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택배 운전해요, 한 번만 용서를" 무슨 상황이냐면요

"긴급 신고 112입니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말씀하세요. 범죄 신고 112입니다."
"지금 제 차를 치고 도망가고 있어요."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아울러 지금 계신 위치를 조회해도 될까요?"
"하셔도 됩니다. 제 차로 출근하면서 운전 중이었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트럭이 나오면서 제 차 앞쪽 범퍼를 충격하고 그냥 가고 있어요."

"차량 번호를 알 수 있습니까?"
"00가****입니다. 제가 지금 뒤에서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면서 따라가고 있는데 멈추질 않습니다. 여기가 탄천 길인데 1차선뿐이라 추월할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 무리하게 추격하지 마시고요. 지금 경찰관이 선생님의 휴대전화 위치에 따라 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화 끊으면 출동 경찰관이 전화할 거니 받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오전 7시 30분이다. 야간 근무자들과 주간 근무를 교대했다.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큰 사건·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순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났다.

"벌써 신고라고?…."
"김 순경, 코드 제로 신고다."
"그러게요. 순찰차에 탄 지 10분도 안 됐는데요."

후배 경찰관과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도 없이 긴박하게 출동해야 한다. 사실 근무를 시작하면서 커피 한 잔을 포장 구매해서 순찰차 안에서 마실 생각이었다. 순찰차에 부착된 모니터를 주시했다. 이때 운전하는 경찰관을 제외하고 조수석에 타고 있는 경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신고 내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운전하는 동료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만약 범인이 도주하고 있다면 각자의 임무도 미리 정하면서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고자에게 전화했다. 이미 신고센터와 통화했던 내용을 중복해서 묻지 않기 위해 질문을 생각하면서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고자는 자신의 차량을 충격하고 도주하는 차량을 추격하고 있었다. 진행 방향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빠지는 외곽도로 방향이다. 빨리 출동해야 한다. 만약에 관내를 벗어나면 공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자와는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 사이렌을 울렸다. 신고자에게는 소리가 들리는지 창문을 열고 듣도록 한다. 멀리에서 들린다는 답을 들었다.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침 출근길이라 차가 빼곡하다. 편도 1차로라 앞지르기도 쉽지 않다. 확성기를 통해 앞 차가 옆으로 비켜 줄 수 있도록 방송을 계속했다. 무전으로는 지원 요청도 함께했다.

편도 1차선 도로가 곧 끝난다. 300미터 앞쪽은 도로가 넓어지는 사거리다. 그곳에서 신호대기 중일 때 대상 차량을 정지시키기로 했다. 물론 내게 운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직진 신호가 켜진다면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한두 대씩 앞지르기를 반복한다. 신고자의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쪽에는 대상 차량이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1.5톤 탑차가 서너 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 차량도 흔히 볼 수 있는 택배 차량과 같다.

멀리 사거리 신호등이 보인다. 빨간불이다. 곧 직진 신호가 켜질 것이다. 나는 운전하고 있던 후배 경찰관에게 먼저 뛰어가서 대상 차량을 정지시키겠다고 말하고 순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80여 미터를 뛰어갔다. 신고자가 말한 차량 번호가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는 정지신호다. 직진 신호 전에 대상 차량을 멈춰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대상 차량의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렸다.

"운전자분 창문 좀 내려 보세요."
"왜 그러세요."

"잠깐 옆 가장자리로 차를 옮겨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운전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차를 옆으로 이동하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사실 그때 이미 알았다. 운전자가 창문을 내릴 때 차 안에 있던 술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눈이 충혈되고 붉은 얼굴빛이 숙취가 덜 된 듯 보였다.

"운전자분. 뒤 차가 멈추라고 계속 경적을 울렸는데 못 들으셨어요?"
"전혀 못 들었는데요. 탑차들은 잘 안 들립니다. 그런데 왜 그러세요."

"○○동 골목에서 탄천 도로로 운행했죠? 거기서 뒤차 범퍼 쪽을 치고 그대로 주행했어요. 먼저 음주 감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음주 감지기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이후 절차를 안내하고 음주 측정했다. 면허 정지 수치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 0.08% 미만은 면허 정지에 해당한다. 만약에 0.08% 이상이면 면허 취소다. 그런데 운전자는 0.057%의 수치가 나왔다.

음주운전 단속 결과 통보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0.057% 는 면허 정지에 해당한다. — **▲음주운전 단속 결과 통보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0.057% 는 면허 정지에 해당한다. 박승일

"운전자분 면허 정지 수치 확인해 주세요."
"아니, 저 어제저녁 12시 전까지 마셨는데요. 왜 그걸 아냐면요. 제가 밤 11시 45분 막차를 타고 집에 왔거든요. 그런데 왜 술을 마셨다는 거죠?"

"처음에 저 보셨을 때 기억하세요? 운전석 쪽 창문 내렸을 때 차 안에 가득 찬 술 냄새가 진동했어요. 본인에게서 술 냄새가 난다는 거 못 느끼셨어요?"
"... 저 택배 운전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법은 감정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숙취 정도가 다르기도 하고, 전날 술을 마셨다면 다음 날 오전에는 운전을 안 하는 게 필요해요."
"진짜 음주 상태에서 운전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아침에 술이 확실히 깼다고 믿고 운전한 겁니다. 죄송합니다."

숙취도 분명 음주 운전이다. 자기 몸 상태를 과신한 대가로 운전자는 100일 동안의 운전면허가 정지된다. 물론 형사 처벌이라는 무거운 책임도 함께 지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나는 괜찮겠지'라는 착각할 때가 있다.

술이 깼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술이 깬 것은 다르다. 그걸 잊는 순간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음주 운전은 언론에나 나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는 '혹시 모르니', '만약에'라고 생각하자. 그래야 남의 생명을 지키고 자신도 안전할 수 있다.

술은 몸을 속이는 게 아니라 마음을 먼저 속인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 금요일 연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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