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향숙님이 같은 기흥공장에 근무하다 23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님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반올림
첫 근무를 시작한 19살, 1994년 당시는 산업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인식, 법·제도적 기반이 미비했던 시기이다. 고 황유미님의 백혈병 사망(2007년, 23세)에 대한 직업병 문제가 공론화된 2010년 이전까지는 노동안전과 산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거의 없거나 희박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과거 삼성반도체 공장에서의 유해물질노출에 대한 산업안전관리가 부실했고, 발암물질을 포함해 각종 유해물질에 상당히 노출되었다는 증언이 많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또한 2011년 '반도체 제조공정의 유해인자 노출실태 조사연구'를 통해 웨이퍼 가공라인과 칩 조립라인 일부공정에서 1급 발암성 물질인 벤젠이 '부산물'로 발생함을 확인한 바 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유해물질 누출감지나 누출방지시스템, 보호구지급 등 전반적으로 산업안전이 미비한 1990년대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매우 다양한 종류의 유기용제와 각종 화학물질, 화학부산물 등에 높은 농도로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
그녀가 일한 반도체 생산라인은 1994년~1995년 기흥공장 K2단지에 세워진 노후화된 라인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매뉴얼(수작업)로 진행하여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았다. 작업공간은 설비에 대한 파티션 없이 오픈되어 있었고 수작업을 통해 웨이퍼를 로딩(장착)시키거나 언로딩 하였는데 그때마다 매캐한 냄새에 노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에는 공조시스템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로, 공기 흐름 제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플래넘(Plenum)이 바닥에 설치되는데 그녀가 일한 노후라인에는 플래넘이 없었다. 이는 공조제어가 원활하지 않고 오염된 공기가 작업자에게 유해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추정케 한다.
거대세포종은 극희귀질환이다. 발병률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서울대병원사이트와 여러 뉴스에서 100만 명당 1명이 발병하는 것으로 원인불상의 극희귀질환이라고 알려준다. 종양의 제거로 완치가 된다면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겠지만 거대세포종은 언제 악성종양으로 변할지 모르는 공격적인 경계성 종양이다. 그런데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는 100만 명당 1명이 발병한다는 거대세포종을 진단받은 노동자가 또 있다. 1989년부터 25년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PM엔지니어로 일한 고 홍영배님은 1997년 거대세포종을 진단받은 이후 2012년 골육종으로 재발하여 2014년 사망하였다. 이러한 극희귀질환 거대세포종이 같은 공장에서 2명이 발병한 것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성반도체 공장의 준공 이후 40여 년간, 매년 수천 명씩 입퇴사가 반복되어 누적 현장직 근무자 수가 많다 한들 그 인원이 수십만은 아닐 것이고 백만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첨단산업 희귀질환에 대해서는 2017년 대법원에서 이미 산재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첨단산업에서 그 위험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업무와 질병 간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작업장의 유해요인 유무, 근무기간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른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음을 밝혔다. 즉 공적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살펴서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폭넓은 규범적 판단을 하도록 한 것이다(사건번호 2015두3867).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공단의 판정 추세를 보면, 대법원 판단기준을 거슬러 협소한 의학적 증명에 의존한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며, 이러한 가운데 당사자는 판정위원회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의학적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극 희귀질환에 걸렸다. 같은 사업장에 동일한 희귀질환으로 이미 사망자가 1명 존재한다. 대법원 판례에서처럼 단지 자연과학적,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하여 산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해당 질병의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현대의학의 한계이지 이를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또한 1990~2000년대 초반까지 작업환경과 유해물질 노출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것 또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일 뿐이다.
그럼에도 해당 질병을 일으키는 의학적 연관성이 있는 특정 유해물질을 파악해 그 노출 수준이 높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인과성을 따질 수 있는가? 질병판정위원회는 숙고해주길 바란다. 대법원 판단기준과 같이 희귀질환에 대해 전향적으로 판정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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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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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희귀질환 산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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