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연합뉴스
광화문 세종 앞, 작지만 깊은 그릇 하나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작고 둥근 그릇 하나가 놓여 있다. 세계 최초의 강수량 측정 기구, 측우기(測雨器)다.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그냥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이 측우기 하나에는 기술, 철학 그리고 통치의 기준이 모두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세종대왕이 측우기를 만들었다고만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쓰게 했는가이다.
세종의 명령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세종실록> 세종 23년(1441년) 8월 18일 (양력 환산 9월 3일) 기록을 보면 "매양 비가 온 후에는 수령(守令)이 친히 비 내린 상황을 살펴보고, 주척으로 물의 깊이를 측량하여, 비가 내린 시각과 수치를 상세히 써서 계문(啓聞)하고, 후일의 전거로 삼게 하소서"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핵심은 '친히'라는 단어다. 수령, 즉 고을의 최고 책임자가 비가 올 때마다 직접 나와서 측우기를 확인하고 수치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시장이나 군수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세종 시대라면 문책 대상이었다.
지금의 리더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은 어떤가. 비가 오면 시장은 어디에 있는가. 보고만 받고 예산만 배정하면 끝인가. 지시하고 탓하는 구조로는 기후위기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하나는 물의 문제 — 폭우, 가뭄, 물 부족. 다른 하나는 불의 문제 — 산불, 폭염, 열섬현상. 놀랍게도 이 두 문제의 핵심에는 '빗물'이 있다. 빗물을 모으면 가뭄을 막고, 빗물이 스며들면 산불을 줄일 수 있다. 흐르는 물을 가두면 홍수를 막고, 마른 도시에 물을 스며들게 하면 더위가 줄어든다.
문제의 핵심은 '빗물을 보는 태도'
이 모든 대책의 출발점은 하나다. 빗물을 제대로 측정하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은 윗사람이 지는 것이다. 세종은 그 일을 수령이 친히 하게 했다. 단순한 행정 보고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책임지는 지도력의 기준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는 어떤가. 책임자는 서류만 보고, 실무자만 탓하며 물 문제를 기술과 예산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당신이 먼저, 나가서 빗물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세종 시대였다면 문책감입니다
비가 올 때 나서지 않는 리더, 홍수가 나도 자리에만 앉아 있는 책임자. 세종 시대였다면 문책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책임은 위에서 먼저 보여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진짜 해답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잊힌 태도와 철학이다. 광화문에 선 세종은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 앞의 측우기가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해답은 이미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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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세종실록> 제 93권, 세종 23년 (1441년) 8월 18일 임오 4번째기사 (양력환산 9월 3일)
호조에서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다 (
https://sillok.history.go.kr/popup/viewer.do?id=kda_12308018_004&type=view&reSearchWords=%EC%84%9C%EC%9A%B4%EA%B4%80&reSearchWords_ime=%EC%84%9C%EC%9A%B4%EA%B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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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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