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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저런 일을?'... 이 생각 하다 화들짝 놀란 이민자입니다

그 일, 여자라서 못 한다고 누가 정했지?... 고정관념이 남긴 시선, 내 안의 편견과 마주한 순간

등록 2025.06.12 15:48수정 2025.06.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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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자가 힘쓰는 일을 하면 왜 사람을 다시 보게 될까.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나는 캐나다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내 안에 그대로인 것도 많은 것 같다.

캐나다 이주 전 한국에 살 땐, 여자가 자동차를 운전만 해도 시선이 쏠렸다. 신기한 듯 고개를 돌려 다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땐 '남자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하기도 하고 먼저였던 때다.


운전뿐 아니라, 미용사나 간호사 같은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미용사는 여자, 간호사는 여자'라는 인식이 강했고, 남자 미용사가 등장하면 어색하거나 낯설게 느꼈다. 어쩌다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를 보면 듬직하다는 반응과 동시에 왠지 낯설게 여겼던 시선이 뒤섞여 있었다.

남자의 영역, 여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던 시대. 지금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땐 장관이나 장군, 정치인은 당연히 남자의 몫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최초 여성 장관', '최초 여성 장군' 같은 수식어가 뉴스에 오를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지금은 당연히 아니지만, 남자의 영역, 여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던 시대가 있었다(자료사진).
지금은 당연히 아니지만, 남자의 영역, 여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되던 시대가 있었다(자료사진). jcmarin on Unsplash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 남녀 구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실제로 그런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정관념은 남아 있다. '이 일은 남자가 해야 해', '저 일은 여자가 어울리지 않아' 이런 식의 생각은 내 안에서도 가끔 불쑥 올라온다.

오늘 동네에서 길을 걷다가, 사다리를 타고 높은 벽 위 화단에서 작업 중인 여성을 봤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돌아봤다. '여자가 저런 일을 하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아직도 그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느꼈다.

내 안에 편견 있었구나, 알려주는 일화들


 캐나다 한 여성이 높은 사다리 위에서 화단 작업 중에 있었다
캐나다 한 여성이 높은 사다리 위에서 화단 작업 중에 있었다 김종섭

게다가 내 머릿속에는 '저건 남자라도 올라가기 힘든 사다리'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 말 자체가 이미 내 안의 편견을 증명하는 거였다. 그 높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선이 머물렀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예전에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가 떠올랐다. 덩치 큰 박스를 혼자 번쩍 들고 옮기는 캐나다 여성 동료를 보며 '저걸 혼자 옮긴다고?' 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아내는 "캐나다 여성들이 힘이 좀 세서 그래"라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보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성별과 관계없이 해내는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캐나다 여성은 힘이 세다'는 말이 나온 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는 '보이는 장면' 하나가 수십 번의 말보다 더 강한 교육이 된다. 그 장면 하나로 오래된 편견이 무너질 수도 있다.

예전에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성 직원이 충분히 들 수 있는 물건인데도, 굳이 남자 직원을 불러서 옮기게 하는 일이 잦았다. 부끄럽지만, 그때는 남녀 불문 다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오가곤 했었다.

해외에 산다고 해서 몸에 밴 사고방식이 다 바뀌는 건 아니다. 주변을 보면 몸으로 체감하는 문화나 인식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보는 것, 듣는 것, 그 모든 게 결국 '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그 교육을 깊이 생각하고 내 안으로 들여오지 않으면, 즉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이민 사회에서는 흔히 이런 말들을 자주 하고는 한다.

"불편하거나 애매한 건 캐나다식으로, 좋은 건 한국식으로."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기준을 자기 편의대로 바꾸는 것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이중 잣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화단 위에서 일하는 여성을 보며 다시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편견을 벗지 못했구나 하고. 힘의 문제는 단순히 무게를 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여자의 일', '남자의 일'이라는 구분 대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면, 시선을 바꾼다면... 어쩌면 그때 내 안에서도 또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남녀직업 #직업의 #자율성 #캐나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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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Daum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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