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글쓰기 수업을 합니다. 수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어요.[기자말] 어젯밤에 숙제 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는 어르신께 내가 대답했다. "아유, 저희 반은 밤샘 금지잖아요. 글 쓰다 머리 아픈 건 회춘의 신호지만, 잘 자는 게 먼저입니다." (관련기사 : 글 쓰는 어르신께 세 번 연속 막말을 해봤다) 어르신은 머쓱하게 웃으시며 "글감이 자꾸 떠올라서요. 누웠는데 머릿속이 자꾸 말을 하더라고요"라고 덧붙이셨다. 그 마음을 나는 잘 안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잠자리를 밀어내고, 문장을 붙들고 싶어진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 애정을 쏟는 마음이다. 후루룩파와 곰탕파, 둘 다 충분하다 나는 수업 끝에 늘 '생각만 하셔도 괜찮다'라고 강조한다. 다음주에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된다고, 우리 수업은 내 인생 '쓰면' 아니고 '풀면'이니 그저 오셔서 풀어달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언제나 약속처럼 글을 써오신다. '잘 쓰지 못했어도 써봤어요'는 공통된 후렴구 같다. 잘 쓴 글보다, 용기 내어 쓴 글이 내게는 귀하다. 내 수업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는 마음 같아서다. 그러니 나는 이 어르신들을 오래 만나고 싶다. 그래서 글은 천천히 와도 되니 건강으로 매주 출석해 달라고, 잘 쓰는 얼굴보다 잘 자는 얼굴이 먼저라고 말한다. 물론 잘 주무시고 숙제를 하는 분들도 계신다. 글쓰기 어르신들은 크게 '후루룩파와 곰탕파'로 나눌 수 있다. 수업 당일 복지관 오는 길에 후루룩 쓰시는 분, 일주일 내내 곰탕 우리듯 한참 동안 쓰시는 분이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매번 강조하지만 곰탕파는 후루룩파를 은근 부러워하신다. 그러다 오늘, 곰탕파 어르신 중 한 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선생님, 성지 순례 다녀와서 다들 글 한 편씩 냈는데요. 제 글이 뽑혔어요. 저 글쓰기는 원래 너무 싫어했는데 선생님 만난 게 복이에요." 나는 어르신을 만난 내가 더 복이라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내 수업과 시간이 딱 겹치는, 옆 강당의 노래교실 때문에 더 그랬다. 신나는 반주가 들려오면 나는 종종 작아졌다. 반주에 맞춰 목청껏 뽑아내는 시간이 어르신들께 더 필요한 게 아닐까. 노래교실 선생님은 의상마저 화려해서 내가 또 초라해보였다. 글쓰기도 웃음이 터지는 흥겨운 순간이 있지만 한 시간 내내 반주가 깔리는 노래교실과 비할 수 없었다. '잘 쓰지 못해도 써봤어요'가 공통 후렴구 같다고는 하지만 진짜 노래가 주는 흥이 없으니 내가 괜히 미안해진다. 곰탕파 어르신의 말에 나는 다시 어깨를 폈다. 들리지 않는 리듬도 있다는 걸 믿기로 했다. 트로트가 몸을 흔들게 한다면 글쓰기는 마음을 서서히 흔든다. 흔들린 마음이 우리 안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다양한 복지관 프로그램 중 글쓰기 반 멤버끼리 유난히 친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게 그 증거다. 함께 쓰기는 합창이다 글은 언제나 같은 길로 오지 않는다. 어떤 글은 순식간에 후루룩 도착하고, 어떤 글은 며칠을 뭉근히 삭이다가 제 속도로 찾아온다. 얼른 썼다며 건네는 글에도, 오래 묵혔다 꺼낸 글에도 각자의 결이 있다. 글쓰기 교실에 흐르는 침묵은 결코 공백이 아니었다. 마음속 어딘가를 더듬는 손길들이 겹쳐져 만들어지는, 소리 없는 합창이었다.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리듬이다. 선생님 만난 게 복이라는 말은 내 능력이 아니었다. 같이 만든 소리 없는 리듬을 오래 듣고 난 뒤에야 나오는 단어다. 그런 단어를 더 많이 찾고 싶다. 내가 이 수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추가됐다. 큰사진보기 ▲집중하시는 어르신들 각자의 글을 스크린에 띄우고 낭독한다 최은영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내인생풀면책한권 추천6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최은영 (christey) 내방 구독하기 글과 음악을 짓는 프리랜서 이 기자의 최신기사 가늘고 길게, '0원'으로도 즐거운 나의 요가 생활 구독하기 연재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내풀책) 다음글 34화 '1941년생 왕언니'의 영시 낭독,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현재글 33화 트로트는 몸을 흔들고 글쓰기는 마음을 흔든다 이전글 32화 시니어 글쓰기, 최선을 다해 고치면 다 도망간다 추천 연재 송주연의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친구 만나면 혼자 떠드는 사람, '이것' 때문입니다 장소영의 숨쉬는 뉴욕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을 기막히게 알아맞히는 방법 주간 김만덕 삼성전자에서 보이지 않는 영웅, 김혜숙 조영훈의 미디어로 보는 노동 "울면서 봤다" 댓글 쏟아진 이수지 유튜브, 노무사가 설명드립니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의미 없다" "세금 잘 쓰였나" 감사의 정원에 미적지근한 광화문 민심 '합당 재추진' 카드 던진 조국 "당선되면 민주당과 연대·통합 주도" [영상] 주차장 입구로 '역주행' 한 오세훈 차량... 안전질서 무시 논란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감자 들고 학교 간 아이, 교사가 거절하며 건넨 씁쓸한 말 2 마당 데크를 걷어내자 나온 것, 십수 년을 모르고 살았네 3 [단독] 남욱 "유동규, 미국 송금 알아봐달라 요청"...다시 흔들린 '428억 약정설' 4 주가 떨어질까봐 삼성전자 노조 비난하는 당신이 놓친 것 5 [단독] 46년 만에 공개된 5·18 인터뷰, 힌츠페터가 촬영한 이 외국인의 정체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트로트는 몸을 흔들고 글쓰기는 마음을 흔든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35화수업하다가 춤을?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34화'1941년생 왕언니'의 영시 낭독, 모두 할 말을 잃었다 33화트로트는 몸을 흔들고 글쓰기는 마음을 흔든다 32화시니어 글쓰기, 최선을 다해 고치면 다 도망간다 31화밥 거부하고 아내 외출 막는 80대 남편의 속마음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구독PICK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톡톡60초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전체기사 연재 포토 스포츠 방송·연예 영화 음악 공연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소개 후원하기 10만인기자 10만인편지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