 10분씩, 35℃ 이상은 15분씩 휴식하라는 내용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마련해서 시행해왔다. 그러나 가이드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어서 조선소나 건설현장 등 무더위에 야외작업을 하는 노동현장에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
죽음의 폭염으로 노동자들을 내모는 노동부

▲한화오션 폭염 온열질환 중대재해 사망사고 기자회견 한화오션 평산 온열질환중대재해 사망사고 관련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노동부 창원지청 앞에서 진행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다행히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사항이 되었고, 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2025년 6월 1일부터 시행되는데, 실제 현장에 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지난 1월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 내용을 보면 '31℃ 이상이 되는 작업장소에서의 장시간(2시간 이상) 작업'을 폭염작업으로 규정하고, 작업 현장에 온·습도계를 비치해 체감온도를 측정·기록하도록 했다. 특히 33℃ 이상일 때에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시간을 원칙적으로 보장하도록 했다. 다만 "연속공정 과정에서 후속작업의 차질, 제품 품질의 저하 등으로 휴식 부여가 매우 곤란한 경우 개인용 냉방·통풍장치나 보냉장구를 활용해 근로자의 체온상승을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예외를 인정해 노동계의 우려를 샀다.
그런데 입법 예고된 개정안에 대해서 규제개혁위원회가 재검토를 권고하고 나서 논란이 됐다. 특히 개정안의 핵심인, 체감온도 33℃ 이상일 때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 보장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노동부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법 시행을 미루고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의 생명을 폭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기업에 대한 '일률적 규제'라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2일 설명자료를 통해 "개정안은 음식점 등 자영업을 포함해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며 "구체적인 사업장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한 휴식을 부여토록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 편집자 말)
결국, 조선소 노동자들은 폭염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더 뜨거워진 여름을 맞고 있다. 한화오션에서, 조선소 현장에서 올해 몇 명의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아프고, 몇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다가올 여름이 두렵다. 무더위가 두렵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부는 규제 운운하며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개정을 연기한 것을 철회하고, 폭염으로부터 노동자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1) 노동조합의 집계와 회사의 집계는 차이가 나는데, 같은 기간 한화오션 회사 집계에 따른 온열질환자는 25명이다.
2)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한화오션 폭염으로 발생한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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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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