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시 백로 벌목과 이동과정을 나타낸 그림
이경호
이러한 과정은 백로를 우리 생활을 방해하는 유해한 객체로만 인식하는 인간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그러나 백로는 생명이다. 벌목으로 둥지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도시의 녹지를 찾아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갈등은 장소만 옮겨가며 반복되는 미봉책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벌목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원래 백로들은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나고 번식기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름 철새였다. 하지만 기후 위기와 서식처의 변화로 대전 도심에 남아 혹독한 겨울을 나는 텃새가 되었다. 얼어붙은 강변에서 고드름이 맺힌 채 추위를 견디는 백로의 모습은 이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텃새가 되면서 월동하는 과정에서 잠자리로 사용하는 나무마저 베어지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에 구충남도청에서 월동하던 나무가 올해 베어졌다.
실제 어떤 이유에서 텃새가 되어가는지는 더 밝혀져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행된 개발의 결과로 환경 변화가 가져온 이상 현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여전히 동남아로 이동하는 여름철새로 남아 있는 개체들도 많지만, 변화는 분명한 사실이다.
공존의 해법, 일본 홋카이도에서 배우다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우리는 제거와 통제 중심의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백로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생태를 이해하며 '조화로운 공존'의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지난해 방문한 일본 홋카이도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곳에서는 백로 번식지를 단순히 '문제'로 보지 않고, 인공 둥지를 만들어 백로를 안전하고 민원 발생이 적은 지역으로 유도하는 등 적극적인 정착 유도 및 분산 전략을 쓰고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백로를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며, 심지어 기업이 백로의 비행 경로를 고려해 건물 높이를 조절하거나 백로 서식지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등, 공존을 위한 관계론적 태도를 보여준다(관련기사:
백로류 번식지 유인한 성공사례를 배우다 https://omn.kr/28smc).
이는 갈등을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로 전환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더욱이 홋카이도는 자연의 자정 능력, 즉 백로 개체 수를 조절하는 자연 포식자들의 역할도 신뢰하며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천적을 양성화하면서 백로 서식지의 규모를 조정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태계의 균형까지 고려하여 백로나 생태계의 서식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관련기사:
먹이사슬 회복하는 훗카이도, 우리와 이렇게 달랐다 https://omn.kr/28pdm).
KAIST로 돌아온 백로, '삶의 터전' 기억하는 생명체
백로가 과거 서식지였던 KAIST로 다시 돌아온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는 백로에게도 삶의 터전에 대한 분명한 기억과 회귀 본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백로를 단순히 왔다 갔다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서사를 가진 생명체로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벌목과 같은 폭력적이고 단절적인 방식이 아니라, 백로의 생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KAIST 또한 학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백로와 공존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관련기사:
백로 집단번식지 문제, 해결 가능할까? https://omn.kr/28ayk).
대전, '생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제언
백로와의 갈등은 사실 우리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거울이다. 2025년 선화초 벌목 사태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뼈아픈 교훈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백로를 동등한 생명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생존권을 인정하며, 우리의 생활 공간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지혜롭게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지 백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이 도시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태도이며, 대전이 진정한 생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첫째, '통합적 공존 협의체'를 시급히 구성해야 한다. 지자체, 환경단체, 생물학자, 지역 주민, 기업, 학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백로 등 생태계 문제에 대한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둘째, 생태에 대한 과학적인 정밀 조사가 필수적이다. 백로 등 집단 번식지를 이루는 생물들에 대해 이동 경로, 번식 습성, 선호 서식지 등을 파악하여 '백로 서식지 분포 및 잠재적 갈등 지역 지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제적인 관리와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한 정착 유도 및 분산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백로가 선호하는 수종과 구조물을 활용하여 인공 둥지탑을 설치하는 등 대체 서식지를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초기 유도를 위한 모형이나 소리 장치 등을 활용해야 한다. 기존 갈등 지역에서는 백로 번식기에 소음 차단 시설 설치나 조명 조절 등 백로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주민 불편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규모 벌목은 즉시 중단되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도 전문가의 판단하에 최소한의 조치만을 허용해야 한다.
넷째, 서식지를 활용한 '생태 교육 및 관광 자원화'이다. 선화초등학교 사례처럼 백로 번식지를 생태 학습장으로 지정하여 학생들이 백로의 생태를 배우고 자연과 교감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 나아가 백로의 계절별 특성을 활용한 생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소득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백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적/정책적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위한 명확한 지침과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지자체의 임의적인 결정이 아닌 생명 존중과 생태계 보존 원칙에 따른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생태계 유지에 대한 계획도 비용도 마련하지 않은 행정의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적극적인 복원과 회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예산도 편성하고 행정의 주요 사업으로 이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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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선화초 백로 둥지, 그 참혹한 벌목 현장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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