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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보도 이후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대변인이 된 지는 오래됐습니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논의했으나 당시 언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언론사와 언론학자의 반발이 거셌고, 제도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선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두 번째는 현 언론보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선 첫 번째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의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 언론이 누구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가입니다.
물론 언론은 국민의 대변인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언론이 국민의 대변인인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언론은 권력과 자본,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만, 여전히 언론은 권력과 자본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국민을 대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언론에 국민은 신뢰와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현 언론보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인가 하는 점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는 언론이 의도를 가지고 사실과 진실을 왜곡했다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특정 언론보도가 의도를 가지고 사실과 진실을 왜곡했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위의 사례로 제시한 중증외상센터관련 보도가 촘촘하게 팩트체크하지 않았고,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명한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뉴스 가치가 있습니다. 저명 정치인이 중요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면 충분히 뉴스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팩트체크를 왜 하지 않았냐, 반론을 왜 담지 않았느냐는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이는 기자 윤리의 문제일 뿐 이를 문제 삼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논두렁시계 보도'(2009년 5월께 보도)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고, 서민 대통령을 자청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배신을 느끼게 했던 언론보도였는데, 추후 이 언론보도가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보도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입니다(한겨레 2018.06.25). 이 보도의 근거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이끌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요지는 논두렁 시계 언론보도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망신 주기 위해 국정원이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로 보도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습니다. 만약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이런 엄청난 조작 보도가 없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언론보도는 뉴스로 기사화되는 순간 영향력이 확산됩니다. 추후 기사를 삭제하거나 정정보도를 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또한 언론보도의 의도성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언론보도 조작에 적극 가담했음이 밝혀졌지만, 언론사가 국정원과 함께 언론보도 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언론보도라 하더라도 그 진위를 밝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취재 보도의 맥락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행법과 제도 틀에서 답을 찾을 순 없을까
건강한 언론이 많을 때 사회는 건강해집니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적 틀 안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가령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은 불법정보의 생산, 유통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불법정보란 말 그대로 기존 실정법에 의해 금지되는 것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내용의 정보를 말합니다. 정보통신망법 44조의 7의 조항을 보다 구체화하여 언론보도의 형태로 유통되는 불법 정보를 규제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허위 조작정보라든가, 차별, 혐오 표현을 구체화하여 불법정보의 범위에 포함해 규제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2023년 10월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엑스(X, 이전의 트위터)를 통해 혐오 표현과 허위 정보 등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는데, 엑스의 불법·유해 정보 차단 노력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보다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문제 삼아 EU집행위원회는 엑스가 DSA(Digital Service Act)를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만약 이러한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엑스는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습니다(경향신문 2023.12.19). 조작정보, 차별, 혐오 표현 확산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엑스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한 EU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즉 혐오 표현의 생산자뿐만 아니라 온라인 환경에서는 유통 담당자의 책무도 크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보 생산자에 초점을 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정보의 유통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환경에서 실효성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건강한 언론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디지털미디어 환경에서 생산과 유통 모두를 아우르며, 디지털미디어 책무를 부과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또 언론 표현의 자유도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입니다.
[참고자료]
경향신문(2023.12.19), EU, '허위정보 유통' X에 칼 뺐다.
미디어오늘(2025.06.23), 문형배 "지난 정부, 언론 쓴소리 경청했다면 이런 결론 안 났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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