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산리 주민들이 마을회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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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오리에 거주하는 강화군 대북방송중단대책위원장 이경선(66, 남)씨는 달라진 마을 분위기를 "웃음꽃이 피었다"는 말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지난 1년 24시간 동안 소음을 듣고 살았다. 잠도 잘 못 자고, 뒷날 낮에도 활동해야 하는데 지장이 있었다"라며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아 서로 짜증을 내곤 했는데 지금은 대화하면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북한과 1.5km 떨어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이강(64, 남)씨와 아내 이미경(62, 여)씨는 "안정됐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앞마당 야외 탁자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직접 녹음한 대남 방송 확성기 소리를 들려주던 이미경씨는 "이제야 평화로움을 다시 찾은 느낌"이라며 "귀신 소리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동네를 떠야 하나 불안했다"라며 "예전에는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너무 정겹다"라고 말했다. 남편 이강씨 역시 "잠을 못 자 기상하면 머리가 띵했는데 이제는 괜찮다"라고 덧붙였다.
시암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장현옥(65, 여)씨 역시 "밤새 '미스터 트롯'을 틀어놓고 자야 잘 수 있었다. 전기 요금이 엄청 나왔다"라며 "지금은 자러 들어갈 땐 (TV를) 끄고 잠도 잘 잔다"라고 말했다. 함께 만난 길복례(66, 여)씨 역시 "이중 창인데도 소음 때문에 공황장애 약을 더 (세게) 올렸었다"라고 회상했다.
민통선 너머의 통일촌 이장 이완배(70, 남)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주 살 만하고 주민들이 다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바로 옆 해마루촌 이장 홍정식(55, 남)씨 역시 "전 정부가 3년간 못한 걸 일주일 만에 했는데 이제 희망을 갖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겪은 소외와 울분, "민통선 주민은 국민 아닌가"

▲ 경기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에서 바라본 대남 방송이 이뤄지던 북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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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산리에 대남 방송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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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안정을 되찾은 주민들이었지만 그간 느꼈던 소외와 울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계속되는 몇몇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또한 이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평생 시암리에서 산 이강씨는 "안 들어본 사람은 모른다"라며 "예전에도 대남 방송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극심한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평생 살면서 느낀 것 중 최악이었다"라고 말했다.
아내 이미경씨 역시 "접경 지역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민도 아닌가"라며 "강남이나 용산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해 봐라. 하루도 못 간다"라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으로 내놓은 임시 거주 시설을 두고도 "내 집 놔두고 숙소에서 자라는 게 자존심 상하고 정말 기분 나빴다. 주민 수가 적고 입김도 적으니 (정부가) 우리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산리 이장 안효철씨도 지방자치단체가 소음을 차단한다며 일부 가구에 설치한 방음창을 거론하며 "방음창을 설치하기 전에 대북 방송부터 끄라고 100번은 얘기했는데 (정부는 우리 이야기를) 안 들었다"라고 전했다. 양오리의 이경선씨도 "그동안 피해를 봤는데 추경에도 우리(접경지역)가 빠져있고 민방위기본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흥열 강화군 의원은 "(주민들이 겪은) 심리적 피해까지 보상해야 한다"라며 "접경 지역 특별법을 개정해 군사 조치로 주민 피해를 입힐 경우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강화도를 빠져나가는 도로 전광판에 대북 전단 등의 살포를 금지하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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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산리의 한 주민이 방음창을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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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뉴스는 대북 전단 살포 관련 소식이다. 대북·대남 방송 중단 이후에도 탈북민·납북자가족·기독교·극우단체 등은 연일 대북 전단을 뿌리고 있다. 시암1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장현옥씨는 "대남 방송은 끊겼지만 '펑펑' 들려오는 포 소리가 대북 전단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방송 중단에도 방음창을 설치하고 있던 당산리의 이아무개(남)씨는 "저 친구들이 (대북 전단이 담긴) 풍선만 안 날리면 되는데 (지금 상황에선) 쟤들(북한) 마음이 또 언제 변할지 몰라 방음창을 설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을 겪었던 나는 안보관이 투철하다. 그럼에도 대북 전단 살포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며 "전쟁이 일어나면 다 죽는다. 보수든, 진보든 서로 평화롭게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양오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다 큰 피해를 입은 최형찬(61, 남)씨 역시 "(대북 전단을 뿌리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넋 빠진 이야기다. 그건 주민들의 삶과 안정을 해치는 행위"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9·19 합의를 복원하고 대북 전단 살포 같은 적대적 행위를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암리의 이강씨도 "저는 강한 안보 의식을 갖고 있는 편"이라면서도 "(대북 방송처럼) 스피커를 튼다고 해서 북한이 귓등으로라도 듣겠나. 인근 주민들에게 괴로움과 스트레스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새 정부에 바라는 점 역시 "평화"와 "일상"이었다. 당산리 이장 안효철씨는 대남 방송이 들려오던 강 건너 북측 봉우리를 가리키며 "여기는 암만 비가 와도 물이 차고 그런 거 없이 살기가 그렇게 좋았다고. 계속 (이대로) 유지만 해주면 좋겠어"라고 읊조렸다. 시암1리 마을회관의 주민들도 현장을 떠나는 기자에게 "민통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전해 달라"며 한 가지 당부를 남겼다.
"평화를 바란다고 잘 써주세요. 그게 최고야!"

▲ 당산리의 안효철 이장이 민통선 너머 대남 방송 스피커가 설치된 북한 지역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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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완벽한 '음소거' 상태... 이재명 정부 출범에 '귀신소리' 사라진 마을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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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소리 대신 웃음꽃 폈지만, 접경지 또 근심 "강남이라도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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