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수용 모피를 공출 받아 만든 병사용 방한 외투와 군화. 특히 방한 외투 1벌에 반려견이나 고양이 4마리 정도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밖에 토끼와 양, 염소털 등도 사용됐다고 한다.
김관식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물자가 부족해지자 가족처럼 기르던 '개와 고양이'도 군수품으로 간주한 것이 놀랍고 안타까웠다. 1944년, 일본 정부는 군수성 화학국장과 후생성 위생국장 명의로 전국 지방장관(지사)들에게 개 공출을 지시하는 통지문을 보냈다. 명목은 모피 증산과 광견병 근절이었다.
이곳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무엇이 무엇이든 여러분의 개를 나라에 헌납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회람판은 1944년 12월 도쿄 하치오지 시청이 개 공출을 안내하며 내건 것이다. 하치오지 장년단과 경찰서 명의로 작성된 회람판에 "개는 중요한 군수품으로서 훌륭한 도움이 됩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그렇게 전쟁 관련 유품을 직접 만지고 느끼고 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는 내게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어디를 가봤는지 물었다. 또 "전쟁이 비극인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전쟁 고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며 "전쟁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전쟁을 반대하며 호소하는 목소리는 작다. 쇼와 시대 전쟁(태평양전쟁)의 역사를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마치 언제 또 만날지 모른다는 듯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끝까지 구슬프게 불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이란 무력 충돌,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까지 겹치며 전 세계가 전쟁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전쟁 상처를 떠올려야 한다. 숨기지 말고. 잊어서도 안 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과거의 비극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적을 굴복시키는 폭력행위"라고 정의하지 않았나.
비록 이곳에서의 1시간 남짓이었지만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귀국 후 문득 돌아보니, 이곳이 '기념관'도, '평화회관'도, '박물관'도 아닌 '자료관'인 이유가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았다. 전쟁의 참혹함을 미화하지도, 포장하지도 않은 채 오롯이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건 아닐까.
※ 병사·서민 전쟁자료관
주소 : 415-7 Gotoku, Kotake, Kurate District, Fukuoka 820-1101 일본(구글맵)
개관시간 : 오후 1시 30분~5시(매주 수/목 휴관)
관람료 : 없음
예약필수 : +81949628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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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라, 그럼 보일 것이니" 기록은 시대의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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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혹함을 증언해야" 태평양전쟁에서 돌아온 한 일본군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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