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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문제를 직접 해결? 이렇게 가능합니다

[작은 마을의 다른 상상 ①] 충북 옥천군 주민자치회 들여다보기

등록 2025.06.21 19:04수정 2025.06.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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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는 심화하고, 젊은이는 떠나며, 마을은 비어갑니다. 요즈음 농촌 풍경입니다. 정말 피할 수 없는 흐름일까요? 여기 '읍면자치'를 통해 보다 나은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시도를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6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기자말]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월간 옥이네

내가 사는 마을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 가장 가까이에서 마을의 문제를 접하고, 누구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은 역시 주민일 터. 작은 단위에서부터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지혜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테다.

주민자치회 제도는 이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창구다. 물론 법적·제도적 미비로 제약이 많은 것이 현재 우리 주민자치회의 한계. 그렇지만 적게나마 ▲지역의 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발견하고 ▲주민 혹은 주민단체가 직접 나서 주도적으로 해결하거나 행정에 그 해결을 요구하는 일련의 활동이 주민자치회를 통해 실현되고 있기도 하다.

주민자치회는 행정안전부가 2013년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법적 근거(40조 1항)를 갖고, 시범사업으로 전국 읍·면·동 38곳에서 처음 도입됐다. 충북 옥천에서는 2021년 4월 '옥천군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및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면서 옥천읍·동이·안내·청성면에서 시범으로, 나머지 5개 면 역시 2022년부터 참여하며 시작됐다. 이제 2기 중반부를 맞은 옥천의 주민자치회를 찾아가봤다.

옥천의 주민자치회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월간 옥이네

한 달에 한 번 9개 읍·면 주민자치회 위원들은 각 읍·면사무소에 모인다. 매월 열리는 정기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6월 3일 조기대선 여파로 5월 정기회의는 평소보다 일찍 열렸다(공직선거법상 주민자치회 활동에 제약이 생긴 것. 대통령선거의 경우 23일 전부터 '선거기간'이 시작돼 주민자치회는 5월 12일부터 선거일까지 주민자치회 이름으로 회의 등 어떤 모임도 개최할 수 없게 되면서, 정기회의도 12일 이전에 진행됐다).

정기회의는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현안을 공유하는 자리로, 이외에도 주민자치회는 임원회의·분과회의·임시회의 등 회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모임과 1년에 한 차례 읍·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주민총회를 열고 있다(인구 5000명 미만의 읍·면·동은 60명 이상, 5000명 이상의 경우 120명 이상 참석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옥천군 주민자치회 예산의 활용방안을 논의·결정해 사용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 위원 수는 읍·면 상황에 따라 20명 이상 50명 이하로, 해당 읍·면에 주민등록이 된 만 16세 이상의 사람 중 공개모집 또는 추천받은 자가 위원 자격을 갖고 활동한다.


5월 7일, 임원회의와 정기회의를 앞둔 옥천읍 주민자치회를 찾았다. 임원회의에서 토의안건을 미리 협의한 뒤 정기회의를 진행하는데, 이날은 2025년 주민자치사업안 중 하나였던 '무지개 꽃길 조성'과 '향수봄날장터' 논의가 이뤄졌다. 무지개 꽃길 관리법, 옥천포도복숭아축제 기간에 함께 열릴 향수봄날장터 운영 방법을 논의한 것. 김대훈 회장과 김명희 사무국장, 김기택 사무차장을 비롯해 5개의 분과장(기획특별분과 전찬순 분과장, 교육청소년분과 임효옥 분과장, 문화체육분과 김용주 분과장, 지역개발분과 엄정자 분과장, 환경복지분과 이규억 분과장)이 모여 열띤 토론에 참여했다.

"정지용 생가 앞에 무지개 꽃길이 참 예쁘게 조성이 됐어요. 정지용 생가 앞은 환경분과 회원들이 오전·오후로 돌아가며 물을 주면서 주변 정리도 하고 있습니다. 남은 꽃을 상계공원에도 심었는데, 여기는 때때로 풀을 뽑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지금까지는 환경분과에서 관리를 했지만, 이건 주민자치회 전체의 일이기도 해요. 다섯 분과가 날짜를 정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관리하면 참 좋겠어요." (옥천읍 주민자치회 환경복지분과 이규억 분과장)


 지난해 6월에 열린 '2024 뿌리를 찾아 이야기 속으로' 행사 모습.
지난해 6월에 열린 '2024 뿌리를 찾아 이야기 속으로' 행사 모습. 옥천읍주민자치회 제공

옥천읍 주민자치회에서는 지난해 ▲우리가 그린(green) 옥천 ▲천방지축 세대공감 노리캠프(캠크닉) ▲뿌리를 찾아 이야기 속으로 ▲아름다운 쓰레기장 만들기 등을 진행했는데 이중 장령산자연휴양림에서 진행한 '캠크닉'과 옥천 역사문화유적을 탐방한 '뿌리를 찾아 이야기 속으로'에는 가족 단위 참여자를 포함 100여 명이 참석했다. 활발한 주민자치 활동으로 지난해 천안시 신안동·경남 의령군·천안시 중앙동·인제군 인제읍·세종시 전동면·서천군 시초면에서 견학을 오기도 했다고.

동이면 주민자치회는 지난해 ▲동이초 아트 벤치사업 ▲스마트폰 사진 공모전 ▲유채꽃 축제 경관 조성사업 ▲정지용 시비 건립 ▲꽃길 조성사업을 진행했다. 이중 동이초 아트벤치사업은 동이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 동이면 주민자치회 위원이 함께한 사업이다.

군서면 주민자치회는 올해 군서면 홈페이지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군서면 여러 마을의 유래와 발전사 등 역사자료뿐 아니라 식당과 숙박업소 검색, 농산물 거래 등이 가능하도록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것. 홈페이지 구축된 자료 차기 회장이 계속 관리·보관해 운영할 계획이다.

"군서면 홈페이지가 잘 구축되면 군서면 주민들이 더 하나 되고, 서로 도우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한 번에 완성하기는 어려워 3년 정도 기간을 생각하고 만들고 있죠." (군서면 주민자치회 김연수 회장)

마을 의제는 보통 분과회의를 통해 정한다. 5월까지 마을 의제를 발굴한 후 8월 주민총회가 열리기 전 옥천군에서 사업 타당성을 확인해 실현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이후 주민총회 투표 진행 후, 9~12월에는 다음 해 예산확보 및 주민자치사업안이 결정되는 구조다.

"분과별로 의제를 논의해 상정하는 만큼, 분과회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죠. 분과장과 위원 역량도 좋은 의제를 발굴하는 데 빼놓을 수 없어요." (옥천읍 주민자치회 김명희 사무국장)

옥천군은 주민자치 역량강화를 위한 '찾아가는 주민자치학교'를 1년에 한 차례씩 개최하고 있다. 읍·면당 2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해 강사 및 퍼실리테이터가 교육을 진행한다. 주민총회 지원을 위해 읍·면당 행사운영비 189만 원, 급식비 198만 원(읍 288만 원)을, 선진지견학에는 1인당 2만 5000 원도 지원하고 있다.

 2024년 옥천읍 주민총회 모습.
2024년 옥천읍 주민총회 모습. 옥천읍주민자치회 제공

제약이 너무 많다는 비판도

주민들이 마을 일에 직접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민자치회이지만,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계도 명확하다. 주민자치회가 사업을 진행할 때 여러 제약이 있다는 것. 각 읍·면 주민자치회가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큰 제약은 다름 아닌 '공직선거법'으로 인한 제약이다. 주민자치회가 마치 공무원처럼 선거법에 엄격히 제한을 받는다는 게 그 내용.

올해부터는 지난해 조례 개정으로 주민총회지원 예산이 편성돼 주민총회 투표 참여자에 한해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2022년 9개 읍면 주민자치회의 첫 주민총회 개최 후 참석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예산 편성을 요청했지만 선거법을 근거로 무산된 것. 주민총회에서 제공되는 식사가 '기부행위'에 해당돼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선관위 측 입장이었다. 총회를 개최할 때 60명 이상의 주민이 모이는 만큼, 생업으로 바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주민총회지원 예산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약은 평소 자치회에서 주민자치사업안을 기획할 때에도 경험하는 일이다. 군서면 주민자치회 김연수 회장은 지난해 사업 의결 과정에서 주민총회를 두 차례 열었던 일을 설명했다. 민관협력형 사업으로 의결한 '어르신 효 한마당(400만 원)' 사업이 선거법 위반 소지로 무산돼 대신 마을 공용 풍물도구와 탁구용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변경했던 일이다.

"마을 어르신들 모셔놓고 동네잔치를 하려고 했죠. 그런데 잔치에 음식이 빠질 수가 없잖아요. 축제를 하면 무대도 꾸미고, 같이 식사도 해야 하는데 이런 제약이 있으니 사업을 제안·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이 있죠." (군서면 주민자치회 김연수 회장)

'어르신 효 한마당'은 한 차례 주민총회를 통해 정해진 안건이었기에, 군서면 주민자치회는 당시 새로운 사업안을 발굴·의결하기 위해 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이 때문에 주민총회도 한 번 더 개최해야 했다.

권보순 옥천군 행정과 참여자치팀 주무관은 "사업안 타당성 검토는 행정과뿐만 아니라 전 부서를 거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신경 쓰다 보니 번복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있다. 앞으로 행정에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동이면 주민자치회 조익재 회장도 "주민자치회 행사 참여 주민들에게 선물이나 음식을 제공할 수 없어 활동 범위가 좁고 제약이 많다고 느꼈다"며 "(옥천군이) 주민자치회를 준공무원 집단으로 바라본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안남면 주민자치회도 지난해 주민총회를 통해 포충기 구매를 결정했지만, 뒤늦게 타당성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사업 목적이 광범위하다는 게 그 이유. 이에 다시 주민총회를 열고 안건을 논의, 마을길 고유이름 이정표·안남면 관광 안내도·환경 정화 운동 등의 사업으로 변경했다. 안남면 주민자치회 정진용 회장은 이에 아쉬움을 전했다.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인 만큼, 타당도를 잘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주민자치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주민자치가 아니라 '군'자치 아닌가' 생각도 들죠. 무엇보다 안건에 대해 평가할 때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심사 기준을 마련해서, 주민들이 안건을 상정할 때 혼란이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9개 읍·면 주민자치회는 1년에 각각 5000만 원(민관협력형 사업 4500만 원, 주민주도형 사업 500만 원) 예산으로 운영된다. 옥천군 주민자치 업무 가이드라인에서는 추진불가 사업으로 ▲각 개별법에 저촉사항이 있는 사업 ▲법령이나 지침에서 근거를 찾지 못한 사업 ▲개인에게 자산취득성 물품을 지급하는 사업 ▲예산항목에 맞지 않는 사업을, 자체편성 예산을 집행할 때 사용 불가능 항목으로 ▲프로그램 관련 재료비(피복비, 악기, 도구, 자산성 물품) 및 수강생 개인물품 구입 ▲식비(발표회, 전시회 등 각종 행사 시 참석자 식사 및 간식제공 등) ▲행사비(행사를 위한 장비 임차료, 인건비, 공연료, 무대조성비 등) ▲선물, 기념품 구입 및 제작 ▲주민자치회 운영과 무관한 물품 구입 및 제작으로 명시하고 있다.

기존 법령이나 지침의 틀을 벗어나는 사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셈. 그렇다 보니 주민들은 주민자치회 운영 유지 수준 이상의 사업안을 마음껏 상상하고 자치활동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안남면 주민자치회 정진용 회장의 말이다.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동이면 주민자치회의 모습. 월간 옥이네

"주민자치회를 주민자치를 위한 고유한 조직으로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주민자치가 잘 되려면 자치회에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봐요. 주민자치회가 단순히 할당된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단체가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공성이 있는 단체임을 인정하고, 행정에서도 최대한 주민자치회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죠."

유정미 옥천군 행정과 참여자치팀 팀장은 이에 대해 "현재 주민자치회가 4년째 운영되는데,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고 느낀다"면서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지치지 않고 좋은 사업안을 발굴할 수 있도록 행정에서도 '찾아가는 주민자치학교' 지원을 통해 동기 부여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주민총회 급식비 지원은 총회 참석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투표자에 한해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는데, 앞으로도 주민자치회의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월간옥이네 통권 96호(2025년 6월호)
글 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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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자치 #옥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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