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성남시 수정구 고등공공주택지구에 있는 국내 첫 창고형 약국. 대형마트처럼 창고형 매장 형태로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반려동물 의약품과 사료 등 51개 분류로 나뉜 2천500개 이상의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2025.6.17
연합뉴스
창고형 마트, 창고형 가구 할인 매장처럼 '창고형'이 수식어로 붙으면 그 매장은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판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물건이란 휴지일 수도 과자일 수도 식품일 수도 가구일 수도 있습니다. 주로 생활용품들입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약이라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약을 대량으로 싸게 산다니, 약이 휴지나 과자나 식품과 같을 수 있을까요? 약이란 무엇인가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약을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이라고 정의합니다. 홍정은 약사(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홍보위원장)는 "약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성분과 용량을 조절하고, 복용 기간과 병용 여부를 고려해 제공되어야 하는 의료 행위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의약품은 생수나 생필품처럼 싸게 많이 쟁여두는 '쟁여템'이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3].
사전의 정의도 그렇고 약사의 말도 그렇고 약은 대량으로 구매해 쟁여둘 성질의 물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약'의 정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은 창고형 약국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블로거는 "동네 약국이 너무 비싸서 영양제를 아마존에서 직구해왔다"라며 "창고형 약국에 가니 인기 있는 의약품은 20% 저렴하다"라고 환영했습니다. 창고형 약국을 찾은 50대 여성은 "어차피 편의점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있는 영양제라면 직접 보고 같은 효능에 더 값싼 제품을 사고 싶어 찾았다"라고 말했습니다[4].
창고형 약국은 고객이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약을 고르고 매장에 상주하는 약사에게 효능이나 복용법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특정 감기약을 고르고 약사에게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죠. 일반 매장에서는 과자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나서 과자의 효능이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다르게 약사가 상주하며 상담한다는 것은 약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창고형 약국이 문을 열기 전부터 약을 싸게 대량으로 파는 곳은 있었습니다. 라디오 광고에서 많이 나오는 '종로 5가 00 약국'이 그것입니다. 창고형 약국은 '종로형' 약국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소비자가 좀 더 주도권을 쥔 형태입니다. 소비자의 편의에 맞게 유통 구조가 바뀌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편하면 다 좋은 것일까요?

▲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의 한 창고형 약국 내부 모습.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창고형 약국'을 표방하며 이달 11일 문을 열었다. 202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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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은 10가지를 하기보다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 유명한 문장에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이 법칙에 빗대자면 "건강한 사람은 모두 엇비슷하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릅"니다. 무슨 병으로 가든 의사들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충분히 자고, 잘 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고 하니까요. 어느 의사는 평소 건강식품과 영양제 등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어온 환자에게 "몸에 좋은 10가지를 하는 것보다, 몸에 정말 나쁜 한두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치료"라고 말했습니다[5].
창고형 약국을 찾는 사람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약을 많이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약 오남용에 대한 경고를 단지 약사들의 이권 지키기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창고형 약국 등장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약이란 무엇인가'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되물어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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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형 약국 둘러싼 논란, "약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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