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씨가 직접 담근 식혜 한 잔.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살짝 언 식혜 한잔으로 기자에 대한 고마움을 가득 표현해 주셨다.
변상철
"짜장면이 먹고 싶다."
출소 후 남편이 처음 한 말이었다.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노씨는 짜장면을 사주지 못하고 그저 집에서 짜장면을 흉내 낸 음식을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맘껏 그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지 못한 것도 후회되는 일이다.
유사 사건들, 뒤늦게 재심으로 무죄… 그러나 성기호씨는?
보안사에 끌려간 날, 성기호씨에게 영장을 제시한 이는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어디에 있는지, 무슨 혐의인지 어떤 공식적 통보도 없었다. 그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수사 대상이 되어 끌려갔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그 사람도, 우리 남편도… 도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이 사건은 1970년대 초 군 정보기관 보안사령부가 중앙정보부를 사칭하며 진행한 민간인 간첩조작 사건의 전형이었다. 202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1971년 보안사 간첩 조작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고 이인국씨에 대해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 달 5월 29일 진두현 등 간첩사건 재심 무죄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 선고가 있었다. 이는 국가 공권력의 오남용을 일부 인정한 사례였다.
하지만 고 성기호씨 사건은 아직 재심이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 남편은 아무런 죄가 없었습니다. 사상적으로 위험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교장 선생님 집안, 종갓집 사람이었고 제자들 뒷바라지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노씨와 가족들은 남편의 억울한 누명을 밝히기 위해 검찰과 법원에 재심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과거 보안사에서 수사했던 조작사건들이 '무죄'로 밝혀진 만큼, 남편에 대해서도 진실규명과 재심은 이 가족에게 절박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진실규명과 명예가 회복되어야 남편의 교육자로서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다고도 믿었다.
"남편이 잡혀가고 나서 얼마 있다 신문에 남편이 간첩이라는 식으로 보도가 되었어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요. 그 뒤로는 어디 이사도 못 가겠더라고요. 어디 이사라도 가면 또 수상한 눈으로 볼테니 그냥 창살 없는 감옥처럼 사는 것이죠."
1972년 <조선일보> 보도는 사건을 대서특필한 대표적인 언론 기록이다.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에도 이와 같은 기사가 나갔다며, 남편의 재심 무죄를 통해 이 언론 보도 역시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정의가 응답할 차례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아직도 그날에 멈춰 서 있어요."
공권력의 오남용이 낳은 비극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자, 아버지, 남편, 그리고 인간 성기호의 삶 전체가 '간첩'이라는 낙인 아래 짓밟혔다. 이제라도 검찰과 법원, 국가는 "우리 남편이 뭘 잘못했느냐"는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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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끌려가 '간첩'이 된 남편...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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