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달음에 모여든 친구들
권유정
학교를 퇴사한 후 새로운 시작에 선뜻 함께해 준 분들 덕분에 긴 세월을 헛되게 보낸 건 아니었구나 하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헌신해도 그 노고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애쓴 것 이상으로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 기쁘고 힘이 나는 일이다.
새 사무실이 서울의 끝자락(도봉구 창동)에 있어도 경기도 일산, 동탄, 용인, 가평, 하남, 남양주, 수원 등 사방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졌는데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진 참가자, 대중교통과 지역 사회 이용이 능숙하지 않아 보호자 주도로 모임을 가져왔는데 여행 공부를 통해 자조 모임이 가능해지길 바라며 온 참가자, 단짝 친구나 연인과 여행을 꼭 가고 싶은데 자신들끼리 가기는 어려워 신청한 참가자 등등... 제각각 이유는 달랐지만 한결같이 '여행'과 '함께'라는 것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내 친구와 함께' 하는 소그룹 여행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라도 싫은 직장 상사와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여행이 주로 부모님과 함께였다면,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접어들어서는 대부분 또래 친구에게로 욕구가 옮겨간다.
발달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친구에 대한 욕구가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학창 시절 등 성장 과정에서 또래친구와의 긍정적인 경험이 드물다. 교우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실패를 경험한 발달장애인들은 오히려 그래서 누구보다 '친구와 함께'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우리는 '단짝투어'를 열었다. 일반적인 여행상품과 달리 '단짝투어'는 여행지 선택부터 계획과 준비, 실행을 모두 스스로 하는 '배우고 떠나는 자유여행'이다. '내 친구와 함께' 하는 소그룹 여행이라는 차별성을 갖는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내가 선택한 여행지를, 내 손으로 준비하고 내 발로 찾아 헤매는 진짜 자유여행. 그것이 우리 여행의 콘셉트이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꾸리던 여행과 달리, 참가자 대부분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때문에 여행 사전 교육이나 여행 날짜를 정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월급을 모아 여행을 떠나고 여가를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다. 졸업 여행보다는 훨씬 실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
사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돈이다. 발달장애인들은 경제 관념이 다소 부족한 편이다. 수 개념이 약하기도 하고, 소득으로 삶에 필수적인 소비를 하는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있는 대로 아낌없이 쓰거나 반대로 무조건 아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번 예상 비용을 계산하고 계획대로 소비하는 활동을 했지만,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학생들과 여행할 때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로 스스로 돈을 벌어 여행을 가는 친구들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기대하며 돈을 모으는 활동이 쉽지 않은 직장 생활을 잘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여행의 목적도, 교육의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같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삶의 질을 높여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길 위의 스튜디오'를 통해 함께 이루고 싶은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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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들과 여행하는 특수교사. 여행을 통해 교실을 벗어나 길 위에서 보다 실제적인 삶을 가르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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