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양식으로 조성된 무덤. 2기가 위아래로 있는데 그 이유는 어떤 곳에서도 설명이 나와있지 않았다.
이준수
명주군왕릉과 명주군왕지묘의 비밀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돌이 깔린 뜰과 능향전이 나왔다. 매년 음력 4월 20일, 강릉 김씨 대종회에서 '능향대제'를 거행하는 장소였다. 김주원의 봉분은 능향전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타야만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 돌길 옆에 까만색 석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여기에 '명주군왕릉'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무심코 넘어갈 수 있지만 반전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무덤에서 밝혀진다. 나는 딸을 붙잡고 물었다.
"여기도 비석이 또 있지? 스마트폰 번역 앱으로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볼래?"
"명주군왕... 지묘? 이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김주원의 묘지라는 뜻이야. 근데 이상하지 않아? 아까 계단 옆 비석에는 명주군왕릉이라고 되어 있었잖아."
"어? 진짜 그러네!"
김주원은 실제로 왕위에 오른 적이 없다. 따라서 16세기에 김주원의 무덤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명주군왕릉'이라 돌에 새길 수 없었던 것이다. 첨언하자면 '군왕'이라는 제도 또한 신라에 없었다. 고려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군왕이라는 '호칭'이 등장한다. 고려의 왕이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에게 하사한 '낙랑군왕'이 그 시작이다. 따라서 '명주군왕릉'은 강릉 김 씨 후손들이 자랑스러운 선조를 기리는 뜻에서 '고려식'으로 예우를 하여 붙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강릉 김씨 후손이 얼마나 '명주군왕릉'을 정성으로 가꾸어 왔는지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일단 무덤 일대에 배치된 돌사자, 석인, 석등 관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매년 능향 대제를 올리며 깨끗이 청소하고 풀을 깎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무덤 양식도 조선시대 풍으로 단정하다. 김주원은 신라시대 사람이므로 고대 국가의 '언덕에 가까운' 고분을 상상하기 쉽다. 예전에 삼척에서 답사한 '실직군왕릉'만 해도 경주 천마총처럼 크게 솟은 둥근 봉분이었다. 하지만 명주군왕릉은 조선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봉분 아랫부분에 사각형의 둘레돌을 둘렀다.
김주원의 묘는 앞뒤로 2기가 나란히 있다. 아내의 묘가 함께 마련된 것인가? 짐작만 할 뿐 실체는 알 수 없다. 문화유산 해설에도 2기가 있다고 표기만 되어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무덤가에서 아내가 말했다.
"김주원이 왕은 못 되었지만, 복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돌보아 주잖아."
"어떤 사람은 죽어서야 빛을 발하기도 하나 봐. 1565년에 후손인 김첨경이 강릉 부사가 안 되었으면 어쩔 뻔했어. 족보도 만들고, 심지어 꿈에서 김주원을 만났다잖아."
"설마 이 무덤도 그때 세운 거야?"
"응, 수소문 끝에 유해를 담은 항아리를 찾았대."
"사람 인생, 죽어서도 모른다더니..."
우리 가족은 능향전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장모님께서 강릉 김씨이므로 나 또한 김주원과 무관할 수 없었다. 가짜 왕이면 어떻고, 진짜 왕이면 어떤가. 묘지가 왕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들 중요한 건 현재에도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왕이었지만 잊히고, 누군가는 왕이 아니었지만 끝내 기억된다. 얼마 전 온 가족이 대통령 선거 투표소에 함께 다녀온 우리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미래의 과거'인 현재는 시점에 따라 언제든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역사의 평가는 과거를 기억하는 자의 판단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2025년의 대한민국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까. 김주원의 경우처럼 한참 동안 잊혔다가 먼 훗날 빛을 볼 수도 있고, 그저 짙은 어둠 속에 망각될 수도 있다.
명주군왕릉의 단단한 돌계단을 내려오며 김주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또한 흘러가는 찰나일 뿐이라고. 왕이 되지 못한 것도, 잠시 잊혀진 것도, 다시 위세를 회복해 왕릉에 모셔진 것도 거대한 흐름의 작은 단편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관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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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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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왕릉이 있다? 근데 진짜 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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