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치매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코끝이 시리다

나쁜 감정은 빨리 잊는 50년차 부부에게 배우는 결혼 생활

등록 2025.06.17 11:14수정 2025.06.17 11:14
1
원고료로 응원
엄마는 2년 전부터, 아빠는 1년 전부터 치매 환자가 되셨습니다. 이 글이 우리 가족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기자말]
산책을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주간보호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실 시간이 한참이 지났다. 각기 다른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시고 집에서 쉬시다가 싸움이 벌어졌나 보다. 화를 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힘이 빠졌다.

"왜 싸웠는지 알고 싶으면 니 아빠한테 물어봐라"라며 엄마는 전화를 끊어버리신다. 여유있게 주말에 방문할까 했지만 걱정이 앞서니 마음이 조급하다. 내일이라도 부모님 댁을 방문할 생각에 급하게 음식을 한다.


다음 날 방문하니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러면서 엄마는 쉬는 날도 아닌데 왜 왔냐고 물으신다. 당황한 나는 "보고 싶어서 왔지"라고 얼버무린다. 조심스럽게 집에 무슨 일 있었는지 여쭈어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신다. 오히려 아빠가 전보다 더 깜빡깜빡하신다고, 이러다가 집도 못 찾는 거 아니냐고 걱정부터 하신다. 부쩍 수척해지신 엄마를 보니 속상한 마음에 "엄마 몸이나 챙겨"라고 반응한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녀오신 아빠에게도 여쭈어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와 다투지 않았는지 여쭈어본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다고 하신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부모님 댁에 방문한 김에 쓰레기를 버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간식을 챙겨드린다.

노부부 사진 부모님은 치매로 인해 직전 기억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서로에게 안쓰러운 감정만 깊게 남고, 서운하고 나쁜 감정은 금세 잊는다.
▲노부부 사진 부모님은 치매로 인해 직전 기억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서로에게 안쓰러운 감정만 깊게 남고, 서운하고 나쁜 감정은 금세 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결혼한 지 2년이 되었다. 마흔 넘어 늦은 나이에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세상이 끝난 것처럼 싸운다. 그 후유증은 얼마나 오래 가는지 싸움은 길고도 길다. 싸우다가 화가 나서 부모님 댁에 가버린 적도 있고, 기분 좋게 여행을 하다가 비행기 타기 직전부터 집에 돌아와서까지 싸웠으니 설명은 다 한 것 같다.

결혼 2년차 부부의 싸움과 50년차 치매 부모님의 싸움은 정반대이다. 부모님은 치매로 인해 직전 기억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서로에게 안쓰러운 감정만 깊게 남고, 서운하고 나쁜 감정은 금세 잊는다. 오히려 수척해진 자신보다 부쩍 나빠진 아빠의 기억력을 걱정하는 엄마를 보니 코끝이 시리다. 이것 또한 50년간 부부의 인연을 맺어 인생의 쓰고 단맛을 모두 맛보며 살아온 세월의 힘이라고 생각을 한다. 빨리 잊고, 빨리 회복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

다음에도 부부 싸움 소식을 들게 되면 나는 또 당황해서 부모님 댁을 방문할 것이다. 정말 괜찮으시냐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냐고 놀라서 허겁지겁 달려올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라도 부모님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았으니 괜찮다라고 위안을 삼으면 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애틋하게, 좋은 추억은 더 깊고 소중하게, 서운하고 나쁜 감정은 빨리 잊는 그런 부부의 삶을 꿈꾸며 집으로 돌아가겠지.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치매가족 #노부부 #싸움 #결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삶을 꿈꿉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치매 친정 엄마의 사위 사랑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코스피 5천, 돈 얼마 벌었냐고? 2000년생 동창들의 대화 코스피 5천, 돈 얼마 벌었냐고? 2000년생 동창들의 대화
  2. 2 윤석열 '입틀막'에도 차분했던 앵커, 왜 장동혁에게 '목소리' 높였나 윤석열 '입틀막'에도 차분했던 앵커, 왜 장동혁에게 '목소리' 높였나
  3. 3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노인, 가족 간병 어렵다면... 방법이 있다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노인, 가족 간병 어렵다면... 방법이 있다
  4. 4 "폐업하려고요, 더는 버틸 수 없네요"... 벼락거지 될까 두려워 "폐업하려고요, 더는 버틸 수 없네요"... 벼락거지 될까 두려워
  5. 5 저가항공이니 탑승동? 인천공항의 같은 돈, 다른 서비스 저가항공이니 탑승동? 인천공항의 같은 돈, 다른 서비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