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6.25 11:09수정 2025.06.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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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글 쓰는 사람인데, 왜 막말을 하니?"
친한 언니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내가 한 말이 그렇게 막말인 걸까'. 그 언니가 이웃에 대해 말하는 도중 내가 감정 이입해 그 언니 편을 들어 준답시고 추임새로 한 말이 그건 '횡포지'였다. 그런데 그 언니에게는 '횡포'가 막말로 들렸나 보다. 부끄러움과 당혹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사람은 늘 좋은 말만 써야 하나 다정하게?'
나는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나의 마음을 꺼내어 글로 정리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도 있고, 조용히 나만의 폴더에 넣어두기도 한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세상의 속도와 소음 속에서 잠깐 멈춰 서는 일, 마음을 다잡고 삶을 돌아보는 일. 그런데 그날,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너는 글 쓰는 사람인데 왜…' 그 말엔 분명 기대가 담겨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말도 곱고, 마음도 너그럽고,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그 기대는 어쩌면 나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들이 쓴 문장처럼 멋지고 따뜻한 사람일 거라 믿어왔으니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스스로에게 늘 질문을 던지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써도 될까? 이 말이 누군가에게 닿을까? 나는 지금 진실하게 쓰고 있는가? 나는 한 줄의 문장을 쓰는 데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눌러 담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해지려 애썼다.
글은 늘 정제되고 고요했다. 속이 뒤집어져도 '분노'라는 단어로, 슬픔이 밀려와도 '먹먹했다'라고 썼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참 좋은 사람인 거 같아요", "글에서 위로를 받았어요"라고 말할 때면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그 따뜻한 문장들이 꼭 나인 것만 같지는 않아서.
그래서 내 글을 읽고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본다고 하면, 어딘가 죄책감 비슷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글을 쓰지만, 감정이 앞설 때가 있고, 말이 먼저 튀어나올 때도 있다. 생각해 보니, 글을 쓸 땐 유난히 조심스러워진다. 글은 수정을 거치고 다듬어 표현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한다. 혹여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무례하지는 않을까. 수십 번을 읽고, 고치고, 고치며 다시 쓴다.
그런데 말은 다듬을 수 없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은 '나' 로서 굳어진다. 그렇기에 말은 훨씬 위험하고, 동시에 더 진짜일 수 있다. 내 글은 온유하지만 내 말은 예민하고 까칠했다. 글은 나의 '이상'이고 말은 나의 '현실'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나는 가장 좋은 내가 되려 노력했고, 말은 그런 노력 없이 튀어나오는 '습관'이었다.
익숙한 관계 안에서는 방심했고, 편하다는 이유로 예의를 잃었다. 마음을 다루는 글을 쓰면서도, 말에서는 감정을 다루지 못했다. 이 괴리가 부끄러웠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내 안을 찔렀던 건, 어쩌면 내가 스스로 품고 있던 부끄러움을 정확히 짚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마음을 다루는 일이다. 그렇다면 말도 그 태도 안에 있어야 한다. 글은 조심스럽고 다정한데 말은 날카롭고 무심하다면 나는 과연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나는 이제 말도 글처럼 다루고 싶다. 한 문장을 쓰듯 한마디 말을 고르고 싶다.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다. 글에서처럼 말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막말을 했던 그 순간 그 말을 되새기면서 글과 말은 내 안의 균열을 보여줬고 동시에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줬다. 글을 쓴다는 건, 말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란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나의 말이, 나의 글과 너무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 말도, 내 글처럼 따뜻하고 곱고 신중해지길 바란다. 언젠가는 내 말과 글이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전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도 조금은 더 천천히 하려 한다. 말이든 글이든, 결국 내가 세상에 보내는 나의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내 언어가 나의 전부가 되는 경험을 뜻한다. '사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도 배운다. 내가 쓰는 글처럼, 나의 말도 누군가의 하루를 덜 아프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글을 쓰며 누군가의 하루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글을 쓴다고 해서 늘 다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다음번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수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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