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꺼이 ‘가해자 응징’이라는 정의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생존자는 가해자를 좋아한다는 의심을 받거나, 모든 고통을 응당 감수해야 하는 존재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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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생존자가 겪어야 하는 비난과 죄책감
성폭력을 겪은 생존자들은 자기 비난에 시달리곤 합니다. 죄책감과 자학은 잠시나마 마치 자신에게 오롯이 선택권이 주어졌던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더구나 '너도 잘한 것이 없다'며 은연 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주변에서 가해지는 비난들 역시 죄책감을 강화합니다. 어떤 식의 피해자 비난이든 그 효과는 똑같습니다. 심지어 "가해자를 당장 처벌해서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피해자를 압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꺼이 '가해자 응징'이라는 정의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생존자는 가해자를 좋아한다는 의심을 받거나, 모든 고통을 응당 감수해야 하는 존재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가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편이 아닐 것임을 생존자라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력에 의한 경우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맞서 싸워줄 것을 종용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나를 도와줄 만한 진심과 의지, 정치력과 행동력이 있는지는 잘 따져봐야 하지요. 생존자는 '비겁할 권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정의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들 대신 '투사'가 되어야 하는 의무란 없습니다.
간신히 고단한 싸움을 선택했을 때도 자기 비난은 따라올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나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죄책감과 원망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더욱이 가해자가 상급자인 만큼 출중한 능력이 있거나 타인들의 존경을 받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조직 안에서도 노골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거나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내 안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들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가해자에게 느꼈던 인간적인 호감이나 연민 때문에 더 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연민이 느껴지는 대상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나쁜 대상'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서도 죄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에 비해 더 나은 성찰과 인간다움을 지녔다는 것이 왜 자기 비난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또 하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서 들 수 있는 죄책감은, 논문이나 배역 같은 학문적, 예술적 성과, 고용유지나 채용, 승진의 기회를 잃을 위험 때문에 가해자에게 제대로 거부의사를 밝히거나 저항하지 못 하였다는 데에서도 기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생계라는 측면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일은 무척 소중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을 지울까 봐 참고 넘어가야 했던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우선하는 가치의 순위는 다릅니다. 그만큼 일을 사랑한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아꼈던 것입니다. 남이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을 볼모로 부당한 요구를 한 가해자가 이 모든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렇듯 자기 비난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기 싫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즉, 자기 비난은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의 부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피해자란 물과 기름을 섞어 놓기보다 되기 어려운 존재인데도 그렇습니다. 무력하고 연약하며 순진무구해야 하는데, 동시에 일찍이 피해를 인지하고 피해자로서 '제때'에 자기 권리도 주장해야 합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 된다면,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문제제기를 하는지?', '혹시 이차적인 이득을 노리는 의도가 없는지?' 의심하는, 의혹에 찬 눈길들을 마주해야 할 수 있겠지요. 또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왜 지금까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묻는 - 피해자를 사실상 비난하는 - 목소리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생존자의 회복
생존자의 회복보다 더한 정의의 실현은 없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우선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가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피해자도 비난합니다. 생존을 위한 생존자의 선택은 그에게는 항상 최선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떠한 선택도 당연히 아쉬움은 남는 법이고요. 여기에 조직의 분위기 회복과 같은 부당한 도덕적 의무까지 스스로에게 지움으로써 반복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그만둬야 합니다.
어느 날인가 진료실에서 어느 남성 성폭력 생존자 - 치료자로 여의사를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가해자는 이성애자 남성이 많습니다 - 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OO씨, 언젠가 잘 극복했다고 생각되는 날은 오게 되어 있어요. 또 사건을 꼭 잊어야만 회복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모처럼 미소 짓는 그에게 미처 하지 못 한 말,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합니다. 당신의 선택은 최선이라고 믿으니까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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