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카트로 광장을 누비며 나눠주기도 했던 꽈배기.
트위터리안 수리수리
시위가 밥 먹여준다
그때는 국회에서 탄핵이 통과됐는데도 탄핵 반대 측 세력이 커지고 있어서 기세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꽈배기나 어묵, 감자는 꽤 효과가 있었다. SNS에는 '탄핵 꽈배기 먹고 에너지 충전' '꽈배기로 느끼는 탄핵의 맛, 아주 달달합니다' '춥고 배고팠는데 어묵 감사합니다' 등의 글이 알티(RT)를 탔고, 시위가 밥 먹여준다는 밈까지 생겼다.
"아이쿠, 여기 뭐가 떨어졌네요, 하면서 만 원 주고 가시는 분도 있고, 우리가 막 정신없이 일하고 있으면 제가 줄 세울까요? 하면서 나서서 줄 세우는 분도 있었어요. 근데 기수들에게 준 걸 왜 나는 안 주냐 하면서 뺏어가는 분도 있고요, 여러 번 가져가는 분도 있었어요. 현장 봉사자들이 속상해하면 저는 퉁 치라고 해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으니까 퉁 치는 거죠. 그런 거 하나하나에 마음이 상하면 계속할 힘이 없어져요."
라이카는 원래 교육용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한다.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편이다. 계엄이 일어난 그날도 집에서 일하다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일찍 자려고 했다.
"단체대화방에서 런던 사는 친구가 계엄이야 비상계엄이야, 그러는 거예요. 처음엔 어느 나라 일이야?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인지부조화 상태가 몇 시간이나 지속된 것 같아요."
그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서서히 현실인식이 돌아오면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달아갔다. 유튜브 등을 통해 계엄 해제가 되는 것을 보고 그는 몸이 안 좋으니까 일단 잠을 자고 아침에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날 그는 밤새운 사람들과 교대하기 위해 남편과 여의도로 갔다. 그전에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증에 주소지 갱신을 했다. 그가 사는 지역은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 통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통행이 어려워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라 예상되자 마음이 비장해졌다. 그는 지인에게 연락해 고양이를 부탁했다. 사료를 가득 채워놓고 물도 여러 개 떠다 놓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엄이 해지되었다곤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무서웠어요. 이번 계엄은 총으로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4·19 때도, 5·
18 때도 총으로 죽은 사람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렇게 무서웠는데 어떻게 갈 용기를 내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선을 세게 넘었는지 알 수 있죠, 나 같은 사람도 움직일 정도로"라고 답했다.
학생운동도 시민운동도 한 적 없는 연극·
뮤지컬 덕후
그는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과 선후배가 잡혀 갔을 때나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게 전부다. 다만 그는 지금의 민주주의사회를 누릴 수 있는 건 이전부터 누군가가 애써온 덕분이라는 걸 알았다. 4·19와 5·18을 넘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주었듯이 지금은 우리가 나설 때라는 걸 받아들였다.
"대단히 내가 뭘 하겠다는 생각이라기보다 빨리 가서 교대를 해줘야 그 사람들이 집에 가고, 우리가 몇 시간 지키고 있으면 또 다른 사람들이 교대해 주겠지,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바통을 이어받아줄 거라는 신뢰가 그에게는 있었다. 각자도생이니, 승자독식이니 우리는 지금의 사회를 언제나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만, 어쩌면 조금은 서로를 믿고 기댈 수 있는 시민의식을 가진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남태령 때도 교대해 주기 위해 지인과 함께 달려갔다. 거기서도 일돌사가 제일 잘하는 것, 먹이는 일을 했다. 배달음식이 많이 도착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통제를 뚫고 가보니 인원에 비해 음식이 많이 부족했다. 그는 다시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와 음식을 날랐다.
남태령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광화문 집회 끝나고 합류한 시민들이 농민들에게 '농민가'를 배우는 걸 봤는데, 두 번째로 먹을 것을 가지고 남태령을 뚫고 왔을 때는 농민들이 '다시 만날 세계'를 따라 부르는 걸 보았다.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새벽 첫 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걸 보며 그는 안심하며 지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연극과 뮤지컬 덕후다. 같은 극을 스무 번도 넘게 반복해서 보는 '회전문러'에 '다작러'다. 그런데 12월 3일 이후로 좋아하는 배우, 좋아하는 극이 시작되어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몇 번밖에 못 봤다. 그런 그를 남편이 걱정스럽게 바라볼 정도로 nn차 관람은 그에게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다. 누군가는 디깅(한 가지를 깊이 파고드는 일)을 통해 내적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6개월에 걸친 강제휴덕(nn차가 아니라 n차면 그에게는 휴덕이나 다름없다)이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덕질하면서 총대를 해봤기 때문에 이번 총대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일돌사 중 한 분이 코로나 때 후원 활동을 해본 경험을 나누어주셔서 좀 더 수월했죠."
보통 덕질은 방구석에서 혼자 하는 건 줄 알지만, 덕후들은 수시로 광장을 연다. 트위터라는 광장, 2차 창작이라는 광장, 나눔이라는 광장... 우리는 광장을 열고 광장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광장을 놀이터로 바꾼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는 데 익숙하고, 익명으로 연결되는 데 익숙하다. 지금, 여기에 필요한 것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일은 언제나 우리가 해오던 일이다. 물론 그가 기획자이기 때문에 더 계획을 잘 짜고 실행도 잘했겠지만.

▲ '회전문러'임을 증명하듯 전부 뮤지컬 <베르테르> 를 본 흔적이다.
조용미
그는 세월호 때도 '응답하라 국회의원!'이라는 사이트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실시간으로 세월호가 가라앉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던 지인들이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면서 72시간 만에 자동청원 사이트를 개설했다. '응답하라 국회의원!'은 사용자가 자신의 지역구를 검색하면 해당 지역 의원에게 세월호 피해자 지원 및 대책 준비를 촉구하는 이메일을 자동 발송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세월호를 겪으면서 국가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헛소리를 하려면 대통령 하지 말고 내려 와야죠. 그때도 선을 넘은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국회의원들에게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 참담할 따름이다.
그는 요즘 일돌사 활동을 정산하고 마무리하는 중이다. 일상을 돌려받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내란 청산을 말했다.
"내란 청산 범위가 조금 넓은데요. 우선 작게는 윤석열 가족부터 해결을 해야죠. 왜냐하면 윤석열 가족 개개인의 부패로 끝난 게 아니고 국가를 경영하는 데 사적 이익을 취하면서 사달이 난 거니까요. 그다음에 내란당의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죠. 통합진보당을 그렇게 해체시켰으면 국민의힘도 해체해야죠. 통합진보당은 감옥 갔잖아요. 그들도 감옥 가야죠. 국무위원들도 자기 직을 내놓고 반대한 사람 없잖아요. 책임져야죠. 그다음에 사법개혁 하고, 친일파 청산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이명박 때 있었던 부정부패, 댓글부대 관련된 거, 지금도 여론몰이하잖아요. 개혁해야죠."
그는 새 정부가 내란 청산을 잘해 나갈 수 있도록 시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온오프라인에서 연대와 지지를 해주기를 당부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41%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광장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그 자체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게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만일 이번 탄핵 과정을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든다면 광화문, 한강진, 남태령의 밤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어요. 윤석열이 탈옥한 날, 다들 퇴근하자마자 경황없이 광화문으로 달려 나오던 시민들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아요."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과 그 사이를 헤치며 꽈배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내란 청산이 제대로 끝나고 나면 달콤한 꽈배기 향으로 그날을 떠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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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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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빡칠' 때 남을 먹여...탄핵 때 2만 명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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