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에 묻은 뼈 항아리가 2019년 1차 발굴 때 다시 나왔다. 그 자리에 선 성홍제 유족회장.
성홍제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전주형무소에서 학살된 민간인 2400여 명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시 진북동(현 전주동부교회 인근)에 위치했던 전주형무소에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4·3사건, 여순사건 관련자들이 많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7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육군 7사단 3연대 소속 군인들에게 끌려나간 후 집단사살되었다. 희생 규모는 1400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재소자들은 전주형무소 인근 공동묘지, 소리개재, 황방산 등지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대부분 전주시 외곽에 위치한 곳이면서도 도로를 이용해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군경이 후퇴한 다음에는 인민군이 전주를 점령했다. 인민군들은 텅 빈 전주형무소에 우익인사들을 채워넣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 9월 26일, 27일 양일간 전주형무소에서 인민군 102경비연대, 전주형무소장 이하 간수, 내무서원, 지방좌익에 의해 '반동분자'로 규정된 우익인사가 1000여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되며, 같은 시기에 전주 소재 장로교신학병원(현 전주예수병원) 근처 채석장, 완주군수 사택 안마당 방공호, 천주교회 앞 방공호 등에서 60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학살 이튿날 28일, 인민군이 전주형무소를 전소키시고 시신을 방치한 채 철수했다.
이렇게 석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민간인 2400여 명
이 국군과 인민군에 의해 차례로 희생되었다. 국군에 의한 학살이 집단 총살 후 매장하는 방
식이었던 데 비해 인민군에 의한 학살은 형무소 인근에서 곡괭이, 삽 등으로 후려치는 방식
으로 이루어졌으며 175구를 제외하고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해갔다. 수습되지 못한 175구의
시신은 현재 황방산 학살 현장 바로 근처의 '애국지사묘'에 안장되어 있다.

▲ 전주동부교회 뒤편 골목. 왼쪽 주택 구역이 형무소가 있던 자리이다. 오른쪽 교회 자리는 형무소 공장 등이 있었다.
강변구

▲ 황방산에 위치한 애국지사묘. 인민군 등에 의해 희생된 우익인사 175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강변구
'기억의 매체' 없이 기억 전승이 가능할까
전주형무소 사건을 알리는 기억 매체는 황방산 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선 희생지 표지판과 반대편의 '애국지사묘'뿐이다. 두 기억 매체의 맥락 없는 병치와 그 사이의 깊은 균열 앞에서 해설자는 무슨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새삼 당혹감을 느낀다. 답사 참여자는 오로지 해설자의 설명만으로 당시 사건을 상상해야 한다. 이런 자리에 위령비가 세워지고 시민들에게 사건의 내용을 알려줄 기념관(추모관) 같은 안내시설이 있다면, 그리고 전주형무소 터인 전주동부교회 골목에 작은 안내판이라도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부터 황방산은 전주 서북방 외곽에서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12.3내란의 먹구름을 찢고 평화의 빛이 밝아오는 때에 관련자 수사와 처벌 이후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국가폭력의 원류로 거슬러 올라가길 원한다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사는 동네 주변의 학살지를 찾아가 보자.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간단하다. 지역명을 넣고 민간인, 학살을 함께 검색하면 전국 거의 모든 군 단위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기억의 매체 없이도 기억이 전승될 수 있을까? 상처 입었던 몸이 썩어서 편안해지고, 고통스러운 영혼도 하늘로 올라간 뒤에는 텅 빈 현장만 남는다. 그러다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기억하는 사람도 없어진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잊어버린 폭력의 역사는 언젠가 낯설고 기괴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뒤늦게 그것이 우리가 잊어버린 무엇과 묘하게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이미 늦다. 죽은자가 산 사람을 구해주려면, 일단 우리가 먼저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황방산 학살 현장을 알리는 표지판. 2009년과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후 설치된 표지판이 훼손되어 2016년에 다시 세웠다.
강변구
*글쓴이
강변구는 역사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전주에 살며 대학원에서 기록학을 공부합니다. 국가폭력 기록, 기억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인천월미도 미군폭격 사건을 다룬 <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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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의 국가폭력 역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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