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은 학교의 양버즘 나무 100년이 넘은 한 초등학교의 양버즘 나무들이 허리가 잘려있다. 학교의 역사는 무엇으로 기억할까.
김태여
아이들이 싫어하는 벌레를 제거하고 숲체험 하라니
생태가 없는 학교에서 생태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교과과정에는 생태가 중요하다고 되어 있지만, 현실은 해도 연 1~2회의 외부 숲 체험에 그친다. 그마저도 벌레를 없애고, 나무 밑은 가지가 떨어진다고, 풀은 벌레가 있어 위험하다고 피한다.
생태를 통제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이 시도들은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다. 최근 한 교육대학교 교수는 생태교육 세미나에서 '생태교육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아이들이 싫어하는 벌레를 제거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태교육을 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제를 했다. 아이들이 가장 몰입하는 생태교육은 곤충이다. 모기는 싫지만 사슴벌레는 교육자료로 써야 하는 건가. 모기, 파리 등 혐오받는 곤충을 없애기 위한 조치는 다른 곤충들도 없애는 일인 것인데... 자연을 통제하고 순화된 '자연 흉내'를 제공하자는 말이다. 생태에 대한 기본 개념이 실종된 교육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장마철마다 멸종위기 2급 맹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학교 주변 우수관에 적당한 낙엽과 물이 고여 맹꽁이에게는 최적의 번식지였다. 그러나 지난해 낙엽이 막힌다는 이유로 학교는 모든 수로 위에 촘촘한 덮개를 전면적으로 설치했다.
이후 올해 장마철 맹꽁이 소리가 나서 필자가 모니터링을 갔는데, 들어갈 수 없는 수로 덮개 위에서 몇 마리의 맹꽁이를 발견했다. 수로 속 맹꽁이와 덮개 밖 맹꽁이는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 같았다. 걱정하던 중 3일이 지나고 맹꽁이 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맹꽁이는 어디로 갔을까? 인근 어디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여름밤이 고요하다.
이는 생존을 가로막는 물리적 차단으로 보인다. 멸종위기 2급에 대한 인식도, 관심도 없는 결정이었다. 맹꽁이 소리가 나도 뭔지 몰랐고 뭔지 알아보지도 않은 듯했다. 교장은 정기적으로 바뀌고 학교 생태 조사는 하지 않는다. 무관심과 방관 속에 맹꽁이는 사라졌다.

▲촘촘한 작은 구멍의 학교 수로 덮개. 맹꽁이 이동을 차단한 구멍이 촘촘한 덮개. 수천만원 들여 덮을 때 학교의 생태조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낙엽 유입과 쓰레기 투기를 방지할 목적이었지만 멸종위기 2급의 맹꽁이가 영향을 받았다.
김태연
더욱 단순화되고 있는 학교 자연
많은 학교의 운동장 한쪽엔 의자와 등나무가 덮인 쉼터가 있다. 한 초등학교의 운동장 계단 위 그늘막 구조물에 등나무가 덮여 있었다. 두 해 전 대대적인 가지치기를 하더니, 올해 보니 결국 원줄기까지 잘려 나갔다. 이제 이 학교에서 등나무 꽃을 보지 못하고 등나무 꽃에 찾아오는 벌이 없을 것이며 등나무 열매가 주렁주렁한 모습도 못 보고 등나무 열매가 터져 놀라는 경험을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등나무를 책으로 보게 생겼다. 여름 초입인데 잎이 하나도 없으니 등나무는 죽었다.

▲한 초등학교의 잘려진 등나무 학교에 있는 등나무 굵은 줄기가 모두 잘려나갔다. 이젠 등나무를 책으로 배워야 한다. 여름임에도 잎은 하나도 없다. 모두 죽었다.
김태연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풀이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소금을 뿌린다. 그런데 한때는 예산을 쏟아부어 전국의 학교에 인조 잔디 깔기 경쟁을 했다. 교육청과 정치인들은 홍보에 열을 올렸다. 사람들은 인조 잔디 학교로 전학 가기를 바랐다. 그러다 환경호르몬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예산을 들여 걷어냈다. 그렇게 인조 잔디의 외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근까지 우리나라는 1 학교 1 체육관 짓기를 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체육 시간은 많지 않다. 체육관이 있는데 학교 운동장도 그대로 있다. 체육관이 생겼으면 운동장은 숲으로 할 수 있으련만... 학교 놀이터는 아이들이 넘어진다는 민원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결국 풀만 자란 학교도 있다. 아이들이 놀지 않는 운동장엔 여름이면 풀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런 운동장에 소금을 뿌리는 관리인에게 물었다.
"왜 소금을 뿌리세요?"
"아이들이 풀에 미끄러진대요."
그럼에도 우리는 왜 잔디 운동장은 선호하는가. 생태를 이야기하면서도 풀 한 포기 허락하지 않는 이 관행은 모순 그 자체다.

▲학교놀이터 출입이 금지되어 풀이 자람 병설유치원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출입 금지한 한 초등학교의 놀이터. 풀만 길게 자랐다. 아이들이 다친다고 놀이를 금지해 달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놀이터 문이 닫혔다.
김태연
한 학생이 벌에 쏘이는 일이 생긴 후, 한 학교 병설유치원 아이들은 숲 체험을 나갈 때 모기장 모자를 눌러 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레 기피제를 샤워하듯 뿌린다. 어떤 아이는 마스크까지 썼다. 기피제 냄새 속에선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다. 향기 하나 맡으려면 모기장을 걷고 마스크를 내려야 한다. 씁쓸한 풍경이다. 이게 과연 '숲 체험'인가. 더워서 안 나가, 추워서 안 나가, 뛰면 힘들다, 땀 나면 불편하다, 벌레도 귀찮다 한다. 이 모든 순간을 살지 않고 아이들은 깨끗하고 안락한 교실 안에 갇히고 있다. 선생님들은 민원 걱정으로 온갖 장치를 고민한다.
'
침묵의 학교숲'에서 생명 존중 시민 교육이 가능한가
학교의 나무와 녹색 공간은 교육지원청의 '시설' 관리 대상이다. 나무는 살아 있는 생명체지만 행정상 '시설물'로 취급된다. 생태를 모르는 시설 담당자가 나무를 관리한다.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행정은 결국 생명을 소모품처럼 다룬다.
나무는 살아 있다. 계절마다 잎이 나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떨어진 후 열매가 맺힌다. 안 익은 열매, 익은 열매가 순차적으로 떨어진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직박구리, 까치들이 학교를 찾아온다. 가지가 떨어지고 벌레가 함께 산다. 풀도 피고 지고, 매미가 울고 무당벌레가 기어 다닌다. 은행나무 열매를 밟으니 똥냄새가 나고 비 오는 날 진흙이 튀고 신발이 더러워지는 모든 것은 일상의 삶이다. 아이들은 이런 것을 겪을 권리가 있다. 그 모든 것을 아이들이 겪고 반응하며 배우는 것이 생태교육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선 운동장에 소금 뿌리고, 나무와 풀에는 살충제를 치고, 수로는 막는다. 곤충도, 새도, 맹꽁이도 없는 '침묵의 숲'이 되어간다. 이 침묵의 숲에서 아이들이 자라서 생명을 존중하는 시민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기적을 기대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학교운동장엔 풀이 자란다. 소금이 뿌려지지 않으면. 잔디 운동장을 그렇게 원하면서도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엔 넘어질 우려로 매 년 소금을 뿌려 풀들을 제거한다.
김태연

▲키가 크다는 이유로 벌목된 학교의 메타세콰이어 키가 크다는 이유로 벌목된 한 중학교의 메타세콰이어. 환경만 적정하면 키 큰 나무가 쉽게 쓰러지진 않는다. 멀쩡한 나무가 벌목되었다.
김태여
생태계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다. 꽃이 지고 열매가 떨어지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이 불편함을 제거하는 교육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수성과 생명 존중의 태도를 가로막는다. 기후위기 시대, 교육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야 한다. 교과서로 공부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은행나무 열매의 냄새, 빗방울에 튄 흙, 벌레와의 우연한 만남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교육일까.
생태교육은 실험실처럼 정제된 자연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불편한 진짜 자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생명을 자르고, 풀을 없애고, 벌레를 배제하는 학교는 결코 생태교육의 장이 될 수 없다. 학교는 생명의 공간이어야 한다. 자연은 가르침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교육일 것이다.

▲두절된 학교 나무 에코스쿨로 지정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 두절된 나무들이 나란히 서있다. 학교에서는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넣어서 잘랐다고 했다. 이곳에서 숲체험을 해야 했다.
김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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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복지전문업 숲환경학교(주), 생태교구몰 개똥벌레, 유튜브채널 숲체험TV 운영합니다. 환경 문제 해결에 함께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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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죽음... 이게 '교육'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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