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를 지켜온, 지켜갈 사람들> 구술인터뷰를 진행하는 서울대학교 구술인터뷰 기획단과 이강산씨의 모습
김도균
광장의 집단 위무 기능
광장은 정치적 요구를 외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감정이 환기되고 감정적 연대를 불러 일으키는 장소였다. 강산씨는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서" 광장에 나갔다고 했고, 연수씨는 "한 주간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광장은 노래와 외침과 깃발과 박수로 서로를 격려하는 공동체의 장이자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해방의 장이었다. 억눌려왔던 감정과 말들이 일시에 터져 나오는 장, 개인이 감정의 무게를 함께 내려놓을 수 있는 장, 그건 마치 굿판과도 같았다. 이들은 광장을 통해 함께 위로받고 분노를 해소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광장은 투쟁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연대의 저변이 넓어질수록, 그 무게도 깊어졌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희망뚜벅이 행진에서 연수씨에게 방석을 건네주던 이는 이름도 모르는 연수씨를 '동지'라 불렀다. 연수씨는 성별, 이름, 배경이 달라도 같은 길을 걷는다면 동지일 수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탄핵 광장에서의 연대는 '말벌 동지'처럼 거창한 이유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투쟁현장을 찾아와 인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는 연대가 존재의 공유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는 크고 대단한 행위가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일상 속의 표현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대는 한편으로는 무거운 행위이기도 하다. 시간을 들여 곁을 내어주는 것, 마음을 나누는 것, 감정을 감내하는 것 모두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계엄군으로 투입되었지만 소극적인 임무 수행을 했던 군인들에 대해서 강산씨는 "군의 본질은 상명하복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들의 소극적 임무 수행 또한 연대의 한 형태였다. 연대는 단지 함께 소리치는 것을 넘어, 각자의 위치에서 소신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연대는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것"이라는 말처럼, 그 크기를 수치로 환산할 수 없지만 분명한 힘을 지닌다. 우리는 이 연대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무력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새로운 얼굴, 새로운 광장을 위한 상상과 실험들
광장에서의 경험은 앞으로의 광장의 모습을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은우씨의 "(계엄 이전 광장에는) 새로운 사람이 없어서 너무 재미가 없었다"는 감상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연대의 경로가 정체된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광장에 '뉴페이스'들이 나올 수 있으려면, 광장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계엄 이전의 광장은 집회 참여자들이 서로서로를 모두 알아볼 만큼 '고여있던' 반면, 이후에 열린 탄핵 광장은 은우씨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이는 한국옵티칼 희망뚜벅이 행진에 참여할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주는 이벤트나 불교라는 전통 종교를 힙한 이미지로 탈바꿈한 불교 박람회처럼 집회도 그러한 감각적 진입로를 열 수 있겠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깃발, 응원봉, 시민발언, 스티커 등 탄핵 광장이 지닌 독특한 감각이 SNS와 같은 매체를 통해 전파된다면, 더 많고 다양한 이들이 광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서울대, 빠른 반응과 빠른 침묵 사이에서
성찰은 국회와 광화문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에서 만들어진 광장에 대해서까지 이루어졌다. 서울대는 계엄 직후 전체학생총회를 열어 윤석열 퇴진 요구를 총의로 통과시켰다. 총회 자리에서는 오랫동안 자유발언이 이어졌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으나, 많은 발언들이 자신을 '서울대생'이라고 호명하며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선배인 윤석열이 부끄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선배인 박종철 열사의 뜻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계엄과 같은 부당한 일에 최고의 대학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이 어떤 의도에서 서울대를 호명했든 그러한 발언들은 엘리트주의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서울대생'으로서의 발언은 이른바 성공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계엄을 둘러싼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작동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관념과 무관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서울대생이라는 소속을 앞세워 자신의 의견에 힘을 실으려 했다. 그러나 서울대생임을 앞세우기 이전에 윤석열이 엘리트 코스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작동했던, 또 대통령이 된 후 작동시킨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여야 했다. 그리고 이를 작동시키는 데에 기여한 엘리트주의에 대해 성찰해야 했다. 만약 서울대라는 정체성이 정말 중요하다면 그 권력을 어떻게 반성적으로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서울대라는 이름 없이 단지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윤석열을 비판할 수 있는 힘과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인터뷰이들은 모두 학교의 대응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강산씨는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후, 서울대 학생회 차원의 탄핵을 위한 행동이 전무했음을 지적했다. 계엄 직후에는 탄핵에 대한 열망이 타올랐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기가 금방 식은 것에 대해 씁쓸하다고 이야기했다. 연수씨는 학내 탄핵 촉구 기자회견에서 취재를 온 기자들이 소수자 인권에 대한 발언은 편집하여 기사를 내보내는 등, 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씁쓸함을 표했다.

▲ <민주주의를 지켜온, 지켜갈 사람들> 구술인터뷰를 진행하는 서울대학교 구술인터뷰 기획단과 연수(가명)씨와 이은우씨의 모습
김도균
무뎌짐에 저항하는 사람들, 예민함으로 감각을 지키는 존재들
사회의 부조리는 너무 거대해서, 우리는 때때로 부조리에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좋은 냄새든 나쁜 냄새든 익숙해지면 코는 그 냄새에 무뎌진다. 하지만 강산씨, 연수씨, 은우씨는 그 무뎌짐에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다. 화가 많아졌고, 실망했고, 단절도 있었지만, 자신의 그 감정들에 무뎌지지 않았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이런 예민함일 것이다. 각자의 감각을 끊임없이 교정하면서, 무뎌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인터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희망이자 배움이었다.
2014년의 세월호와 2022년의 이태원에서 살아남아 2024년 계엄의 밤을 거치며 수많은 트라우마 속에서도 광장에 나선 우리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를 그저 반짝였다 사라지는 응원봉으로만 기억할 뿐이라면,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억하고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구술인터뷰는 광장이 남긴 잔불을 하나하나 읽는 작업이었다.
윤석열은 결국 파면되었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이는 분명 광장의 성과이지만 광장의 역할을 단지 권력을 끌어내리는 것으로만 한정짓는 이해는 빈곤하다. 광장에서의 경험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우리의 기억과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살아남는다. 광장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며, 그 감각은 존재들 각각의 모습과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광장에서 만난, 혹은 광장에 나올 수조차 없었을 모든 존재들을 기억하는 일이 바로 민주주의의 출발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당분간 광장은 이전만큼 크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연수씨는 "이제 정치가 광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라고 말하는 한편, 정치가 광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것 같다는 체념도 함께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인터뷰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감정을 잊지 말자. 윤석열을 넘는 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가자", "1980년 5월의 광주가 2024년을 살렸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2024년이 또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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