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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희귀질환 산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주장] 19일 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 예정... 대법원과 같이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등록 2025.06.17 12:02수정 2025.06.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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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9일에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오래 근무한 여성노동자의 희귀질환(거대세포종) 사건을 심의하고 판정할 예정이다. 피해 당사자의 대리인으로서 이것이 한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질 문제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정향숙님은 만 18세부터 21년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다. 근무하는 동안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는 생산라인의 전공정을 담당했고, 오퍼레이터-부조장-조장-부직장-직장(과장)으로 승진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더라면 그 긴 세월 회사에 충실하지 못 하였을 것이다. 그녀가 푸릇한 열여덟 살부터 근무한 기흥공장 6~9라인은 백혈병, 유방암, 비호지킨림프종, 폐암, 루푸스, 전신성경화증, 웨게너씨육아종, 다발성신경병증, 교모세포종 등 악성종양과 이름도 생소한 희귀질환이 많이 발생한 작업장이다.

그녀는 기흥공장에 근무하면서 무거운 웨이퍼 박스를 들고 운반하는 반복적인 중량물 취급으로 만 21세에 요추 통증이 생겨 허리디스크를 진단받았고 만 34세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다. 생리통, 생리불순, 난소낭종, 자궁근종 등 각종 산부인과 질환으로 고생한 것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자연임신이 안 되고 계류유산하는 등 불임으로 고생하였고, 후엔 자궁적출술까지 받았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악성 중이염과 후두염, 편도선염 등으로 이비인후과 단골 진료를 받았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허리디스크가, 생리통이, 만성적인 중이염이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024년 두개골 내에 생긴 '거대세포종'을 진단받았다. 머리를 열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생각에 변함이 없었을지 모른다. 2차, 3차 내시경수술까지 받고서야 종양이 제거되었고 수술 후에는 왼쪽 청력 상실과 안면부 일부 감각을 상실하는 후유증이 생겼다.

그녀가 특별히 건강하지 않은 체질이라 또는 건강관리를 잘못해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고 자궁적출을 하고 만성 이비인후과 질환에 시달렸을까? 21년간 반도체공장에 근무하면서 전리방사선, 비전리방사선, 발암성·생식독성·눈, 코, 귀 등의 점막자극성 물질인 여러 종류의 유기용제와 화학부산물 등에 복합적·지속적으로 누적 노출된 것과 정말 무관한 것일까?

 정향숙님이 같은 기흥공장에 근무하다 23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님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정향숙님이 같은 기흥공장에 근무하다 23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님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반올림

첫 근무를 시작한 19살, 1994년 당시는 산업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인식, 법·제도적 기반이 미비했던 시기이다. 고 황유미님의 백혈병 사망(2007년, 23세)에 대한 직업병 문제가 공론화된 2010년 이전까지는 노동안전과 산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거의 없거나 희박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과거 삼성반도체 공장에서의 유해물질노출에 대한 산업안전관리가 부실했고, 발암물질을 포함해 각종 유해물질에 상당히 노출되었다는 증언이 많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또한 2011년 '반도체 제조공정의 유해인자 노출실태 조사연구'를 통해 웨이퍼 가공라인과 칩 조립라인 일부공정에서 1급 발암성 물질인 벤젠이 '부산물'로 발생함을 확인한 바 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유해물질 누출감지나 누출방지시스템, 보호구지급 등 전반적으로 산업안전이 미비한 1990년대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매우 다양한 종류의 유기용제와 각종 화학물질, 화학부산물 등에 높은 농도로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


그녀가 일한 반도체 생산라인은 1994년~1995년 기흥공장 K2단지에 세워진 노후화된 라인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매뉴얼(수작업)로 진행하여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았다. 작업공간은 설비에 대한 파티션 없이 오픈되어 있었고 수작업을 통해 웨이퍼를 로딩(장착)시키거나 언로딩 하였는데 그때마다 매캐한 냄새에 노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에는 공조시스템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로, 공기 흐름 제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플래넘(Plenum)이 바닥에 설치되는데 그녀가 일한 노후라인에는 플래넘이 없었다. 이는 공조제어가 원활하지 않고 오염된 공기가 작업자에게 유해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추정케 한다.


거대세포종은 극희귀질환이다. 발병률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서울대병원사이트와 여러 뉴스에서 100만 명당 1명이 발병하는 것으로 원인불상의 극희귀질환이라고 알려준다. 종양의 제거로 완치가 된다면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겠지만 거대세포종은 언제 악성종양으로 변할지 모르는 공격적인 경계성 종양이다. 그런데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는 100만 명당 1명이 발병한다는 거대세포종을 진단받은 노동자가 또 있다. 1989년부터 25년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PM엔지니어로 일한 고 홍영배님은 1997년 거대세포종을 진단받은 이후 2012년 골육종으로 재발하여 2014년 사망하였다. 이러한 극희귀질환 거대세포종이 같은 공장에서 2명이 발병한 것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성반도체 공장의 준공 이후 40여 년간, 매년 수천 명씩 입퇴사가 반복되어 누적 현장직 근무자 수가 많다 한들 그 인원이 수십만은 아닐 것이고 백만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첨단산업 희귀질환에 대해서는 2017년 대법원에서 이미 산재 판단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첨단산업에서 그 위험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업무와 질병 간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작업장의 유해요인 유무, 근무기간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른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음을 밝혔다. 즉 공적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살펴서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폭넓은 규범적 판단을 하도록 한 것이다(사건번호 2015두3867).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공단의 판정 추세를 보면, 대법원 판단기준을 거슬러 협소한 의학적 증명에 의존한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며, 이러한 가운데 당사자는 판정위원회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의학적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극 희귀질환에 걸렸다. 같은 사업장에 동일한 희귀질환으로 이미 사망자가 1명 존재한다. 대법원 판례에서처럼 단지 자연과학적,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하여 산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해당 질병의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현대의학의 한계이지 이를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또한 1990~2000년대 초반까지 작업환경과 유해물질 노출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것 또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일 뿐이다.

그럼에도 해당 질병을 일으키는 의학적 연관성이 있는 특정 유해물질을 파악해 그 노출 수준이 높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인과성을 따질 수 있는가? 질병판정위원회는 숙고해주길 바란다. 대법원 판단기준과 같이 희귀질환에 대해 전향적으로 판정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작성한 이고은 노무사는 반올림 지원노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희귀질환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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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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