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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패할 게 뻔한 교육 실험, 그 대가는 왜 아이들이 치르는가

    [주장] 개혁이 아닌 개악, 고교학점제

    등록 2025.06.12 15:04수정 2025.06.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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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능, 무지원, 무대책 고교학점제 지금 당장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5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무능, 무지원, 무대책 고교학점제 지금 당장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5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시험 감독을 하다 보면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장면과 마주한다.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며 교실을 뛰쳐나가는 학생. 공황 증상으로 인해 시험지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생 등, 그 광경을 보면 교사인 나조차 숨이 턱 막힌다.

    별도 시험실에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도 점차 늘고 있다. "도저히 교실에 더 있을 수 없다"며 울먹이는 아이의 눈빛을 마주하면, 아픈 것은 학생이 아니라 이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교실엔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학생이 꽤 여럿이다. 밝히지 않은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울, 불안, 무기력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간다. 고작 17살,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야 할 시기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그 나이에, 선택 하나로 대학이 결정된다는 공포 속에서 학생들을 살게 만든다.

    "요즘 아이들이 예민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험과 경쟁은 늘 있었지만, 지금의 교육은 과거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일상화된 방식으로 학생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경쟁 중심의 입시제도와 교육개혁을 외치며 야심차게 도입된 고교학점제가 있다.

    서열화 해소 취지로 도입된 고교학점제, 그러나...

    고교학점제는 '선택'과 '자율'을 통해 경쟁과 서열화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과목 선택은 곧 대입 전략이 되었고, 선택은 자율이 아니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되었을 뿐 아니라, 소외와 격차를 부추기고 있다. 특정 과목이 입시에 불리하다는 인식은 학생들을 특정 선택지로 몰아가고, 이는 또 다른 경쟁의 장을 만든다.

    제도의 출발은 선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구조적 현실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옷이었다. 제도적 변화와 행정적·재정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된 채 추상적인 이상과 탁상공론만이 정책을 이끌었다.


    현장에서는 이미 초기 단계부터 수차례에 걸쳐 제도의 실효성과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교육 당국은 이를 '개혁 저항'으로 치부하며 정책을 강행했다. 현장 교사들과 교육 전문가들은 이미 초기 단계부터 반복적으로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념적 슬로건과 외형적 성과에만 집착한 결과, 고교학점제는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실험, 예고된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그 부작용은 지금, 학교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과잉 경쟁, 과도한 평가, 심리적 탈진, 사교육 확대, 행정적 과부하… 모두가 알고 있었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다. 문제는 학생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은 말 그대로 '시험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오늘 제출한 수행평가가 끝나자마자 내일 또 다른 평가들이 기다린다. 과제에 밀리고, 기한에 쫓기고, 피드백은 형식적으로만 주어지기 일쑤다. 그렇게 학교는 성장의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는 평가의 무대, 성적 산출을 위한 실험장이 되어버렸다.

    시작 단계부터 다양한 왜곡과 균열을 부르는 고교학점제

    기존의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도 학생들은 힘들어했다. 그런데 올해 고1부터 적용되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뒷받침한다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교육부는 기존의 9등급제에서 5등급 상대평가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평가가 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보통교과 대부분이 상대평가 체제로 바뀌었고, 절대평가는 극히 일부 과목에 한정되었다. 결과적으로, 성적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등급 간 격차는 더 민감해졌다. 결국 이 구조는 평가 방식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학생들은 '성장'을 증명해야 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순위'까지 제출해야 하는 이중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적지 않은 고등학교에서 내년도 교육과정 편성 시, 기존 4학점으로 편성했던 선택과목을 3학점으로 일괄 변경하는 사례까지 눈에 띄고 있다. 학생부 전형 대비를 이유로 더 많은 과목을 이수하고, 보다 많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더 많은 과목을 배워야 하고, 이는 더 많은 평가 앞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학습'을 포기하면서까지 '과목 수'를 늘리는 것이 맞는가? 나아가 학교 간 '스펙 경쟁'을 유도하는 이러한 흐름은 사교육과 다를 바 없으며, 공교육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시작 단계부터 경쟁을 심화시키며 다양한 왜곡과 균열을 불러오고 있다.

    우리는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고교학점제가 단지 지원이 부족해서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 교사의 준비가 부족했고, 행정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 탓이 아니다. 이 제도는 처음부터 잘못 설계됐다고 본다. 입시 중심, 상대평가 중심, 한 줄 세우기 중심의 교육 현실 속에서 '선택'과 '자율'이라는 이상만을 앞세운 채, 본질적 구조 개편 없이 도입된 무책임한 실험이었다. 더 나아간다면 기초기본소양이 부족한 채 진로와 선택을 중심에 둔 교육과정에 대한 공론화와 재논의 또한 시급하다.

    이제는 더 이상 '보완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정착된다'는 말로 이 제도의 문제를 덮을 수 없다. 고교학점제는 지금 이대로는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이대로 간다면 남는 것은 성장은 커녕 학생을 소진시키는 학교, 평가에 지친 교육, 교육은 사라지고 행정만 남은 학교, 책임을 외면한 정책뿐일 것이다.

    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 출발은 제도를 멈추고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선이 아니라 전면적인 재설계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실험의 실패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의 고통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청구될 것이다.
    #고교학점제 #상대평가 #입시제도 #시험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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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교육과 사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장 교사로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잘 들여다 봐야 보이는 교육 메카니즘, 다양한 교육정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 현재 교사노조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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