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의원, 우원식 국회의장, 윤장순 여사, 이종찬 광복회장, 정대철 헌정회장, 김동연 경기도지사(왼쪽부터)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나, 조계진>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종찬 회장님의 올곧은 정신은 어머니 덕분"이라며, 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에 맞서 싸워 온 이종찬 회장의 행보에 깊은 존경을 표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이승만에 대해 ‘교지(狡智)’가 있는 정치인이라 말한 조 여사의 표현이 인상 깊었다"며, "이 책은 솔직하고 정직한 기록"이라는 말을 전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 책이 “조선왕조가 끝나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격동기를 생생히 담았다”라고 평가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종찬 회장님의 진정성 있는 기록은 깊은 감동을 줬다"며, "경기도 역시 다양한 분야의 독립운동가와 잊힌 인물들을 조명하고 기록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우원식
어제 30일, 광복회 이종찬 회장의 모친이신 조계진 여사(1897~1996)의 자서전 <나, 조계진> 출판 기념회가 프레스 센터에서 열렸다. 흥선대원군의 손녀이자,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며느리였던 조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책은 놀랍게도 4.19 혁명 당시 조 여사가 직접 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으로 시작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반민족적 행보를 비판하며 거리로 나섰던 그녀의 선택은 '광복 이후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날 뉴라이트 세력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포장하고, 연합군의 승리를 강조하며, 독립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한다. 그 자리에 '1948년 건국론'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삽입해, 이를 주류 역사 담론으로 굳히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조계진 여사의 자서전은 바로 이 흐름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승만을 "교지(狡智, 교활한 재주와 꾀
)가 있는 정치인"이라 평가한다. 그녀의 말은 격동의 시간을 살아낸 이만이 남길 수 있는 역사적 통찰일 것이다.
아들 자(子)의 자서전(子敍傳), <나, 조계진>

▲ 지난 2월, 2.8 독립선언 106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종찬 광복회장과 부인 윤장순 여사. <나, 조계진>은 아들 이종찬 회장이 정리한 ‘아들 자(子)의 자서전’이지만, 수십 년간 시어머니의 삶을 함께 기억해온 윤장순 여사의 손길이 더해진 책이다. 조계진 여사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현모양처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버지·시아버지·남편 모두가 독립운동가였던 삶 속에서 그것은 쉽지 않았다. 책에서는 막내아들 이종찬 회장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친구와 사랑을 이뤄 단란한 가정을 꾸린 덕분에, 말년 20년 동안 비로소 원하던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사진 속 두 사람의 편안하고 따뜻한 표정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들의 신뢰와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정윤
이 책은 조계진 여사가 직접 쓴 '자서전(自敍傳)'이라기보다는, 여사의 말과 기억을 아들 이종찬 회장이 정리한 '아들 자(子)의 자서전(子敍傳)'이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생애를 수십 년간 곁에서 듣고 함께 기억해온 이 회장 부인인 윤장순 여사의 역할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사실상 '가족이 함께 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윤 여사는 이종찬 회장의 주관적 기억에 객관의 시선을 더하며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어제 출판기념회는 며느리의 육성으로 전해진 조계진 여사의 일생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격동의 시대를 견딘 어머니란 이름

▲ (왼쪽) 1917년 동짓달, 이규학과 조계진의 결혼 기념사진 (오른쪽) 결혼 17년 만에 집을 마련한 상해 포석로 시절. 큰딸 정현과 3남 종찬
이종찬
조계진 여사는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 모두가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시대를 살았다. 그녀 역시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 있었지만, 조계진 여사 자신이 앞에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신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과 시부모의 뒤를 묵묵히 지켜왔다. 전염병으로 두 딸을 잃었을 땐 출가를 결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상해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꾸려진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중 한 명이 바로 이종찬 회장이다.
광복 후 돌아온 조국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외면과 가난뿐이었지만, 조계진 여사는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전쟁처럼 휘몰아친 삶의 끝 자락에서, 그녀는 결국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라는 이름을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고도 기록되지 않았던 수많은 여성들을 상징하는 이름, 바로 조계진이다.
조계진, 명문가의 품격과 권위의 경계에서 저항을 기록하다

▲ 조정구 대감(왼쪽)은 흥선대원군의 사위이자 고종의 매부로, 일제의 귀족 작위를 거부하고 자결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결국 독립운동하는 삶을 택하게 된다. 1919년에는 한성정부의 평정관으로 이름을 올렸고, 순종으로부터 ‘병합조약 부인문’을 위탁받아 이를 발표하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오른쪽)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전 재산을 처분하고 일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독립군 양성을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아나키즘 운동에 헌신하였다. 이후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과 연대하여 항일 투쟁을 이어가던 중, 일경의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국가보훈부
조계진 여사는, 일제강점기 귀족 작위를 거부하고 자결을 시도한 끝에 독립운동에 나선 조정구 대감의 딸이자,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아나키스트의 길을 걸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며느리였다. 한 사람은 체제 안에서 끝내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체제 바깥에서 독립운동의 길을 선택했다. 조계진은 이처럼, 권위에 맞선 두 혈통 사이에서 '저항'이라는 공통의 유산을 계승한 여인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삶을 살아온 집안의 딸이자 며느리로서, 조계진 여사가 남긴 고유한 시선이 녹아 있다. 단순한 회고가 아닌, 격동의 시대를 곁에서 지켜본 이만이 내릴 수 있는 역사적 평가가 담긴 기록이다. 윤봉길 의거 이후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면서 보여준 변화 또한, 조 여사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이 책은 조명하고 있다.
"나는 불현듯 혁명이란 인간애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권위로 갇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봉길 의거 이전, 인간적인 동지였던 김구는 점차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해갔다. 그 변화 속에서 조계진은 '권위'의 그림자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목격한 김구의 모습은, 인간애에서 출발했으나 권위로 기울어지는 수많은 리더십의 비극을 상징한다. 그것은 과거 임시정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 권위에 기대려는 유혹과 그로 인해 무너지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복해서 목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씨와 이씨라는 두 독립운동 명문 사이에서, 딸이자 며느리로 살아간 조계진 여사가 지켜낸 '저항'의 유산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권위에 질문을 던지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연대하는 시민들이 얼마 전 이 땅에서 보여준 '빛의 혁명'과도 맞닿아 있다.
책 <나, 조계진>이 가진 역사적 가치

▲ 출판기념회에서 <나, 조계진>의 역사적 가치를 소개한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현 단국대 명예교수)은, “이 책은 황실과 명문가의 독립운동 역사를 복원한 귀한 기록”이라고 평했다.
한울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단국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은, <나, 조계진>이 가진 가치에 대해 "공백으로 남아 있던 황실과 명문가의 독립운동 서사를 복원한 문헌"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출판기념회에서 "우리는 흔히 독립운동을 민중과 계몽 지식인 중심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권력층이자 특권층이었던 이들이 민족의 운명을 앞에 두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책 속에는 순종 황제가 "1910년 병합은 내 뜻이 아니었다"는 말을 남겼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조계진 여사의 부친 조정구 대감은 이 발언을 밀서에 담아 딸에게 전달했고, 여사는 그 편지를 몸에 숨긴 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이처럼 <나, 조계진>은 공식 역사 기록에서 배제되거나 흐릿하게 남아 있던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고종 황제를 망명시키기 위한 우당 집안의 실제 계획 역시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회고는 단지 구술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이종찬 회장이 조선왕조실록, 순종일기, 승정원일기, 독립신문 등을 꼼꼼히 대조·검토하며, 고종의 옥새까지 감정한 본격적인 사료 기반 역사 복원 작업이다. 한 교수는 "이 책은 가족의 추억이 아니라, 사라졌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낸 증언이며 사료이며 철학이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바로 그 철학이,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권위가 아닌, 자유와 평등, 연대의 편에 서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삼한갑족'이라 불리던 한 가문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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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백기환 (숭실학교, 신흥무관학교 졸업, 서로군정서 협력 의열투쟁, 진천부대 대장, 압록강 인근에서 활동, 1920년 평양 경찰서 폭파에 가담해 7년간 옥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신문 배포, 1945년 평양 군사시설 폭파에 참여) 애국지사의 증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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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손녀 "혁명은 왜 인간애로 시작해 권위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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