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이 들어오자, 김씨는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김예진
오전 8시에 아침을 먹었다는 김씨는 이날 점심도 8분 만에 끝냈다. 평소에도 보통 오후 3시 30분에서 4시 30분 사이에 점심을 먹지만, 때로는 서서 먹을 때도 있다고 했다. 이날 김씨는 준비 중인 여름 신메뉴를 테스트 삼아 먹었다.
오후 5시, 잠시 짬이 나자 홈플러스 입점점주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김씨는 휴대전화로 협의회 단체 채팅방을 확인했다. 간부방과 전체방에는 각각 18건, 17건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간부 톡방에서는 6월 12일 예정된 홈플러스 몰 책임자와의 첫 공식 미팅에 제출할 요구안을 조율 중이었다. 전체 톡방에서는 피해를 입은 점주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메시지가 오갔다.
김씨는 "3월 한 달간은 전화받느라 거의 일을 못 했다. 하루에 개인 점주님들, 언론사 포함해 200통 넘게 받은 날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협의회 단체 톡방에서 점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감정이 '불안'이라고 강조했다.
"점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건 '판매 대금을 못 받을까 봐(대금정산 지연)'가 첫 번째고, '홈플러스 점포 계약 해지로 내가 일할 곳이 없어질까 봐'가 두 번째예요. 홈플러스 기업회생은 경제적 손실만 주는 게 아닙니다. 심리적 영향도 당연히 큽니다. 대금 정산이 한 번 미뤄지고 사태가 계속되니까 정신과 치료를 받는 점주도 있어요."
실제 홈플러스는 지난 5월 14일 17개 점포에 이어, 5월 29일에는 10개 매장에 추가로 계약 해지를 통보한 상태다.
11시간 20분 동안 서 있는 고강도 노동 "경추, 요추가 다 아파요"
오후 5시 30분부터 5시 50분까지 김씨는 처음으로 상봉점 인근 외부 녹지대에 나와 바람을 쐬었다. 보통 1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그때 병원에 들러 도수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김씨는 "업무량이 체감상 3배는 늘었다. 경추, 요추가 다 아파서 정형외과는 밥 먹듯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오후 6시 30분, 다시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씨는 점심시간 때와 똑같이 화구 앞에 섰다.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의 몸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한 번 팬을 닦고 또 닦고, 다시 조리에 나섰다. 김씨가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낸 시간은 오후 8시. 쉴 틈 없이 움직인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히 묻어났다.
원래 매장의 마지막 주문은 오후 8시 30분이지만, 8시가 넘어서자 손님들의 발걸음은 조금씩 뜸해졌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마감 준비에 들어갔다. 식판을 치우고, 쓰레기를 정리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르바이트생 6명은 오후 8시 43분, 예정 시간보다 빠르게 퇴근했다. 원래 이들의 퇴근 시간은 오후 9시 30분이었다.
오후 8시 45분, 매장 불이 꺼졌다. 평소보다 45분 일찍 꺼진 것이다. 가게를 나서며 김씨는 "주말엔 보통 웨이팅(대기명단) 종이 3~4장은 채우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매장 한쪽에는 대기 명단을 적는 종이와 그들을 위해 마련한 의자 9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기록된 대기명단은 단 두 줄뿐이었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하루를 버티는 이유를 묻자, 김씨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결국 가족을 위한 거 아닐까요?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거죠."
김씨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다 6년 전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홈플러스 내 매장은 1년 조금 넘게 운영 중이다. 자영업을 선택한 이유 역시 가족 때문이었다.
"지금 두 아들이 중학생이에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직장인 외벌이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자영업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애들이 대학생이 되면 더 큰 목돈이 들어가는데,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저축도 해놔야 하는데..."
이날 김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45분까지 총 11시간 45분 동안 일했다. 이 중 서서 일한 시간은 11시간 20분. 김씨는 오늘도 가장의 무게, 사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조용히 매장 불을 끄고 나섰다. 그처럼 홈플러스 안의 수많은 점주들은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오늘도 다시 매장 문을 열고 있다.

▲ 김씨가 매장 불을 끄고 나서는 모습.
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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