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양보호사 실습을 하며 떠올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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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해 드리겠습니다!"
실습의 하루는 청소로 시작된다. 침대 아래, 방 구석구석을 밀고 다니는데 유독 한 분이 칭찬이 후하셨다. 청소 잘 한다고 원장한테 잘 말해주겠다며 인심을 쓰셨다. 원장님이 당신의 말을 잘 들어준다면서. 아마도 당신이 말씀하면 잘 해줄 거라며 덕담을 하셨다. 아마도 그 분은 살아오시며 윗분과 친한 관계를 맺는 것이 큰 힘이 되셨었던 듯하다.
허긴 멀리 갈 것도 없다. 여전히 딸들과 사사건건 실랑이를 벌이시는 요양병원에 계신 구순의 어머님도 그리 다르지 않으시니 말이다. 요로 감염과 폐렴으로 섬망을 겪으며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오가던 어머님. 점차 상태가 호전되시며 이쪽 세상으로 연착륙하는가 싶으시더니, 자꾸 챙기시려는 게 늘어난다.
매일 아침 운동가실 때 민망하시다며 모자를 가져다 달라하시더니, 그 품목이 머플러며 조끼로, 바지로 늘어 갔다. 환자복이 어쩔 수 없다면 이불이라도 남들과는 다른 것을 덮으려 하셨다. 살아오시며 당신을 증명해 보이는 '표지'와도 같은 것들이셨던 듯하다.
어머님이나 어르신들의 모습을 뵙고 돌아서면 퇴화한 익룡의 날갯짓을 보는 듯 착잡한 마음이 오간다. 또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한평생 살아오셨던 모습이 각인처럼 새겨져 긴 그림자로 드리워진 게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반추와 배움의 시간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역지사지, 나에게로 향한다. 그 분들에 비하면 한참 젊은(?) 내게 새겨진 각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환갑을 맞이하여 호기롭게 그만하면 됐다며 다음 삶의 스텝을 밟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나를 사로 잡는다. 돌아보니 마흔 살에 독서 논술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이후 20여 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 중에서도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는 자부심이 내게는 그 익룡의 날개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몇 명이든, 몇 십 명이든 누군가를 가르치며 살아왔던 시간. 이제 요양보호사라는 새로운 선택을 함에 있어 그 시간들이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거슬린다. 마치 어머님이 화려한 머플러와 조끼로 내가 누구라는 것을 드러내려 하는 그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 걸음도 떼지 않은 내 발목을 잡는다.
돌아보면 내가 논술 선생입네 하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그리 잘 나가지도 않았는데도 막상 다른 선택을 하려니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꼴랑 어떤 대학을 나오고, 무슨 과를 나오고, 내가 뭘 좀 알고 등등... 어쩌면 지나온 시간 곳곳에서 이런 태도로 스스로 내 발목을 잡지는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삶의 습(濕)이란, 익숙했던 삶의 방식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삶의 방식을 관통했던 나의 생각, 사고방식, 가치관 같은 것들이 아닐까. 일찍이 철들어 아로새긴 생각들이 오래도록 남아 이제는 유적이 되어버린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환갑을 넘어 새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저 새로운 길을 가서 두려운 것도 있지만, 여태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여 걸음 걸음을 무겁게 한다. 안 그래도 나이 들어 묵직한 걸음이 그래서 더 무거워 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내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머님을 뵈면서도 "왜 그래?"를 넘어, 같은 유전자를 가진 내게 이어진 그 허명에 대한 집착을 반추해 볼 수 있는 배움의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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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실습하며 떠올린 구순 엄마의 머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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