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한 아내에 대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위윈회'의 3차 재심 결과 '불인정' 결과를 받았다.
변상철
"소엽 중심성 폐질환 환자만 1, 2단계로 인정을 받은 거고, 그 외에 예를 들어 중앙 쪽 위에 쪽에서 그 병반이 나타난 사람들은 피해 인정을 못 받은 거예요. 참 억울하더라고요. 물증까지 보관을 하고 있는데 뭘 더 어떻게 더 이상 그걸 자료를 증빙해야 합니까?"
이씨는 당시의 등급 판정 기준이 의학적 근거보다는 행정적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된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3심까지 가는 과정에서 5명의 사망자 중 단 한 명만 2단계로 상향 조정되어 8억 원의 배상을 받은 사례를 언급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러한 국가의 피해자 등급 판정으로 인해 기업 보상에서도 이씨는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2016년 옥시레킷벤키저는 CMIT/MIT 성분 제품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보상안을 발표하고 피해 1, 2등급을 대상으로 최대 수억 원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등 일부 보상 절차를 진행했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가장 큰 제조사였던 옥시가 여론의 압박과 검찰 수사로 인해 일정 부분 책임을 인정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씨는 등급판정이 3등급으로 판정되면서 옥시에서의 보상 대상인 1, 2등급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옥시 보상에서 제외 되었다고 한다. 국가의 이해하기 어려운 등급 판정으로 보상길이 막히자 이씨는 수년째 옥시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재판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 기나긴 재판의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있다.
파탄 난 가정 공동체… '남겨진 자들'의 삶과 사회적 외면
이씨의 가정은 아내의 사망 이후 '완전 파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혼자되고 나서 그걸 극복을 해보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애들이 없었다면 저도 진짜 아마 애 엄마 뒤따라갔을 거예요. 근데 애들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실행을 못 했고 진짜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차례 해봤고 진짜 힘들었어요. 울고 싶을 때도 손님 앞에서는 울 수가 없잖아요. 영업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고기)냉장고 안에 들어갔습니다. 안에서 문을 닫으면 밖에선 소리가 안 들리거든요. 그 안에서 실컷 울고 나왔어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한 개인의 건강 문제에 그치지 않고, 가족 공동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사회적 재난이다. '엄마'의 사망은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하여 가족 공동체가 흔들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의 정확한 통계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어 발표된 바는 없다. 그러나 전체 사망 피해자(약 1843명, 2024년 5월 기준) 중 영유아 사망 비율이 높고, 이들의 부모가 생존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씨 가정과 같은 '한부모 가정'이나 '가족 돌봄 부담'이 커진 가정은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피해자 통계 또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아빠 나 암일 수도 있대"라는 아들의 말에 놀란 이씨의 사연처럼 자녀들 역시 부모의 불안과 함께 건강에 대한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딸이 한창 사춘기 시절을 거치던 때, 역시 엄마의 빈자리로 인해 겪었던 성장의 어려움(사춘기 때 속옷, 생리용품 구매 상담 등)을 고백했다.
이씨가 운영하고 있는 정육점도 아내 사망 후 매출이 급감했다. "애 엄마 가고 나서 손님이 다 줄었어요. 장사가 훨씬 덜 돼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거예요." 주부 손님들이 '민주 아빠를 보면 민주 엄마 생각에 너무 안타까워서 못 오겠다'며 발길을 끊었다는 주민들의 수군거림은 경제적 어려움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닌,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진 고통임을 보여준다.
이씨는 "이게(가습기살균제피해) 전국 팔도 안 걸린 데가 없잖아요. 피해자들이 전국 곳곳에 분포가 돼 있고… 이태원 참사처럼 단합이 잘 됩니까? 이건 증상마다 다 달라 사람마다…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사망자, 고도 장애, 중등 장애… 그러니까 이게 단합이 안 되는 거예요"라며 피해자 단체들이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환경부가 피해자 단체를 세분화하여 오히려 '단합을 방해했다'는 그의 비판은 국가의 미흡한 대응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심화시켰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환경부 협의체의 역할과 청소년, 영유아 피해 보상 딜레마
이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피해자들을 불러 "말만 근사하게 번지르르하게 금방 해결해 줄 것처럼" 기대를 안겼지만, 결국 "말만 꺼내놓고 해결도 못 하고" 끝났다고 비판했다. 현재 환경부에서 구성 중인 협의체 역시 이러한 불신 속에서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이씨의 두 차례 유산 경험과 같이 사망자의 등급 형평성 문제나 생존 피해자의 지속적 치료지원에 대한 입증과 보상 문제는 협의체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자녀들처럼 '노출자'로만 인정받고 피해 등급을 받지 못 한 경우, 구내염, 피부 질환 등 호흡기 외의 다양한 건강 문제에 대한 보상이나 평생 관리가 누락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의 피해 인정 범위가 너무 좁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또한 환경부가 구상하고 있는 협의체가 제시하는 보상안이 일회성 합의로 그칠 경우, 현재 청소년, 청년이 된 영유아 피해 생존자들이 향후 나타날 수 있는 건강 문제에 대해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지 못 할 위험이 있다. 이씨가 아들의 구내염을 걱정하듯이,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물질이 체내에 남아 언제든 연관 질병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평생 지속될 수 있다.
이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더 이상 '피해자'라는 낙인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정과 치유,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이씨의 편지에서처럼,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사회적 환경 참사'로 명확히 규정하고, 피해 입증의 부담을 피해자가 아닌 국가가 지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재개정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의 독립적 진상규명 및 피해 구제 위원회를 설치하여, 법적 다툼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가해 기업들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자사의 제품 사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합당한 배상 및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영수증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역학 조사 결과 등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기업 역시 등급제로 차별하는 보상안 뒤에 숨는 것이 아닌 자사제품에 대한 노출이 확인된 피해자의 경우 모두 형평성을 갖춘 보상안으로 보상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협의체는 모든 피해 유형, 특히 사망 유족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반영해야 한다. 일회성 합의가 아닌,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하고 지속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씨는 "제 나이가 63세 1962년생이거든요. 벌써 이게 14년 됐어요"라며 흘러간 시간의 허망함을 토로했다.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는 지난날의 고백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현재의 불안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고통 받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살아있는 고통'임을 보여준다.

▲ 이규동 씨가 기자 카카오톡으로 보낸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편지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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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마시고 자란 아이들, 아프다는 말에 가슴이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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