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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언론인'으로 몰아 제거 시도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 64] 군사쿠데타 시기 군인들이 설쳤다

등록 2025.06.21 10:52수정 2025.06.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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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이 불면 날파리가 설친다.

군사쿠데타 시기 군인들이 설쳤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호리호리한 몸매의 육군 소령이 장준하 담당이었다. 그에게 그 명령서를 제출하였다.

"너, 김영선이 한테서 얼마나 받았어?"

충혈된 눈으로 쏘아보며 살기가 등등하여 첫 말이 그런 투에 그런 소리였다. 그 어투며 내용이며 어이가 없어 잠시 상태의 얼굴을 쳐다 본 채 잠자코 있자 상대는 더한층 언성을 높여, "김영선이가 네게 돈 줬잖아? 그게 얼마냐 말야?" 그제서야 나는 상대의 어투를 탓할 세상과 자리가 이미 아니라는 것을 겨우 깨달아 스스로 마음을 달랬고, 그리고 아울러 상대가 묻는 말의 내용이 뭐라는 것도 대강 짐작이 갔다.

그때 이미 수감 중인 김영선씨와 나와의 사이에 그런 물음을 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준하의 부채문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당시 <사상계>는 미국 잡지 <타임(TIME)>과 <라이프(LIFE)>지의 국내 보급을 맡고 있었다.

<사상계> 독자들에게 국제소식을 빨리 정확히 알리자는 목적에서였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환율 현실화 정책에 따라 100대 1이던 것이 1,100대 1로 바뀌면서 3천만 환의 빚을 떠안게 되었다. 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사상계> 동인 김영선이 장준하를 국토건설 관련 책임을 맡도록 하면서 그 부채를 정부가 갚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상계> 기자 출신 작가 박경수가 정리한 내용이다.

김영선은 장준하를 어떻게든 자기들 정부의 일에 참여시키고자 설득하던 중 장준하의 빚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것을 나라의 재무장관인 자기가 책임으로 융통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때 내각의 총리 장면이 도시락을 지참 출근할 만큼 가난해 빠진 정부의 재무장관 김영선은 <사상계>의 빚 3천만 환을 해결해 주겠다고 호헌해 놓고 막상 다음날 사람을 시켜 보내온 돈은 1천만 환이었다. 우선 이것으로 채무 중 급한 불을 끄고 나머지는 또 어떻게 주선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김영선은 돈을 더 구해 보내지 않았고 장준하도 그게 무슨 약속이라고 채근해 조르지도 않았다. 이런 연유로 하여 장준하는 여러 차례 부정축재처리위원회와 혁명검찰, 혁명재판소, 서울지방국세청 등으로 불려다니며 조사와 신문을 당하고, 그 해 연말까지 분납하기로 하고 일단락 되었다.

약속한 납부의 날짜를 넘겨 가산차압도 당하면서 1962년 3월에야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쿠데타 세력은 계엄사령관으로 모셨던 장도영을 축출하고 5.16을 주도한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맡는 등 실세로 등장했다. 모든 권력은 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박정희는 1962년 3월 16일 구정치인 및 군내 반대파의 손발을 묶기 위한 조치로 무려 4,374명의 정치활동을 봉쇄했다. 이 때 명단에 오른 사람은 비판적인 언론인을 비롯하여 자유당, 민주당, 신민당 및 진보적 군소정당의 저명한 지도자, 전직 고위관리, 부정축재자, 남북학생회담 관련 학생지도부 등이었다.

이들에게는 6년간 공직선거에 후보로 출마하거나 선거운동원, 정치집회연사, 정당활동이 금지되었다. 쿠데타 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나서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구정치인과 정치활동 예비 인사들을 규제하고 그 사이 치러질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들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치밀한 계산에서 제정한 악법이었다. 장준하는 '부패언론인'으로 찍혀 정치활동정화법에 규제되었다. 정치활동에 나설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패언론인'이란 낙인은 오명이 아닐 수 없었다.

오명과 치욕을 씻는 길은 <사상계>를 잘 만드는 길뿐이었다. 잡지를 잘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히면서 몇 가지 원칙을 확인했다.

1. 민주재건을 촉구하는 이론의 전개
2. 헌정 복귀를 위한 전(全) 국정의 검토
3. 민주주의의 근본 이념의 추구
4. 자유의 재인식(공산주의와 대결할 정신적 거점으로서)
5. 민주재건을 위한 지도세력 문제
6. 언론과 지식인의 각오
7. 경제건설 문제
8. 교육문제

이 밖에 군정하의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파헤치는 '르뽀'등을 통하여 국정 전반에 걸쳐 예리하게 비판하고 편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에 <사상계> 동인들을 위시한 전국의 지성을 총동원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덧붙이는 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실록소설장준하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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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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