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이상미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트럼프의 중재로 휴전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상황은 불안정하다. 중동 국가 간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 뿌리는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천 년의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한 권의 소설을 떠올렸다. 바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2003년 5월 출간)이다.
핵 개발 위협, 드론 공격, 외교 단절이라는 헤드라인 속에는 하루를 살아가는 개인의 서사는 사라져있다.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치를 드러낸다. 거대 담론에 가려진 '개인'을 회복하는 작업, 그것이 문학의 본질적 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그러한 회복의 서사다. 작품의 중심에는 유대인 생존자 로자 아줌마와 아랍계 무슬림 소년 모모가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로자는 몸을 팔던 여성들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인물이고, 모모는 그 아이들 중 하나다. 이 두 인물은 정치적·종교적으로 보면 '적대적' 정체성의 대표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갈등을 뛰어 넘는 인간적 연대를 구축해나간다.
두 인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을 보듬고 껴안는다. 모모는 로자의 노쇠와 정신적 퇴행을 지켜보며 보살피고, 로자는 아이에게 감정을 전이시키며 어머니 이상의 존재가 되어간다. 이 서사 구조는 단순한 돌봄의 이야기라기보다, 갈등을 전제한 인물들 간의 화해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설은 분명 허구지만, 그 감정의 진실성은 현실을 반영한다.
"사람은 사랑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삶을 견딜 수 없거든요."
- <자기 앞의 생> 중에서
모모의 이 말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라 말한다.
이스라엘과 이란이라는 두 국가는 여전히 적대적이며, 서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앞의 생>은 그와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국가는 벽을 세우지만, 개인은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랑'과 '연대'라는 해답을 찾는다.
1975 공쿠르 상 수상작이자 영화 등으로도 만들어졌으니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이라면 지금 이 시점에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미 읽어 본 독자들이라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상황 속에서 다시 펼쳐본다면 또 다른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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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출신의 문화예술기획자에서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한 평범한 엄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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