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연한 노동시간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한 노동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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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유연화의 이중성?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려다 중단되었던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 정책, 즉 연장근로시간의 관리 단위 기간을 늘리려고 했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떠올려 보자. 당시 정부의 주장은 기업과 노동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기업의 입장에서야 경기변동에 따른 수요 변화에 노동자의 추가 채용 또는 해고 없이 더 낮은 비용으로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익이 명확해 보인다. 정부는 노동자의 이익 또한 강조하며 노동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과 같은 핵심어를 제시했다. 물론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선택이 아니라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훨씬 크며, 원하는 시기에 몰아서 일하고 장기휴가를 떠난다는 식의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개편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노동시간 유연화를 잘 활용하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고,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유연한 노동시간(flexible working hour)'을 검색어로 건강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을 찾아보았을 때 대부분 노동자의 건강에 해롭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의 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보여주었다는 연구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소규모 연구(McNall 등, 2010)에서는 22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시차출퇴근제(flexitime)와 집약근무형 유연근무제(compressed workweek)가 직무만족도, 일-가정 균형에서 좋은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시차출퇴근제는 하루 노동시간은 그대로 8시간이나 고용주에 의해 주어진 몇 가지 선택지 중 노동자가 선호하는 출퇴근 시각을 선택하여 일하는 것이며, 집약근무제는 주당 노동시간의 차이는 없으나 하루 노동시간을 늘려 출근일을 줄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3.5일 또는 4일 출근한다. 다양한 측면의 유연한 노동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검토한 코크란 리뷰(Joyce 등, 2010)에서도 셀프-스케줄링(self-scheduling)과 같은 노동자의 선택을 반영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정신건강, 수면건강 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한다. 셀프-스케줄링은 주로 병원 등 순환교대근무제를 활용하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원하는 근무일과 근무시간을 먼저 제출하고 관리자가 이를 반영하여 근무일정을 조율하는 제도이다.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노동시간이 진짜 자유다
이렇듯 일부 형태의 유연한 노동시간제가 노동자에 미치는 이점이 보고된 바 있으나, 훨씬 더 많은 연구들이 유연한 노동시간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 보고해 왔다. 예를 들어, 한국의 근로환경실태조사를 사용하여 분석한 연구(Lee 등, 2020)에서도 하루의 노동시간이 일정하지 않거나, 주당 노동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 우울증상과 불안증상의 위험이 일정한 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에 비해 높았고 장시간 노동과 결합될 경우 그 위험은 더욱 높아졌다. 물론 이 연구에서 사용한 설문항목으로는 시차출퇴근제나 주 4일 집약근무제가 '불규칙한 노동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루 노동시간과 주당 노동시간의 변이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IMF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인한 노동시장 양극화와 불안정노동의 양산으로 '유연화'라는 단어만 나오면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노동시간 유연화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특히 일부 형태의 유연근무제는 노동자에게도 환영받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 가지 유념할 지점은 노동시간의 유연성이 노동자로부터 유래되는지 또는 고용주로부터 유래되는지이다. 시차출퇴근제나 셀프-스케줄링 제도는 노동자로부터 유연성이 유래되는 측면이 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노동자 개인의 삶의 방식에 좀 더 유리한 시간을 선택하도록 설계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은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계약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에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대한 자유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불안정노동자의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더욱 낮다. 그 때문에 유연성의 정도에 제한이 필요하다. 시차출퇴근제나 집약근무제 역시 노동시간의 규칙성을 고려할 때 유연성이 큰 제도라고 볼 수 없다. 경직된 노동시간일수록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예측가능성이 높아져야 일-삶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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