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6.24 08:44수정 2025.06.2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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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집안일 중 반드시 기한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바로, 각종 필터들을 교체하는 일이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터라, 여러 가지 편의기기들을 어지간히 갖추고 산다.
우리 집은 열 평 남짓의 작은 다가구 주택이다. 필터 없이는 무용지물인 물건들이 이곳저곳에 포진해 있다. 공기청정기와 정수기는 물론이고, 식기세척기에도 필터가 들어간다.
물론 처음부터 풀세트로 다 갖춘 건 아니었다. 시작은 물과 관련된 용품들이었다. 10년 전, 아내와 결혼하고 얻은 첫 신혼집은 매우 오래된 주택이었다. 수돗물을 틀면 붉은 녹물이 한참 쏟아져 나왔다.
1분 정도 물을 흘려보내야 비로소 투명한 물이 나왔지만, 그마저도 찜찜했다. 애쓰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녹물. 정수기를 설치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었고, 수돗물을 계속 흘려보내기 아까워 샤워기와 싱크대 수전을 필터가 있는 제품으로 교체했다.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기본값이 된다. 결혼하고 나서 정확히 네 번 이사했다. 첫 집만 제외하면 녹물이 크게 나오는 곳은 없었지만, 정수기와 필터 수전 용품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물의 색은 투명해 보여도, 필터는 여지없이 붉게 변했다. 어느 집이든 예외는 없었다.
그 다음은 공기청정기다. 코로나 시절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렇지, 사실 우리는 그 이전부터 마스크와 꽤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 미세먼지. 언제부턴가 급격하게 심해졌고, 기관지가 약한 아내와 나에게는 정말 곤혹스러운 시절이었다.
공기청정기를 살 때는 꽤 오래 고민했다. 물이든 공기든, 무엇이든 거르는 필터는 결국 소모품이다.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고, 그 비용이 꽤 만만치 않다. 넉넉지 않은 형편의 우리 부부에게 고정비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다.
돈도 문제지만, 제품별 교체 주기가 제각각인 것도 헷갈린다. 샤워기와 싱크대 필터는 3개월, 정수기 필터는 6개월, 공기청정기와 식기세척기는 12개월이다. 숫자만 보면 3의 배수라 쉬워 보이지만, 각 제품의 설치일이 다르다 보니 날짜가 딱 맞게 떨어지질 않는다.
작년부터는 정수기를 자가 관리형 제품으로 바꿨다. 그전에는 렌털 업체에서 주기적으로 연락해주고 필터를 교체해줬지만, 이제는 내가 챙겨야 한다. 반년에 한 번만 바꾸면 된다니 괜찮겠다 싶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1년에 한 번 바꾸는 공기청정기나 식기세척기는 기록해두지 않으면 까먹기 십상이다. 이럴 땐 오히려 자주 바꾸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결국 지난주, 필터가 들어가는 물건들을 전수 조사했다. 무슨 대단한 프로젝트처럼 들리지만, 40대 중반이 되니 진짜 하루가 다르게 잊는 일이 늘고 있어서다.
달력 앱에 필터 교체 주기를 입력했다. 알람까지 설정해두고, 제때 주문하고 제때 갈아주기만 하면 된다. 생각해보니 자동차에도 필터가 있다. 추가로 입력해야겠다.
내가 20대였을 땐, 집에 필터 들어가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물은 그냥 끓여 먹었고, 미세먼지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공기청정기는 '선택 사항'이지 '필수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필터 없이는 건강하게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붉게 물들고 먼지가 잔뜩 낀 필터를 보면, 마치 자연이 보내는 쪽지 같기도 하다.
"지금, 이만큼 더러워졌어."
이대로라면 앞으로 더 많은 필터 제품들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대필터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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