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옥천읍 주민총회 모습.
옥천읍주민자치회 제공
제약이 너무 많다는 비판도
주민들이 마을 일에 직접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민자치회이지만,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계도 명확하다. 주민자치회가 사업을 진행할 때 여러 제약이 있다는 것. 각 읍·면 주민자치회가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큰 제약은 다름 아닌 '공직선거법'으로 인한 제약이다. 주민자치회가 마치 공무원처럼 선거법에 엄격히 제한을 받는다는 게 그 내용.
올해부터는 지난해 조례 개정으로 주민총회지원 예산이 편성돼 주민총회 투표 참여자에 한해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2022년 9개 읍면 주민자치회의 첫 주민총회 개최 후 참석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예산 편성을 요청했지만 선거법을 근거로 무산된 것. 주민총회에서 제공되는 식사가 '기부행위'에 해당돼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선관위 측 입장이었다. 총회를 개최할 때 60명 이상의 주민이 모이는 만큼, 생업으로 바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주민총회지원 예산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약은 평소 자치회에서 주민자치사업안을 기획할 때에도 경험하는 일이다. 군서면 주민자치회 김연수 회장은 지난해 사업 의결 과정에서 주민총회를 두 차례 열었던 일을 설명했다. 민관협력형 사업으로 의결한 '어르신 효 한마당(400만 원)' 사업이 선거법 위반 소지로 무산돼 대신 마을 공용 풍물도구와 탁구용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변경했던 일이다.
"마을 어르신들 모셔놓고 동네잔치를 하려고 했죠. 그런데 잔치에 음식이 빠질 수가 없잖아요. 축제를 하면 무대도 꾸미고, 같이 식사도 해야 하는데 이런 제약이 있으니 사업을 제안·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이 있죠." (군서면 주민자치회 김연수 회장)
'어르신 효 한마당'은 한 차례 주민총회를 통해 정해진 안건이었기에, 군서면 주민자치회는 당시 새로운 사업안을 발굴·의결하기 위해 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이 때문에 주민총회도 한 번 더 개최해야 했다.
권보순 옥천군 행정과 참여자치팀 주무관은 "사업안 타당성 검토는 행정과뿐만 아니라 전 부서를 거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신경 쓰다 보니 번복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있다. 앞으로 행정에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동이면 주민자치회 조익재 회장도 "주민자치회 행사 참여 주민들에게 선물이나 음식을 제공할 수 없어 활동 범위가 좁고 제약이 많다고 느꼈다"며 "(옥천군이) 주민자치회를 준공무원 집단으로 바라본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안남면 주민자치회도 지난해 주민총회를 통해 포충기 구매를 결정했지만, 뒤늦게 타당성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사업 목적이 광범위하다는 게 그 이유. 이에 다시 주민총회를 열고 안건을 논의, 마을길 고유이름 이정표·안남면 관광 안내도·환경 정화 운동 등의 사업으로 변경했다. 안남면 주민자치회 정진용 회장은 이에 아쉬움을 전했다.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인 만큼, 타당도를 잘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주민자치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주민자치가 아니라 '군'자치 아닌가' 생각도 들죠. 무엇보다 안건에 대해 평가할 때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심사 기준을 마련해서, 주민들이 안건을 상정할 때 혼란이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9개 읍·면 주민자치회는 1년에 각각 5000만 원(민관협력형 사업 4500만 원, 주민주도형 사업 500만 원) 예산으로 운영된다. 옥천군 주민자치 업무 가이드라인에서는 추진불가 사업으로 ▲각 개별법에 저촉사항이 있는 사업 ▲법령이나 지침에서 근거를 찾지 못한 사업 ▲개인에게 자산취득성 물품을 지급하는 사업 ▲예산항목에 맞지 않는 사업을, 자체편성 예산을 집행할 때 사용 불가능 항목으로 ▲프로그램 관련 재료비(피복비, 악기, 도구, 자산성 물품) 및 수강생 개인물품 구입 ▲식비(발표회, 전시회 등 각종 행사 시 참석자 식사 및 간식제공 등) ▲행사비(행사를 위한 장비 임차료, 인건비, 공연료, 무대조성비 등) ▲선물, 기념품 구입 및 제작 ▲주민자치회 운영과 무관한 물품 구입 및 제작으로 명시하고 있다.
기존 법령이나 지침의 틀을 벗어나는 사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셈. 그렇다 보니 주민들은 주민자치회 운영 유지 수준 이상의 사업안을 마음껏 상상하고 자치활동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안남면 주민자치회 정진용 회장의 말이다.

▲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월간 옥이네
"주민자치회를 주민자치를 위한 고유한 조직으로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주민자치가 잘 되려면 자치회에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봐요. 주민자치회가 단순히 할당된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단체가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공성이 있는 단체임을 인정하고, 행정에서도 최대한 주민자치회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죠."
유정미 옥천군 행정과 참여자치팀 팀장은 이에 대해 "현재 주민자치회가 4년째 운영되는데,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고 느낀다"면서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지치지 않고 좋은 사업안을 발굴할 수 있도록 행정에서도 '찾아가는 주민자치학교' 지원을 통해 동기 부여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주민총회 급식비 지원은 총회 참석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투표자에 한해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는데, 앞으로도 주민자치회의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월간옥이네 통권 96호(2025년 6월호)
글 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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