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10일 조림지역
안호용
요즘 임도에 다니다 보면 그런 조림사업이 부쩍 늘어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산판 작업 현장 중심부를 통과할 때도 있다. 자연 그대로의 종의 다양성을 갖춘 숲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산림을 조성하여 숲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은 게 사실이다. 오래전에는 온 나라가 헐벗은 산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연림과 인공림의 유용성을 두고 논쟁을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숲 사업이 성공하였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임도 곳곳에 보수공사를 마무리 한 흔적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공사 끝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곳은 전반적으로 지반이 약하여 크고 작은 산사태가 많이 발행한 듯했다. 무너진 절개면을 다시 정지 작업을 하고 임도를 덮은 잔해를 아래 경사면으로 내려 다짐공사를 한 흔적들이 계속 나타났다.
황토색 속살을 드러낸 길이 수풀로 덮이려면 최소한 4~5년은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폭우가 오면 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현상이 계속 반복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길의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는 것은 이 대자연에서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아마도 사람의 손길이 없다면 임도는 제 구실을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임도 트레킹을 하다 보면 그런 광경을 간혹 접할 수 있다. 생명을 다한 임도는 그저 산능선의 일부가 된다. 그게 자연의 섭리이다.
조림지대와 보수공사 구간이 번갈아가며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걸음은 빨라졌다. 적당하게 우거진 숲길이었다면 걸음은 한결 여유로워질 테지만 지금의 풍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이 구역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남는 시간이 많지 않은 판국이었던데 오히려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발놀림이 빨라진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늦출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버페이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변화무쌍하게 변하던 길은 능선을 따라 대암산 골 깊이 들어가다가 다소골과 만나면서 다시 급하게 굽이진다. 이제 한 시간 정도 가면 원통으로 가는 지방도로와 만날 것이다. 이렇게 경보 경기라도 하듯이 치열하게 달려온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계곡 끄트머리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갯골처럼 화려한 계곡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암산에서 발원한 깊은 골에선 꽤 많은 물이 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물소리가 죽음과 같았던 깊은 침묵을 깨뜨렸다. 나는 거칠었던 숨을 진정시키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의 파동을 타고 가다 보면 돌아오지 못할 어디론가 침잠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원할지도 모른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속도를 늦추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30여 분 내려가니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내가 지나온 가아 임도가 1995년에 완공되었다는 바위로 만든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인제 천리길 이정표도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능선을 넘어가면 원통 읍내와 만난다. 처음엔 이 길을 가려고 고민을 했었는데 서울에서 원통까지 가는 접근성 문제로 나중을 기약했었다.
다소골을 빠져나온 나는 쉴 틈도 없이 택시를 불러 원통 읍내로 나갔다. 홍천 가는 버스는 10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사고 건물 밖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버스가 오가는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통 버스터미널은 오래전 시외버스를 타고 설악산을 오고 갈 때 항상 정차하던 곳이다. 버스 안에서 등반에 지친 눈으로 보이던 원통 터미널과 이렇게 직접 발을 딛고 접하는 이곳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창문 하나 사이지만 버스 안에서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것처럼 거리감이 있었다면, 직접 두 발로 서있는 이곳은 사람들의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다. 터미널 직원들의 떠드는 소리와 원통 사람들의 느릿한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이질감이 벗겨지면서 그 세계로 빠져드는 나를 발견한다. 여행자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리고 공감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는 한다.
원통은 행정구역으론 인제군 북면에 속하는 리 단위에 불과하지만 일반적으론 전체 인제군을 아우를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오리려 인제보다 원통이라고 하면 금방 지역의 특색을 분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휴전선 접경지로서 악명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원통은 고려시대 때부터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원이 있던 자리였다.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고개 중에서 원통역을 거쳐 가는 진부령이 그나마 왕래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공무를 수행하는 관리들이 이곳에서 하룻밤 묵은 후 파발마를 갈아타고 함경도로 이동하기도 하고, 물자 운송의 터미널 역할도 하는 등 중요한 공적 거점이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는 관리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주막과 점막이 성행했다고 한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아마도 이성계가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고 함흥으로 갈 때 이곳에서 하룻밤 묵었을지도 모른다. 유배에서 풀린 정도전도 함경도 영흥에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는 긴 여정 중에 하룻밤 쉬어 간 곳도 이곳이 아니었을까.
시외버스는 제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나는 원통 터미널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고성에서 출발한 버스에는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차창으로 풍경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차창 밖 풍경은 나와 상관없다는 듯, 형태 모를 슬라이드처럼 빠르게 스쳐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그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 오늘 걸었던 길이 영사되고 있었다. 양구에서 시작해 원통 터미널에서 끝난 오늘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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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도로에서 트레킹 코스로... 접경지역을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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