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2일 당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브리핑실에서 2025년 예산안 및 2024~2028 국가재정운용계획에 관해 사전 브리핑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런 계산은 대선 공약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김문수나 이준석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마주해야 할 건조한 현실이다. 공약까지 반영한다면 어떨까.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국정공약 247개, 지역공약 124개를 제시했고, 필요 재원은 210조 원이라고 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연평균 42조 원의 추가 지출이 소요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식은 재량지출 10% 구조조정, 기금 여유재원 활용, 성장률 제고를 통한 세수입 증대, 비과세·감면 정비, 탈세 방지 제도 개선 정도를 언급했다. 증세나 신규 세원 발굴과 같은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2022년 윤석열 후보가 매니페스토 운동본부에 제출한
조달계획이나 윤석열 정부가 임기 중에 활용한 재원 조달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후보들은 늘 불요불급 예산의 지출구조조정을 만병통치약처럼 내세우지만, 통상 연 10조 원 이상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전 정부처럼 '마른수건을 비틀어 짜면' 20조 원가량을 해내기도 하지만, 상당액은 매년 발생하는 불용예산을 더 조기에 인식한다거나 하는 회계적 방식에 가까운 것이어서 실질적 예산 절감도 아니다.
실질적인 지출구조조정은 정치적 투쟁을 수반하는 고도의 의사결정이고, 이미 그것 자체가 국가자원의 재배분을 뜻하는 초대형 공약이다. 지출구조조정을 한다면 무슨 예산을 삭감할 것인지 말해주는 게 책임감 있는 방식이다. 다가올 2026년 예산 편성에서 지출구조조정 사업내역을 공개하는지 유심히 볼 필요가 있겠다.
'기금 여유재원'에 대해서는 먼저 기재부 관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여유 재원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왜 안 쓰고 묵혀놓았는지 말이다. 대규모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있었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있었는데 왜 관료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기금의 여윳돈 수십조 원을 갑자기 꺼내 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재부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꺼내오는 돈을 무슨 근거로 공약 재원으로 인정해 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민에게 '기금 여유재원'의 의미를 세분화해서 통계로 제시하는 일부터 선행해야 한다.
'성장률 제고를 통한 세수 확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할 말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감세를 하면서 내세웠던 논리였는데, 세수는 세수대로 깎여나가고 성장률은 성장률대로 바닥을 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낙관적으로 성장률을 설정한 예정처의
추계에서도 부풀어오르는 의무지출과 경직성 지출하에서, 적자 없이 재량지출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성장률로 추가 세수를 확보한다면 거의 마법 수준의 경기사이클 운용이 나와 줘야 한다.
'비과세·감면'은 더 늘어나지 않으면 다행인 실정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집에는 세금감면이나 세액공제 같은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세액공제 10% 공약만 해도 연 수조 원의 추가 세금 감면이 필연적인데, 어디서 이만큼의 감면을 줄인다는 것인가? 2025년 국세감면율은 이미 법정감면율을 초과한 상태고, 이재명 후보는 국세감면 법정한도를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7월 정부가 발표할 세법개정안이 그 의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어려운 '억강부약'의 길, 쉬운 '징악부강'의 길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선서를 마치고 있다. 이 대통령 뒤로 봉황 문양이 보인다.
국회사진기자단
결론적으로 새 정부는 임기 내내 대규모 적자재정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그 규모는 윤석열 정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에 가까운 연평균 60~100조 원 수준일 것이고, 필요에 따라 추경 등으로 확장재정의 규모를 키운다면 그 이상을 기록할 수도 있다. '尹정부 세수결손 비난하더니 李정부 사상 최대 재정적자' 같은 보수언론의 무자비한 헤드라인 공세를 감내해야 할 수 있다.
이미 이재명 대통령도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후보였던 지난 5월 "새 정부가 국채를 발행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어려운 국민들을 돕고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재정건전성을 일정 수준 포기할 수밖에 없고, 적자재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인식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재정적자를 용인해야 하는가?
아직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OECD 평균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이므로(비록 해당 척도가 재정건전성을 보여주는 척도인지에 대한 일각의 의문은 있으나) 국채를 복합위기 국면에 재정수단으로 쓰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다만 그 규모와 속도가 자본시장의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시적 재정투입은 대증요법으로 잠재성장률의 훼손을 막는 수준에서 긍정할 수 있지만, 지속적 재정투입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조치를 수반해야 한다.
여기서 중장기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이 있다. 어려운 길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의 길, 증세의 길이다. 더 강하고 더 많이 벌어들이는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그들의 힘을 억누르고 재원을 효율적으로 약자와 사회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는 길을 모색하는 길이다. 약자들과의 사회적 동맹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지속가능한 재정적 역량을 확보해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적 변화를 수반하는 지난한 길이다.
쉬운 길은 '징악부강(懲惡扶强)'의 길이다. 악한 이들을 징벌해 본보기를 세우면서 강자는 더 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다. 악성 체납자를 단속하고, 전 정부의 부패를 일벌백계하고, 부실한 예산사업들을 몇 개 찾아내 엄단함으로써 대중적으로는 마치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강자들, 재벌과 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세금도 깎아주면서 그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결탁하며 임기를 무사히 마무리하는 데 방점을 두는 방식이다.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재명 시대의 재정적 도전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불평등 심화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그 시야를 넓혀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증세와 지출 효율화와 예산 프로세스의 개혁을 포함하는 근본적인 재정 개혁을 통해 '억강부약'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단순히 '악을 징벌하는' 행정적 단속이나 단기적인 예산 조정을 넘어, 강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약자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재정 정책의 방점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가 소위 '반통령'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실망과 좌절로 점철된 과거 대통령들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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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3년간 거덜난 국가 재정, 이 대통령의 결단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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