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향아 전교조 경남지부 사무처장 서향아 전교조 경남지부 사무처장
박보현
"어린 시절 꿈은 오로지 교사였어요. 교단에 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줄 알았죠. 그런데 막상 교사가 되어보니, 교실은 너무도 달랐어요."
서향아 교사는 현재 교단을 잠시 떠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남지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관심과 질문은 여전히 '교실'과 '아이들'에 머물러 있다. 그가 말하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교육,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 오랜 교직 생활 중 지금은 잠시 교단을 떠나 계시는데요. 지금은 어디서 활동하고 계신가요?
"전교조 경남지부에서 사무처장을 맡고 있어요.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함안으로 첫 발령을 받았어요. 새내기 교사로 지낸 지 몇 해 지난 2005년 즈음 동료 교사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전교조에 가입했죠. 당시엔 학교 일 적응하느라 전교조 활동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먼발치에서 바라본 전교조 활동하는 선생님들이 참 멋있더라고요. 제 마음을 흔든다고 해야 하나?
전교조 활동가들이 모이면 교육 현장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진정성 같은 게 느껴졌어요, 마음속의 어떤 굳은 심지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명박 정부 시절(2007년) 교원평가제도와 일제고사 등 서열식 입시제도가 도입되면서 교육 현장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저도 그 일을 계기로 서서히 관심을 두게 됐죠."
- 실제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어떠셨어요?
"그 무렵 (서울에서) 전학 온 한 아이를 보며 '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후 그 아이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교사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상담 관련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교육 환경은 단순히 '지식'을 쌓아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당시의 아이를 떠올리며 서향아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참 무력해지더라고요. '아, 내가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구나'를 느끼며 자괴감이 들면서…. 아이 한명 한명 마음을 다해 만나니 참 힘들었어요. 퇴근 후에도 걱정되는 아이들 생각에 갇힌다고 해야 할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다음부터는 학교를 직장이라 여기고 담담히 수업을 해나가자고 마음을 먹었죠. 그렇게 학교를 나가봤어요. 하루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과는 점점 더 멀어졌고 교사로서 사명감도 열정도 식어버리고...
난 주어진 일만 하면 돼
이건 그냥 일이야
어느 날 수업 중에 한 아이가 '선생님, 이거 왜 해요?'라고 묻는데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제가 대답을 얼버무렸어요. 저도 그 답을 모르면서 아이들 앞에서 가르치는 흉내만 낸 것은 아닌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그는 '교사다움'을 되찾기 위해 '혁신학교'로 전근을 결심했다. 혁신학교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함께 수업을 고민했다. 학생들도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질문했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이며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자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교사와 학생은 살아 있었어요. 동료 교사와 함께 협력해서 만들어가는 느낌이 정말 좋았죠."
혁신학교가 보여준 자율성과 공동체 의식, 실천 중심의 문화는 서향아 교사에게 교육의 희망을 다시 보게 했다. 그가 처음 교직을 택했을 때 마음속에 그렸던 학교의 모습과 가까웠다.
- 어느덧 교직에 들어선 지도 20년 차, 점점 달라지는 교육 현실은 어떤가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의 모습을 닮아버렸다고 할까? 초등학생이면 한참 뛰어놀고 실수하면서 자랄 수 있는 나이인데, 이미 사회의 경쟁, 위계,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 길들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경쟁과 성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안정만을 좇아요. 이건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예요. 요즘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빼앗기는 것 같아 마음 아프죠."
초등학생이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해요. '안정적'이라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데요. '돈 많이' 벌어서
그는 아이들이 무심결에 내뱉은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 하는 게 아이들 잘못일까요? 오히려 저를 포함한 어른과 사회가 나서서 만든 말 아닌가요?" 라고 되물었다.
- 그럴수록 교사로서 회의감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결국 아이들이 마지막 희망이니까요. 한 명의 교사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에게 다가가려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변하거든요. 그걸 보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저도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이기도 하잖아요. 내가 바라는 교육이 있다면, 나부터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해요."

▲ 제주 교사 사망 사건 추모제
전교조 경남지부
- 요즘 교사들은 참 많이 지쳐 보입니다. 서이초 사건, 제주 교사 사건 이후로 특히 더 그렇죠.
"아무래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이후 교육을 상품으로, 학교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를 무한정 수용해야 하는 기관이 되어버린 것이 학교가 힘들어진 큰 원인이라 할 수 있겠지요. 거기에 더해 교사를 보호할 실질적인 장치가 없다 보니 어떤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교사 개인이 오롯이 그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만 평소에 교사-학생-학부모와의 소통이나 교류가 부족해 서로의 진심을 알 수가 없어 문제가 더 커지기도 하구요.
교사들은 더 이상 교육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민원, 행정, 감정노동, 심지어 신변의 위협까지… '교사다움'이란 단어를 꺼내기도 어려운 현실이죠. 그런데 이 문제를 어느 누구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아요. 그게 더 두려운 점이에요."

▲ 서향아 전교조 경남지부 사무처장
서향아
-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저도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결국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 아닐까요? 시험 성적이나 진학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기를 존중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힘을 갖게 하는 것.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교사도 존중받고 안전해야 하잖아요. 교육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요. 저는 그 본질을 놓지 않고 싶어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이지만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과연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우리반 학생들이 성적을 잘 받고, 좋은 대학 보내는 게 정말 다일까? 오히려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 대곡초 손모내기 체험
박보현
- 지난해 대곡초에서 손 모내기 체험을 아이들과 함께하셨죠?
"저는 어린 시절을 고성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자연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사계절 변화 속에서 우리들이 먹는 쌀이며 배추가 어떻게 자라는지 저절로 알았어요. 요즘은 다들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자연이나 농촌을 볼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매일 자신이 먹는 흰쌀이 어디서 오는지도 몰라요. 교과서에 실린 그림으로만 본 거예요. 그 안에 소금쟁이도 살고, 가을 되면 메뚜기도 뛰어 다니는데, 벼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고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이런 과정이나 체험은 전혀 없잖아요.
아이들에게 이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학교 안에 논을 만들어서 쌀농사를 짓고 싶었는데, 마침 대곡초 인근 영농조합 법인에서 도움을 주셨어요. 마침, 이분들이 40여 년 전에 대곡초를 졸업하셨더라고요. 영농조합 대표님이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요'라며 기쁜 마음으로 논을 내어주셔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손 모내기를 해보니 진짜 핵심은 '협력'이더라고요. 서로 줄 맞춰 같이 심지 않으면 모양이 엉망이 돼버리거든요. 혼자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리듬을 맞추고, 서로 기다리고, 도와주는 게 자연스럽게 생기죠."
- 교사로서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대곡초에 일이 있어서 잠시 방문했는데 지난해 맡았던 아이들이 큰소리로 '선생님'하고 부르면서 달려와 와락 안기는 거예요. 그럴 때 참 행복하죠. 우리 아이들이 조건 없이 전해주는 진한 사랑, 제가 어디서 누릴 수 있겠어요." (웃음)
잠시 교단을 떠나 경남 전체 교육환경을 돌보는 그는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교육 현장이 민주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결국 교사의 정치적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다시 교단에 서는 그날, 어쩐지 아이들이 마주할 교실은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단단해지지 않을까. 부디 그가 지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선생님으로 오래오래 자리해 주기를 기대한다.

▲ 전교조 경남지부
전교조경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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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서 '선생님'까지, 그 거리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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